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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인판타들...(16) 아라곤의 이사벨 : 페드로 3세의 딸(두번째)

엘아라 2021. 4.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상하게 요즘에 글이 자꾸 길어지네요..

쓰다보니 길어져서 두개로 나눴습니다. -0-;;;

 

아라곤의 인판타들...(16) 아라곤의 이사벨 : 페드로 3세의 딸(두번째)

 

아라곤의 이사벨

아라곤의 엘리사벳

포르투갈의 왕비

포르투갈의 성 엘리자베트

Elizabeth of Aragon,

Saint Elizabeth of Portugal,

(1271 – 4 July 1336),

 

이사벨은 매우 종교적이었으며 또한 자선사업을 하면서 가난하고 병든이들을 도왔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인 디니스에게도 마찬가지였었죠. 아마도 이것은 이사벨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했을 것입니다.

 

포르투갈의 디니스, 이사벨의 남편

 

이사벨의 남편인 디니스와 이사벨의 아들인 아폰수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디니스가 자신의 사생아 아들이었던 아폰수 산체스를 자신의 적자인 아폰수보다 더 좋아했었기 때문입니다. 아폰수 산체스는 디니스의 첫아들로 아마도 시인이었으며 여러방면에 재능이 있었던 아버지 디니스를 많이 닮았었던듯합니다. 그리고 디니스는 이런 첫아들을 좋아했었습니다. 문제는 디니스가 아폰수 산체스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려했었고 이것은 적자인 아폰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부자 사이는 점차 더 나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폰수 4세, 이사벨의 아들

 

결국 디니스와 아폰수간의 세력들은 자꾸 부딪히게 되었으며 결국 내전을 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아폰수는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서 불복하고 아버지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들과 함께 내전을 하려합니다. 이때 이사벨이 부자간의 중재를 해서 전쟁을 막았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폰수가 아버지에게 전쟁을 선포했을때 이사벨은 아들을 말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폰수는 듣지 않았고 결국 디니스와 아폰수의 군대가 강을 두고 대치하게 되죠. 이사벨은 남편을 따라 전장으로 왔으며 양측을 다시 한번 중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중재가 성공하죠. 그리고 평화협정이 체결되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다시 한번 상황은 위태롭게 되지만, 1325년 1월 디니스가 사망하고 아폰수가 포르투갈의 국왕 아폰수 4세로 즉위하면서 내전의 위협은 끝이 나게 됩니다.

 

부자간의 전쟁을 말리는 이사벨

 

이미 오래도록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을 돌봐왔던 이사벨은 남편이 죽자 궁정에서 은퇴하고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사벨은 왕비였었으며 국왕의 어머니였음에도 자선사업에 열정을 쏟았으며 자신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청산하고 청빈하게 살면서 많은 이들을 돕는데 열중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마도 이사벨이 사람들에게 더욱더 많이 존경받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여행을 한 이사벨

 

이런 존경받는 사람이었던 이사벨은 이전에 남편과 아들을 중재했었던것처럼 다시 한번 전쟁을 막을임무가 주어지게 됩니다. 1336년 이사벨의 아들인 아폰수 4세는 사위인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11세와 전쟁 직전으로 가게 됩니다. 이 상황은 아폰수 4세가 자신의 딸을 홀대하는 사위 알폰소 11세에게 불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알폰소 11세는 이사벨의 손녀인 포르투갈의 마리아와 결혼했지만 결혼전 이미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레오노르 데 구스만은 알폰소 11세가 사랑한 여성으로 알폰소 11세는 아내인 왕비를 무시하고 자신의 정부와 그 자녀들을 매우 총애하고 있었죠. 이런 상황은 당연히 아폰수 4세가 사위에게 화를 내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사벨은 아들과 손녀사위간의 중재를 맡았으며 이사벨의 중재를 통해서 포르투갈과 카스티야는 전쟁은 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삻라도 전투에서 무슬림 세력에 대항해서 함께 싸우는 포르투갈의 아폰수 4세와 카스티야의 알폰소 11세, 이랬지만 내부문제로 둘이 싸울지경이 되죠.

 

하지만 늙고 병들었던 이사벨에게 이런 큰 임무는 그녀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었으며, 전쟁을 막은 직후에 이사벨은 사망하게 됩니다. 

 

매우 종교적이었으며 자선사업에 열중했었던 이사벨은 죽은 직후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사벨을 존경하던 많은 이들의 마음에 이사벨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사벨의 이야기들은 널리 퍼지게 되었으며 16세기에는 이사벨에 대한 공경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으며 17세기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서 시성되게 됩니다.  축일은 이사벨이 사망한 7월 4일이라고 합니다.

 

성 포르투갈의 이사벨(엘리자베트)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