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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번외편 2. 보퍼트 가문 :두번째

엘아라 2020. 2. 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유럽의 통치 가문들...번외편 2. 보퍼트 가문 :두번째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과 캐서린 스윈포드의 자녀들이었던 보퍼트 가문 사람들은 당대 모두 잉글랜드의 핵심 귀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리처드 2세는 물론 이복형인 헨리 4세와 조카였던 헨리 5세 그리고 헨리 6세 시기에 모두 중요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장남이자 서머셋 백작이었던 존 보퍼트는 사실 리처드 2세의 신임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복형인 헨리 4세가 왔을때 그는 결국 이복형을 지지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헨리 4세의 행동을 보면 그에 대해서 아주 신뢰한듯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서머셋 백작 존 보퍼트의 문장



둘째아들인 헨리 보퍼트는 후에 추기경이 되는 인물로 헨리 4세시절보다는 헨리 5세와 헨리 6세 시절에 권력자이기도 했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그가 잔다르크의 재판에 관여한 인물이며 그녀에게 혹독한 처형을 집행하도록 한 인물이라는 전설이 전해져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록상으로는 그는 이 재판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처형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헨리 보퍼트

추기경


셋째아들인 엑서터 공작 토마스 보퍼트는 형과 달리 이복형인 헨리 4세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중요한 군대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여러 군사작전에도 참가해서 공을 세우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헨리 5세 시절에도 중요한 지위를 맡았었으며 헨리 5세의 유언을 집행하는 인물중 하나로 선택되기도 했었습니다.



엑서터 공작 토마스 보퍼트의 문장



그리고 딸인 조앤은 두번 결혼했는데 특히 두번째 결혼은 당시 강력한 귀족이었던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과 결혼했었습니다. 조앤은 랄프 네빌과 결혼해서 여러 아이들을 낳았는데 후에 남편의 재산과 작위를 가지고 전처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했기에 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랄프네빌과 두아내인 마거릿 스탯포드와 조앤 보퍼트의 조상



보퍼트 가문에서 잉글랜드 왕권과 연결되는 두 사람은 바로 서머셋 백작이었던 존 보퍼트와 딸인 조앤 보퍼트였습니다. 존 보퍼트의 자녀들은 헨리 5세와 헨리 6세 시절 권력자들이었습니다. 존 보퍼트의 딸인 조앤 보퍼트는 스코틀랜드의 왕비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존 보퍼트의 후손들중 아마도 잉글랜드 왕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람은 바로 서머셋 백작이었던 존 보퍼트의 손녀인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였습니다. 바로 헨리 7세의 어머니였죠.(하지만 손녀중에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라는 손녀가 두명인것은 안비밀..ㅠ.ㅠ) 사실 보퍼트 가문은 잉글랜드 왕위계승권리에 대해서 인정 받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헨리 4세의 직계 후손들이 바닥나게 되자 보퍼트 가문의 사람들이 부상하게 됩니다. 특히 헨리 6세는 왕위계승권리와 거리가 먼 자신의 이부동생인 에드먼드 튜더를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와 결혼시키게 됩니다. 이것은 보퍼트 가문에서 왕위계승권리가 높다고 여겨진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를 동생과 결혼시켜서 둘의 자녀를 예비 왕위계승후보자로 두려했었던듯 합니다. 그리고 복잡한 장미전쟁을 거치면서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아들인 헨리 튜더가 결국 잉글랜드 국왕이 되죠.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헨리 7세의 어머니

서머셋 백작 존 보퍼트의 손녀이자 서머셋 공작 존 보퍼트의 딸



한편 조앤 보퍼트는 랭카스터 가문과 원수지간처럼 변했던 요크 가문과 연결되게 됩니다. 조앤의 딸인 시슬리 네빌은 요크 공작 리처드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요크 가문의 국왕들이었던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를 낳았습니다. 물론 조앤 보퍼트의 친손자는 "킹메이커"워릭백작 리처드 네빌로 리처드의 딸인 앤 네빌은 리처드 3세의 왕비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요크 가문의 왕들이었던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도 어머니인 시슬리 네빌을 통해서 보퍼트 가문의 후손이자 랭카스터 공작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시슬리 네빌, 캐서린 스윈포드의 외손녀

요크 공작부인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의 어머니



보퍼트 가문은 원래 잉글랜드 왕위계승권리가 애매한 가문이었습니다. 리처드 3세는 이들을 랭카스터 공작의 적자로 인정해줬고 왕위계승권리도 인정해주는 분위기였지만, 보퍼트 가문 형제들의 이복형이었던 헨리 4세의 경우 도리어 이복 동생들의 왕위계승권리에 대해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장미전쟁이 진행되고 랭카스터 가문의 후계자들이 바닥나면서 바뀌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요크 가문이 승리를 거둔 시점에서 랭카스터 가문은 물론 보퍼트 가문의 남성후계자들 모두가 살해당하는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아들인 헨리 튜더가 랭카스터 가문의 후계자라고 주장할수 있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헨리 6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