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자료가 별로 없어서 그냥 합치려다가 뒷이야기가 좀 있어서 따로 씁니다.
네...ㅠ.ㅠ 이렇게 글을 늘리고 있습니다
정부들과 그 후손들...(283) 루크레티아 요한스도테르 길렌옐름: 요한3세의 딸
루크레티아 요한스도테르 길렌옐름
Lucretia Johansdotter Gyllenhielm (1561-1585)
둘의 넷째아이이자 막내아이는 바로 딸인 루크레티아 요한스토테르 길렌옐름이었습니다. 1562년 부모가 헤어질때 루크레티아는 너무 어렸기에 아버지가 데려가지 않고 어머니인 카린이 아이를 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1577년 형제 자매와 함께 "길렌옐름"이라는 성을 부여받지만 루크레티아나 소피아는 주로 아버지의 이름인 "요한스도테르"라는 이름으로 더 잘알려졌다고 합니다. 루크레티아는 요한 3세가 제일 예뻐한 자녀였다고 합니다.
요한 3세는 루크레티아를 칼 구스타프손 스텐보크와 결혼시키려했습니다. 스텐보크 가문은 스웨덴에서 영향력있는 귀족가문중 하나였죠. 하지만 이 결혼은 성사되지 않는데, 결혼전 루크레티아가 1585년 사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딸이 죽자 요한 3세는 딸이 그냥 죽음이 자연사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가지고 조사를 명령합니다. 그리고 루크레티아의 약혼자였던 칼 구스타프손 스텐보크는 귀족여성이었던 커스틴 가브리엘스도테르라는 여성이 마녀행위를 해서 루크레티아를 죽였다고 비난하게 됩니다. 커스틴 가브리엘스도테르는 요엔 닐슨이라는 인물의 아내로 요엔 닐슨은 스몰란드지방의 총독이기도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커스틴 가브리엘스도테르는 전남편을 살해하고 루크레티아를 저주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딸을 잃은 요한 3세는 이를 듣고 그녀를 체포하게 되죠. 커스틴 가브리엘스도테르에 대해서 유죄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커스틴에 대한 판결에 대해서는 칼9세의 공작시절 전기에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커스틴은 유죄로 판결받는데 당시 쇠데르만란드 공작이었던 칼9세가 12명의 귀족 여성들이 그녀의 무죄를 보증한다면 그녀를 석방하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커스틴은 귀족여성들과 그다지 잘 지내지 못했기에 12명의 여성이 그녀의 무죄를 보증하지 않았고 결국 처형당하게 됩니다. 북유럽에서 귀족여성이 마녀행위로 처형된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합니다.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뭔가 정치적 이야기가 좀 있는것이 아닐까합니다. 커스틴의 남편인 요엔 닐슨은 에릭 14세의 신하였었으며, 칼 9세는 형인 요한과 직접적으로 갈등을 빚진 않았지만 가톨릭에 호의적인 형에게 엄청나게 반대하는 입장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커스틴에 대한 이야기로 표출된것이 아닐까 하네요.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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