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있는글들/월요일 : 정부들

정부들과 그 후손들...(305) 아우구스타 뢰벤옐름 : 칼 13세의 정부 (두번째)

엘아라 2021. 3. 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정부들과 그 후손들...(305) 아우구스타 뢰벤옐름 : 칼 13세의 정부 (두번째)

 

크리스티나 아우구스타 폰 페르센

크리스티나 아우구스타 뢰벤옐름

Christina Augusta Löwenhielm née von Fersen 

(10 March 1754 – 8 April 1846), 

극장에서 춤을 추는 아우구스타

 

 

아우구스타는 칼 왕자가 결혼한 뒤에도 돌아올수는 없었습니다. 구스타프 3세는 동생을 통해서 후계자를 얻길 바랬기에 적어도 적자가 태어날때까지 동생 부부에게 다른 사람이 끼어들길 원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곧 칼의 아내인 헤드빅 엘리자베트는 임신했다고 알려지게 되죠. 하지만 임신 사실은 이상하게 흐지부지 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지만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 오자 다시 아무런 이야기가 없게 되죠. 아마 이런 상황은 구스타프 3세가 동생을 통해 후계자를 얻는 것에 대해서 기대감을 버리게 만들었을 것이며 결국 아내인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와의 사이를 좀더 발전시켜서 결국 스스로 후계자를 얻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칼 왕자의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공표되면서 아우구스타는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776년 가을에 스웨덴으로 돌아왔으며 1776년 11월에는 칼 왕자의 아내인 헤드빅 엘리자베트에게 정식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쇠데르만란드 공작 부인 헤드빅 엘리사벳 카를로타, 칼 13세의 왕비

 

스웨덴으로 돌아오기전 아우구스타는 드레스덴에서 다른 남자들과 연애질을 했었으며 스웨덴으로 돌아온뒤에도 여러 남자들과 연애질을 하게 됩니다. 아우구스타는 칼 왕자의 공식 정부가 아니었으며 그녀는 아마도 칼 왕자와의 사이도 다른 남자들과의 연애질과 다를바 없다고 여겼었던듯합니다. 하지만 칼 왕자는 아우구스타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길 바랬었습니다. 스웨덴으로 돌아온뒤 아우구스타는 처음에는 칼 왕자와의 관계를 이어가는데 시큰둥했다고 합니다만 결국은 다시 칼 왕자와 연애질을 하게 되죠. 하지만 아마도 이 상황은 둘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게 되는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아우구스타는 한스 에릭 폰 에센 남작과 연애관계가 되었으며 칼 왕자와의 관계는 멀어지게 되죠. 결국 아우구스타가 에센 남작과 연애질 하면서 칼 왕자 역시 샤를로트 슬로스베리라는 여성과 연애질을 하면서 둘은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

 

구스타프 3세와 두 동생들인 칼과 프레데릭 아돌프

 

아우구스타는 스웨덴으로 돌온 뒤인 1777년부터 궁정에서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의 시녀로 일하게 됩니다. 아우구스타와 언니인 울라 그리고 루이즈 메예펠트Meijerfeldt는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의 시녀들로 three Graces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것은 아우구스타가 당대를 대표하는 여성중 한명이라는 의미이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아우구스타는 프랑스에 있을때 춤을 배웠었으며 이것은 그녀가 스웨덴에서 극장에서 아마추어 댄서로 춤을 추기도 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녀 외에도 다양한 귀족 여성들이 아마추어로 극장에서 공연을 했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타는 매우 아름답고 상냥한 성격이었으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연적이었던 칼 왕자의 부인인 헤드빅 엘리자베트 카를로타 역시 아우구스타에 대해서 호의적인 시선을 가지기도 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인기는 아우구스타가 궁정 스캔들에 휘말리는 계기가 됩니다.

 

아우구스타는 10여년간 한스 헨릭 폰 에센 남작과 연인관계였었지만 에센 남작은 한 상속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하고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됩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자 궁정의 많은 사람들은 아우구스타를 동정했었다고 합니다. 결국 에센 남작은 그 상속녀와 결혼하지 못했었는데,이후 에센 남작은 그 상속녀와 결혼하길 원했던 아돌프 리빙 백작과 결투하게 됩니다. 결투로 모두 죽지는 않았지만 결투는 불법이었기에 국왕에 의해서 이들은 벌을 받는데 특히 리빙 백작은 이에 대해서 매우 불만을 품었고 후에 구스타프 3세의 암살에 관여했다고 합니다.(재미난 것은 공범이었지만 리빙 백작은 직접적으로 가장 무도회에 가지 않았지만 에센 남작은 국왕 곁에서 있다가 국왕이 암살당하자 무도회장 문을 잠궈서 암살범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았었다고 합니다.)

 

한스 헨릭 폰 에센 남작, 아우구스타의 오랜 연인

 

아우구스타의 궁정 지위는 구스타프 3세가 귀족들과 마찰을 빚기 시작하면서 위협을 받게 됩니다. 아우구스타의 숙부였던 악셀 폰 페르센이 국왕에 의해서 체포당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인 카를로타가 여전히 왕비의 시녀장으로 있었기에 아우구스타나 언니 울라 역시 여전히 궁정 시녀 지위는 유지했었죠. 하지만 1795년 어머니가 시녀장 지위를 잃게 되자 아우구스타나 언니 울라 역시 궁정에서 떠나야했었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이유로는 건강이 악화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만 이후 그녀는 다시 궁정 지위를 얻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재미난 것은 아우구스타는 롤로테 포르스베르그를 궁정에 소개시킨 사람이 아우구스타라는 것입니다.

 

궁정에서 물러난뒤 아우구스타는 종교에 귀의했으며 자선사업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나이든 후의 아우구스타,1844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