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이 사람이 첫사랑이긴한데 정부인지는 헷갈리네요.
일단 그냥 넣어봅니다 =-=
(네 짧아서 그냥 막 넣는겁니다. )
정부들과 그 후손들...(318) 시리드 스파레 : 칼 15세의 정부
시리드 스파레
Sigrid Sparre
Sigrid Maria Josefina Ingeborg Richissa Eufemia Ulfhild;
(1 September 1825, in Nygård – 17 November 1910, in Stockholm)
시리드 스파레는 스웨덴의 귀족 가문중 하나였던 스파레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시리드의 아버지인 식스텐 스파레 남작은 매우 용감한 군인으로 스웨덴의 여러 전쟁에서 공을 세웠었으며 나폴레옹 전쟁 전역을 참전했던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식스텐 스파레는 칼 13세의 왕비였던 카를로타 왕비의 시종무관으로 일하기도 했었으며 칼 14세 요한의 부관으로 일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때문에 시리드는 왕가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시리드의 어머니인 소피아 레벤하우프는 레벤하우프 백작 가문의 상속녀로 레벤하우프트 가문은 스웨덴의 귀족 중 하나였던 레이욘후프드의 방계 가문중 하나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고위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시리드는 1844년부터 요세피나 왕비의 시녀로 일하게 됩니다. 왕비의 곁에서 일하면서 시리드는 왕실 가족들과 자주 만났었으며 특히 요세피나 왕비의 장남으로 왕위계승자였던 칼( 칼 15세)와 자주 만났었으며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둘의 관계는 비밀리이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요세피나 왕비가 남편의 부정행위에 진절머리치고 있었던 것이 중요한 원인일 것입니다. 남편의 바람도 열받는데 아들마저 한눈을 팔고 있는것은 화가나는 것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칼의 혼담 역시 잘 안되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요세피나 왕비가 이모들과 열심히 협력해서 무려 프로이센 왕위계승자(후에 빌헬름 1세)의 딸과 혼담을 추진해서 외교적 협상까지 다 진행했었는데 이 결혼을 그냥 파토내버린것 역시 아들에게 열받는 이유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1850년 요세피나 왕비는 시리드와 아들의 관계를 알아내고는 시리드를 궁정에서 추방해버립니다. 이때 요세피나 왕비는 고해신부를 통해서 둘의 연애관계에 대한 증거를 잡아냈었고 이것은 요세피나 왕비와 칼 15세간의 불화는 물론 칼 15세가 가톨릭에 대해서 공격적이 된 원인중 하나였다고도 합니다. (...=-= 개인적으로는 그런 원인은 좀 아닐듯해요. 원래 스웨덴이 가톨릭에 공격적이었던 나라였는데 말입니다. )
궁정에서 쫓겨난뒤 시리드는 스웨덴의 귀족이었던 프레드릭 세데르스트룀과 결혼했고 둘 사이에 세명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칼 15세는 시리드와 강제로 헤어진후에도 시리드를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결혼하고나서 정부를 계속 바꿔대는...=-=)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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