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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300) 마르거리트 뒤 롱델 : 스웨덴의 아돌프 프레드릭의 정부(두번째)
마르거리트 뒤 롱델
마담 뒤롱델
Marguerite Du Londel or Dulondel
(Jeanne-Pierre-Marie–Marguerite Morel;)
( 1737–1804)
1759년 루이 뒤 롱델과 결혼한 마르거리트는 마담 뒤 롱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1760년부터 스웨덴의 국왕 아돌프 프레드릭의 정부가 됩니다. 아돌프 프레드릭은 이전에 마르거리트의 시어머니였던 잔 뒤 롱델과 연애질을 했었고 아들도 뒀었지만, 이것은 결혼전 일이었으며, 결혼후에 정부를 둔것은 마르거리트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재미난 것은 마르거리트는 국왕의 정부가 된 뒤 남편과 따로 살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어쩌면 마르거리트와 루이 뒤 롱델의 결혼도 국왕과의 관계와 연결되는 것일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르거리트와 아돌프 프레드릭과의 관계는 공식적인것은 아니었고 마르거리트는 아돌프 프레데릭의 공식정부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와 국왕과의 관계는 완전한 비밀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로비사 울리카 왕비는 남편의 바람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마르거리트가 한 연극에서 "내가 어린시절에 나는 국왕의 취향이었지"라는 대사를 했었는데 이것은 그녀와 국왕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주는 대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비사 울리카 왕비는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마르거리트는 1761년 프레데리키Frederici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아들은 프레데리키 프레드릭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당연히 아돌프 프레드릭의 아들이었기에 스웨덴 왕가에서 키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르거리트와 아돌프 프레드릭과의 관계는 1765년경 끝나게 됩니다. 왜냐면 아돌프 프레드릭은 1766년 로비사 울리카의 시녀였던 울라 폰 라이웬이라는 여성과 연애관계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마 마르거리트는 국왕과의 관계가 끝난뒤에 여전히 배우로 일했을 것입니다.
1771년 아돌프 프레드릭이 죽고 그의 아들인 구스타프 3세가 국왕이 됩니다. 그는 극단을 모두 해고했으며 연금을 한푼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르거리트와 그녀의 남편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구스타프 3세는 아버지의 뜻이라면서 마르거리트와 그녀의 남편에게 연금을 지급했으며, 마르거리트의 아들인 프레데리키를 이복동생으로 정식으로 인정해줬다고 합니다만, 프레데리키는 1771년 사망합니다.
마르거리트와 그녀의 남편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길 바랬으며 결국 프랑스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에 남아있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었으며 스웨덴으로 가기로 결정했으며 1792년 스웨덴으로 갑니다. 마르거리트는 1793년 과부가 되었는데, 당시 국왕이 된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섭정들은 그녀의 연금을 줄여버렸고 마르거리트는 경제적으로 힘들게 되죠. 마르거리트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살았는데 1796년 딸인 마리 루이즈 뒤 롱델이 결혼한 뒤에는 사위의 도움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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