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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인판타들...(15) 아라곤의 이사벨 : 페드로 3세의 딸(첫번째)

엘아라 2021. 3. 3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역시 금방가니까 자료가 많이 나오네요..

그나저나 하이메 1세가 마요르카를 분할 상속하는 바람에 아마도 분가로 마요르카를 잠시 보고 넘어가야할듯 합니다.-0-;;;;

 

아라곤의 인판타들...(15) 아라곤의 이사벨 : 페드로 3세의 딸 (첫번째)

 

 

아라곤의 이사벨

아라곤의 엘리사벳

포르투갈의 왕비

포르투갈의 성 엘리자베트

Elizabeth of Aragon,

Saint Elizabeth of Portugal,

(1271 – 4 July 1336),

 

후에 포르투갈의 성 이사벨(엘리자베트)라는 이름으로 더 잘알려지게 되는 아라곤의 이사벨은 아라곤의 국왕 페드로 3세와 그의 아내인 시칠리아의 콘스탄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이사벨의 아버지인 페드로 3세는 군사적으로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으며 특히 아내의 권리를 이어받아서 시칠리아 왕국을 차지하려 노력했었으며 시칠리 섬을 군사적으로 얻기까지 했던인물이었습니다.

 

이사벨의 아버지, 아라곤의 페드로 3세

 

이사벨의 어머니인 콘스탄사는 호엔슈타우펜 가문 출신으로 할아버지가 바로 황제 프리드리히 2세였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 사후 제국은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특히 프리드리히 2세가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은 시칠리아 왕국은 교황과의 불화때문에 프리드리히 2세의 후손에게 왕위가 가지 못하게 됩니다. 복잡한 정치 상황으로 콘스탄사의 아버지였던 만프레디가 시칠리아 왕국을 손에 넣게됩니다. 사실 만프레디는 적자가 아니었기에 상속권이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조카에게서 왕위릎 뺏아서 시칠리아 국왕이 된 상황이었죠. 하지만 호엔슈타우펜 가문에 불만이 많았던 교화은 시칠리아 왕국을 호엔슈타우펜 가문에게서 뺏아서 프랑스의 루이 8세의 아들인 앙주 공작 샤를을 시칠리아의 국왕으로 선포해버립니다. 이후 당연히 앙주 공작은 자신의 영지가 될 시칠리아 왕국을 얻기 위해 전쟁을 했었으며 결국 만프레디는 패배했던것입니다. 하지만 만프레디는 동맹을 위해서 딸인 콘스탄사를 아라곤의 왕위계승자와 결혼시켰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은뒤 콘스탄사는 시칠리아 왕국의 상속권을 주장했었고, 남편인 페드로 3세가 아내의 권리를 위해서 전쟁을 했던 것입니다.

 

이사벨의 어머니 시칠리아의 콘스탄사, 아라곤의 왕비,시칠리아의 여왕

 

이사벨은 다른 많은 중세 여성들처럼 어린시절에 대해서 알려진바가 거의 없습니다만, 어린시절부터 매우 신앙심이 깊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사벨은 다른 많은 왕족여성들처럼 정략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사벨의 아버지는 아라곤의 국왕이었을뿐만 아니라 시칠리아 왕국과도 연결고리가 있었죠. 특히 그녀의 아버지인 페드로 3세는 시칠리아 왕국을 점령하려하고 있었고 이런 상황은 프랑스와 잉글랜드마저 연결되는 복잡한 외교관계 속에서 인근 이베리아 반도 국가들이 아라곤과의 동맹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결과를 낳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국왕이었던  디니스는 이 아라곤 왕국과의 동맹을 결정하죠. 

 

포르투갈의 디니스

 

1280년 말 이사벨과 디니스와의 결혼식이 결정됩니다. 이띠 이사벨의 나이는 10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둘의 결혼은 결정이 되었으며 1281년에는 둘의 결혼식에 대한 여러가지 준비가 진행됩니다. 이사벨의 아버지인 페드로 3세는 딸에게 혼수로 줄 영지를 문서로 확인하기도 했었습니다. 

둘의 결혼식은 1282년 둘의 결혼식이 열렸다고 알려져있는데 이때 이사벨의 나이는 11살이 되지 않았으며 디니스는 20살 정도였었습니다. 하지만 둘의 결혼은 이사벨이 너무 어렸기에 완성되지는 않았었던듯합니다.  둘의 실제적 결혼식이나 또는 결혼이 환성된것은 아마도 1288년정도로 이때 디니스는 26살이었고 이사벨은 17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1290년과 1291년 딸인 콘스탄사와 아들인 아폰수를 낳았죠.

 

디니스와 이사벨

 

이사벨은 포르투갈에서 어린시절부터 지냈던 종교적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가난하고 병든이들을 돌보는데 열중했었으며 병원과 보호소 그리고 수도원을 세우는 일을 했었죠. 이런 종교적 삶은 포르투갈 궁정에서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디니스는 많은 국왕들처럼 교회와 갈등을 빚고 있었고 이런 상황은 그의 아내이자 왕비인 이사벨이 종교에 헌신하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좋지 않게 보는 이들이 생겨나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인 디니스는 아내인 이사벨이 자선사업을 하는것을 말리지 않았으며 도리어 자선사업에 돈을 마음대로 쓸수 있도록 해주기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아마도 이사벨이 훗날 성인으로 시성된뒤 이사벨의 할머니인 헝가리의 비올란트의 언니이자 시성되었던 튀링겐의 란트그라핀이었던 성 엘리자베트의 장미 이야기가 이사벨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이야기 되게 되는듯합니다.

 

장미를 들고 있는 성 이사벨, 그러고 보니 저 장미이야기는 헝가리의 성엘리자베트(튀링겐의 란트그라핀)이야기랑 비슷하네요.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