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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의 인판타들...(46) 제르메나 데 푸아 : 레오노르의 손녀(첫번째)

엘아라 2020. 9. 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분도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네요 -0-;;;

 

나바라의 인판타들...(46) 제르메나 데 푸아 : 레오노르의 손녀(첫번째)

 

제르메나 데 푸아

제르멘 드 푸아

아라곤의 왕비

Germaine of Foix

(Catalan: Germana de Foix; French: Germaine de Foix;)

(1488 – 15 October 1536) 

제르메나의 문장

 

프랑스식으로는 제르멘 드 푸아일 제르메나는 나르본 자작이었던 나바라의 후안 (장 드 푸아)와 그의 아내인 마리 도를레앙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할머니는 바로 나바라의 여왕이 되는 레오노르였으며 그녀의 외삼촌은 프랑스의 루이 12세였습니다.

 

제르메나의 아버지인 후안은 아버지로부터 나르본 자작 지위를 물려받았으며, 프랑스 국왕들이었던 루이 11세나 루이 12세와도 호의적관계였습니다. 이때문에 그는 루이 12세의 누나와 결혼할수 있었을 듯합니다. 

후안은 조카인 프란치스코 페부스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프란치스코 페부스의 누이동생이었던 카타리나가 아니라 자신이 나바라의 왕위를 이어야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나바라는 여성계승자를 인정했지만 성인남성인 후안과 미성년자인 카타리나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바라의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것은 결국 내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결국 후안은 성공하지 못했으며 조카를 위해서 왕위계승권리를 포기하게 됩니다.

 

제르메나는 외삼촌인 루이 12세의 궁정에서 있으면서 자라났으며 교육을 받았었습니다. 특히 1493년 어머니인 마리 도를레앙이 죽었으며 1500년에는 아버지인 후안 마저 사망했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나바라에 적대적이었기에 친가의 도움을 받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외삼촌은 프랑스의 국왕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것은 그녀의 외삼촌이 그녀의 결혼을 정략적으로 이용할수 있게 했을 듯합니다.

 

제르메나의 외삼촌, 프랑스의 루이 12세

 

제르메나는 1506년 아라곤의 국왕 페르난도 2세와 결혼합니다. 페르난도 2세는 첫번째 아내인 카스티야의 여왕인 이사벨 1세가 1504년 죽은뒤 홀아비가 되었으며 사위와 권력다툼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제르메나와 결혼해서 나바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수 있을뿐만 아니라 그녀가 아들을 낳는다면 왕국을 딸과 그 후손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을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프랑스 측에서는 눈엣가시인 합스부르크 가문을 견제할수 있을뿐만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 등에서의 문제도 적절히 해결할수 있어서 당연히 좋았을 것입니다.

 

페르난도 2세는 1506년 아마 자신의 뜻대로 되는듯했을 것입니다. 아들을 낳아줄 새 아내를 맞았을뿐만 아니라 아내를 통해서 한때 아라곤의 영향력아래 있었던 나바라의 영향력을 다시 얻을수 있을수 있었으며, 또 자신과 권력다툼을 하던 사위가 죽었기에 경쟁자가 사라지게 되기도 했었을 것입니다. 페르난도는 사위가 죽은뒤 다시 카스티야의 통치 권력을 되찾았었죠. 1509년 페르난도와 제르메나 사이에서는 아들인 후안이 태어납니다. 모두에게 기쁜 일이었을테지만 이 아들은 얼마 살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둘은 후계자를 더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 가톨릭 공동 군주

 

1516년 페르난도 2세는 다른 자녀들을 얻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아라곤의 왕위는 결국 페르난도2세와 이사벨1세의 딸 후아나와 그녀의 아들인 카를로스( 카를 5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페르난도 2세는 제르메나에게 엄청난 유산을 남겼으며, 외손자인 카를로스에게 제르메나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었습니다.

 

1517년 카를로스는 네덜란드에서 에스파냐로 오게 되고, 의붓할머니인 제르메나를 만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