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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312) 마리아나 코스쿨 : 칼 13세 &칼 14세 요한의 정부 (첫번째)

엘아라 2021. 4.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0-;;;; 아 드디어 난리난 마리아나 코스쿨을 하네요.아하하..-0-;;;

 

정부들과 그 후손들...(312) 마리아나 코스쿨 : 칼 13세 & 칼 14세 요한의 정부(첫번째)

 

헨리에타 마리아 카를로타 코스쿨

마리아나 코스쿨

Henrietta Mariana "Marianne" Charlotta Koskull 

(19 February 1785, in Växjö – 30 March 1841, in Stockholm)

코스쿨 가문의 문장

 

마리아나 또는 마리안느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라진 헨리에타 마리아나 카를로타 코스쿨은 구스타프 프레드릭 코스쿨 남작의 여덟자녀중 한명으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나의 집안은 가난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이때문에 마리아나의 아버지는 마리아나의 동생인 콘스탄스를 돈많은 남자와 결혼시키려했었습니다. 마리아나의 여동생인 콘스탄스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돈 많은 상인이었던 요한 홀이라는 인물이 그녀에게 청혼하게 됩니다. 콘스탄스는 이를 거절했지만, 요한 홀이 아버지인 구스타프 프레드릭 코스쿨에게 재산과 연금을 주겠다고 제안하자,그는 딸에게 사랑하는 남자와 연애질만하고 결혼은 돈많은 홀과 하라고 했었다고 하고 결국 콘스탄스는 1805년 그와 결혼했었다고 합니다.

 

콘스탄스 코스쿨, 마리아나의 여동생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었지만 마리아나는 교육을 잘 받았었으며 아마 동생이 부자와 결혼한 뒤에는 좀더 잘 나간듯합니다. 귀족출신에 교육을 잘 받은 마리아나는 기회를 잡게 되죠. 바로 칼 13세의 왕비인 카를로타의 시녀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1809년 마리아나는 카를로타 왕비의 시녀가 되었으며 이후 궁정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하프를 연주하는 등 활발한 궁정생활을 했었습니다. 일기로 유명한 카를로타 왕비는 자신의 일기에서 마리아나에 대해서 교육을 잘 받았지만 허영심이 많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만 그녀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카를로타 왕비, 그녀가 남긴 일기는 유명합니다. 기록에서 데지레 클라리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자신의 시녀와 데지레 사이에서 자신의 시녀를 더 편든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마리아나는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궁정의 남성들 특히 국왕의 눈길을 끌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국왕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와도 연결되면서 이것은 큰 흥미거리가 됩니다. 

 

마리아나는 왕비의 시녀가 된 1809년 바로 국왕 칼 13세의 정부가 되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물론 왕비였던 카를로타는 이에 대해서 무시하는 발언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1810년 프랑스의 장군이었던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인 칼 요한으로 스웨덴으로 왔는데 마리아나는 이미 국왕의 정부였음에도 칼 요한의 정부가 되었다고합니다. 

 

칼 13세

 

마리아나가 왕태자 칼 요한의 정부가 된것은 그의 아내인 데지레 클라리가 스웨덴에서 적응하는데 실패하고 프랑스로 떠난 1811년 이후였다고 합니다. 카를로타 왕비의 기록에 따르면 칼 요한은 마리아나의 사촌이었던 오로라 빌헬미나 브라헤(결혼전 성이 코스쿨) 백작부인에게 반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브라헤 백작부인과 잘 되지 않았기에 오로라의 사촌인 마리아나와 연애질을 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재미난 것은 마리아나와 칼 요한의 관계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것입니다. 카를로타 왕비는 1815년이 되어서야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의 일기에 기록한다고 합니다.

또 카를로타 왕비는 1816년 데지레가 스웨덴으로 다시 돌아올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을때, 칼 요한이 마리아나 때문에 아내가 돌아오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기도 했었습니다.

 

칼 요한, 스웨덴의 칼 14세 요한,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마리아나가 국왕과 왕태자와 동시에 연애질을 하는동안 두 남자와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져옵니다. 국왕의 살롱에는 마리아나의 양면 초상화가 있었는데 하나는 뮤즈로 표현된것이고 다른 하나는 점성술사로 표현된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점성술사의 모습이 걸려있다면 그날 마리아나는 국왕과 함께 지내는 것이고, 뮤즈의 모습이 걸려있다면 왕태자와 함께 지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

 

(제가 읽은 칼 14세 요한에 대한 전기에서는 마리아나 코스쿨에 대해서는 칼 14세 요한이 적극적으로 연애질했다기 보다는 그냥 왕가의 정부를 그대로 이어받는다는 느낌으로 설명했었는데 말입니다. 아하하..-0-;;; 카를로타 왕비가 뭐랄까 데지레한테 좀 냉담해서 마리아나와의 기록도 뭐랄까 칼 요한이 더 적극적이었던것으로 묘사하는듯하네요.)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