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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의 인판타들...(20) 베아트리스 :테오발도 1세의 딸
나바라의 베아트리스
부르고뉴 공작부인
Beatrice of Navarre
(1242? – 1295)
상파뉴의 베아트릭스 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나바라의 베아트리스는 상파뉴 백작이자 나바라의 국왕이었던테오발도 1세와 그의 세번째 아내인 부르봉의 마르거리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이때 부르봉의 영주는 프랑스 왕가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부르봉의 영지가 프랑스 왕가의 소유가 된것은 마르거리트의 조카였던 알샹보9세Archambaud IX 에게 두 딸들이 있었으며 둘째딸이 부르고뉴 공작의 아들과 결혼했었으며 또 이 둘째딸을 통한 알샹보 9세의 외손녀인 베아트리스가 부르봉의 영지를 모두 물려받았으며 프랑스의 국왕 루이 9세의 아들인 로베르와 결혼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베아트리스와 로베르의 아들이었던 루이가 첫번째 부르봉 공작이 되었으며 이후 부르봉 가문은 프랑스 왕가의 방계 왕가 가문이 되는것이었습니다.)
베아트리스의 어머니
부르봉의 마르거리트
나바라의 왕비
베아트리스는 1258년경 부르고뉴 공작이었던 위그 4세의 두번째 아내가 됩니다. 위그 4세는 드뢰 백작이었던 로베르 3세의 딸이었던 욜랑드와 결혼햇엇는데 1248년경 욜랑드가 사망하고 그 뒤에 다시 재혼한것이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베아트리스의 사촌이었던 부르봉의 영주였던 알샹보 9세의 둘째딸인 아그네스가 결혼한 사람이 위그 4세와 드뢰의 욜랑드의 둘째아들이었던 부르고뉴의 장이었다는 것입니다.
부르고뉴 공작 위그 4세의 씰
베아트리스의 남편
베아트리스는 위그 4세와의 사이에서 모두 다섯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녀의 남편이 죽은뒤 부르고뉴 공작 지위는 의붓아들인 로베르가 잇게 됩니다. 베아트리스는 남편이 죽은뒤 은퇴하지만, 아마도 나이많은 남편과 젊은 아내 그리고 나이든 아들의 많은 관계들처럼 상속문제로 갈등을 빚었을 것이며 이것은 남편이 죽은뒤 베아트리스가 의붓아들인 공작 로베르 2세와 갈등을 빚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프랑스의 국왕인 필리프 2세에게 보호를 요청했었다고 합니다.
부르고뉴 공작 로베르 2세의 씰
베아트리스의 의붓아들
베아트리스의 자녀들중 딸이었던 이자벨은 후에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독일의 국왕이 되었던 루돌프 1세의 두번째 아내로 "독일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부르고뉴의 이자벨
국왕 루돌프 1세 합스부르크의 두번째 아내
베아트리스의 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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