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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85)칼 카를손 길렌옐름 : 스웨덴의 칼9세의 아들

엘아라 2020. 8.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 진짜 이름 표기는 너무 힘들어요.

스웨덴어는 독학도 좀 했는데 말입니다. ㅠ.ㅠ

 

정부들과 그 후손들...(285)칼 카를손 길렌옐름 : 스웨덴의 칼9세의 아들

 

칼 카를손 길렌옐름

Karl Karlsson Gyllenhielm

(4 March 1574 – 17 March 1650) 

 

 

칼 카를손 길렌옐름은 칼 9세와 그의 정부였던 카린 닐스도테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칼 9세는 팔츠의 안나 마리아와 결혼하기 위해서 카린과 헤어졌으며  카린은 칼의 궁정 조신과 결혼하죠. 아마 칼 9세는 아들인 칼은 데려와서 자신이 돌보게 됩니다. 칼은 아버지에 의해서 쇠데르만란드에 있는 왕가의 후원을 받는 수도원에서 성장합니다. 수도원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교육을 잘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칼은 1592년 정식으로 인정을 받아서 길렌옐름이라는 성을 부여받았으며 기사작위를 받고 군인이 됩니다. 길렌옐름이라는 성은 칼의 백부였던 요한 3세가 자신의 사생아 자녀들에게 부여했던 성으로 그의 아버지인 쇠데르만란드 공작 칼 역시 자신의 사생아 아들인 칼을 정식으로 인정하면서 이 성을 부여한듯합니다. 이때 쇠데르만란드 공작은 재혼하는데 아마 재혼하면서 아들을 부른것일듯도 합니다. 

 

칼 길렌옐름의 아버지, 스웨덴의 칼 9세

 

1590년대 칼은 해군으로 복무했었습니다만, 이후 스웨덴-폴란드 전쟁(1600-1611)에서는 육군으로 전쟁에 참전했었습니다. 하지만 1601년 칼은 폴란드 군에 포로로 잡혔으며 무려 12년간 포로로 잡혀있어야했다고 합니다. 칼은 도망치려고 하다가 다리에 큰 상처를 입었으며 한동안 움직일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칼은 1613년에 풀려나게 되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가 폴란드에 포로가 되어있는 동안 스웨덴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칼이 포로로 있는 동안 사망했었죠.

 

칼은 스웨덴으로 돌아왔고, 그의 이복동생이자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에 의해서 남작 지위와 군사령관 지위를 받게 됩니다. 아마도 미성년으로 즉위해서 러시아, 폴란드와 덴마크등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던 상황이었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한명이라도 자신의 편이 되길 원했을 것이고 아마도 이복형을 자신의 측근으로 만들었을 듯합니다.

 

칼의 이복동생, 구스타프 2세 아돌프

1617년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의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칼은 인그리아 지방의 지사(행정관)으로 파견되었으며 1620년까지 그곳에서 일을 하다가 스웨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스웨덴으로 돌아온후 그는 해군 총사령관이 됩니다.  스웨덴에서 해군 제독들은 매우 독립적으로 해군 작전을 이끌어갔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칼은 군인으로 전장에 나서는것보다는 해군 재정문제등을 해결하는 일에 더 집중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이전에 폴란드에서의 상처때문에 활동이 불편해서 주로 후방지원을 하게 된듯합니다. 이런 위치때문에 1628년 바사호가 침몰했을때 그 조사위원회의 책임자로 일하기도 했었습니다.

 

스웨덴의 30년 전쟁에 참전하면서 칼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안심하고 전쟁에 집중할수 있게 내정과 후방업무를 담당했던 많은 인물중 하나였었죠. 그리고 1632년 뤼첸전투에서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전사하자 그의 시신을 스웨덴으로 운구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또 조카인 크리스티나가 즉위한뒤 구성된 섭정단중 한명이 되기도 하죠. 아마도 그는 자신의 조카였던 크리스티나 여왕에 대해서 매우 다정하게 대해줬었던듯합니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잃고 자신에 대해서 증오할만큼 미워하거나 과도하게 집착하던 어머니와 있던 것에 대해서 끔직하게 여겼던 크리스티나에게 가족과 같은 느낌을 들게 해줬었습니다. 크리스티나는 그가 자신을 딸처럼 대했다고 회상하기도 하죠.

 

여섯살의 크리스티나 여왕

 

1644년 크리스티나는 성인으로 직접적 통치하게 되었으며, 칼은 자신의 섭정단의 지위를 내려놓게 되죠. 이후 그는 스톡홀름 근처에 성을 짓고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칼은 조카인 크리스티나가 즉위식을 하기 직전인 1650년 봄에 사망했습니다.

 

칼은 1615년 크리스티나 리브빙이라는 여성과 결혼합니다. 크리스티나의 아버지는 귀족이자 관료였으며, 크리스티나의 어머니는 칼9세의 왕비였던 홀슈타인-고토로프의 크리스티나 왕비의 시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칼의 처제가 되는 엘리사베트 리브빙이라는 여성이 칼의 이복동생인 쇠데르만란드 공작 칼 필립과 비밀결혼해버렸고, 칼의 아내인 크리스티나가 이 비밀결혼의 증인이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