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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36) 벨프 가문 :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시조 오토 1세

엘아라 2020. 12. 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가 이렇게 시작된줄 몰랐습니다.

후에 이 가문은 볼펜뷔텔로 또 갈리거든요. 아 족보를 미친듯이 파야할듯합니다. ㅠ.ㅠ

 

유럽의 통치 가문들...(36) 벨프 가문 :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시조 오토 1세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루르크의 오토 1세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Otto I of Brunswick-Lüneburg 

(about 1204 – 9 June 1252),

황제 프리드리히 2세 앞에 있는 오토 1세

 

 

이후 모든 벨프 가문의 선조가 되는 오토 1세는 윈체스터의 빌헬름과 그의 아내인 덴마크의 헬레나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바이에른과 작센의 공작이었던 하인리히 데어 뢰베였었습니다.  오토의 할아버지였던 하인리히 데어 뢰베는 사촌이었던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와 대적했고 그 결과 영지를 다뺏기기도 했었죠.

복잡한 정치 관계는 이후 영지 상속 문제도 복잡해졌는데 오토의 아버지는 하인리히 데어 뢰베의 막내아들이었고 이때문에 뤼네부르크 인근 지역(작센)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오토의 아버지인 빌헬름은 1213년 사망했으며, 이때문에 오토는 미성년 상태에서 영지를 물려받게 됩니다. 그리고 백부들이 섭정으로 통치했었다고 합니다. 이후 복잡한 상속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토의 백부들인 하인리히(라인의 팔츠 그라프 하인리히 5세)와 오토(황제 오토 4세)가 모두 남성상속자가 일찍 죽거나 자녀가 없없게 됩니다. 이에 오토가 강력한 영지 상속 후보자가 됩니다. 백부인 하인리히에게는 딸들이 있었고 딸들에게 후손이 있었기에 하인리히 5세는 외손자에게 물려줄지 조카에게 물려줄지 고민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조카인 오토를 상속인으로 삼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하인리히의 사위들이 순순히 용납하지 않았으며 또 벨프 가문이 더 강력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황제 프리드리히 2세 역시 이를 지원하죠. 하지만 오토는 브라운슈바이크 지역을 장악하고 군대를 무찌르고 자신의 영지를 확고히 했었습니다. 

 

오토의 백부인 라인의 팔츠 그라프 하인인리히 5세

 

이 상황에서 오토는 외가인 덴마크와 연합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이때문에 그는 포로로 잡히게 되었으며 복잡한 몸값문제에 휩쓸리게 되죠. 그리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결국 오토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화해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황제는 오토가 물려받아야할 작센 공작령을 이미 다른 신하에게 넘겼기에 오토는 작센 공작령을 인정받을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황제는 오토의 영지들인 브라운슈바이크와 뤼네부르크의 지역을 합쳐서 공작령을 만들었으며 오토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토1세는 브란덴부르크의 마틸다와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은 정략결혼으로 마틸다의 숙부가 작센의 공작이 되는 안할트의 베르나르트였다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오토의 아버지와 마틸다의 아버지는 작센의 공작령 전체에 대한 통치권때문에 이 혼담을 추진했었다고 합니다. (오토 1세의 영지가 되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는 원래 작센 공작령의 일부이기도 했었습니다. ) 오토 1세는 마틸다와 결혼했지만 작센 공작령은 마틸다의 사촌에게 돌아가게 되죠.

 

브란덴부르크의 마틸다

 

오토 1세에게는 여러 자녀들이 있었는데 두아들인 알브레히트와 요한이 아버지의 영지를 물려받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