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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의 인판타들...(45) 나바라의 카타리나 : 레오노르의 손녀(두번째)

엘아라 2020. 8.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나바라 다해가네요 -0-;;;

다음으로는 아라곤입니다. (ㅠ.ㅠ 카스티야는 진짜 손대기가 너무 어려워요...ㅠ.ㅠ 가계도를 한판 정리를 하던가 해야겠어요 ㅠ.ㅠ)

 

나바라의 인판타들...(45) 나바라의 카타리나 : 레오노르의 손녀(두번째)

 

나바라의 카타리나

Catherine 

(Basque: Katalina, Occitan: Catarina;)

1468 – 12 February 1517)

 

카타리나와 그녀의 남편인 후안이 1494년 즉위식을 거행했었습니다만 둘의 통치기가 평안한것은 아니었습니다. 카타리나의 어머니이자 섭정이었던 마들렌은 압력을 피하기 위해서 페르난도 2세의 인질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것은 카타리나 부부가 대관식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듯합니다만, 다음해인 1495년 마들렌은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이것은 도리어 더 복잡한 문제를 낳게 됩니다.

 

카타리나의 어머니 마들렌

 

어쨌든 위태롭긴 했지만 카타리나와 남편 후안3세는 정식 대관식을 치루고 나바라를 통치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외부의 문제는 여전히 이들을 괴롭혔습니다. 특히 야심가득했던 페르난도 2세는 여전히 나바라 왕국의 계승권리에 대해서 미련을 놓치 않았으며 카타리나의 사촌이었던 제르멘과 결혼하면서 이제 그는 나바라 왕위에 대해서 대놓고 욕심을 내게 됩니다. 제르멘은 카타리나의 숙부이자 역시 왕위계승을 주장했던 후안의 딸이었습니다. 

 

제르멘 드 푸아, 카타리나의 사촌,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두번째 부인 (여기 족보는 아부지의 외삼촌이랑 결혼-0-;;;)

 

물론 카타리나와 후안 3세는 이런 위험을 잘 알고 있었고 이들은 전통적인 프랑스와의 동맹을 강화하게 됩니다. 카타리나와 후안 3세는 루이 12세와 조약을 맺어서 카타리나의 후계자인 엔리케를 프랑스 공주와 결혼시키기로 합의를 봤었죠.

 

1512년 페르난도 2세는 프랑스와 마찰을 빚고 있던 교황의 지지를 등에 업고 나바라 왕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당연히 카타리나와 후안3세는 이를 받아들일수 없었습니다. 강력한 페르난도 2세의 군대는 바로 나바라를 향하게 됩니다. 카타리나와 후안 3세는 나바라의 수도였던 팜플로나에서 피신해서 베아른 지방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베아른 지방의 중심도시인 포에 자리를 잡게 되죠.

 

결국 나바라는 두개로 나눠지게 되었으며 베아른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하 나바라 지역은 카타리나와 후안 3세의 영향력아래 있었지만 에스파냐쪽에 더 가까운 상 나바라 지역은 나바라 의회의 결정으로 카스티야 지역으로 편입되게 되죠.

 

나바라 왕국과 푸아 그리고 알브레 가문의 영지, 분홍색이 카타리나가 가진 원래 나바라의 영지였습니다. 붉은색은 카스티야쪽으로 병합된 부분

 

1516년 카타리나의 남편인 후안 3세는 잃어버린 지역을 되찾기 위해 군사작전을 시작했습니다만 성공하지 못했으며 그해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이 죽은 다음해 카타리나 역시 사망하죠.

 

카타리나는 남편인 후안 3세와의 사이에서 열세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영유아기를 넘긴 자녀는 다섯명정도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나라가 저렇게 혼란했기에 딸들중 대부분은 결혼하지 않았고 수녀가 되는데 아마도 결혼할만한 적당한 남자를 찾을수 없었기 때문일듯합니다.  카타리나의 지위는 아들인 엔리케가 잇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