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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라의 인판타들...(18) 블란카 : 테오발도 1세의 딸

엘아라 2020. 2. 1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왠지 상파뉴 가문 이후로는 프랑스 가문이라서 이름도 프랑스 식으로 읽어야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읽던대로 에스파냐식으로 읽겠습니다. -0-;;;;


나바라의 인판타들...(18) 블란카 : 테오발도 1세의 딸 



나바라의 블란카

브르타뉴 공작부인

Blanche of Navarre

Blanche of Champagne

 (1226 – 12 August 1283), 


상파뉴의 블랑쉬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나바라의 블란카는 상파뉴 백작이자 나바라의 국왕이 된 테오발도 1세(상파뉴의 티보 4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보죄의 아그네스의 유일한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테오발도 1세는 상파뉴 계승 전쟁의 평화 협정의 일환으로 로렌의 공작부인이었던 다고스부르의 거르트루드와 결혼했었습니다만 이것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기에 테오발드 1세는 성년이 되는 시기에 그녀와의 결혼을 무효로 돌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죄의 백작의 딸이었던 아그네스와 결혼한것이었죠. 하지만 아그네스는 1231년 사망했으며 이후 1232년 부르봉 영주의 딸이었던 부르봉의 마르거리트와 결혼했었습니다.


테오발도 1세는 세번 결혼했었지만 거의 40이 가까운 나이였던 1239년까지 아들을 얻지 못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1234년 나바라의 왕위를 얻으면서 그의 장녀인 블란카의 존재를 더 중요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테오발도 1세가 아들없이 사망할 경우 상파뉴 백작영지는 애매할수 있었지만, 나바라는 여성의 계승권리를 인정하기에 그의 장녀인 블란카가 나바라의 왕위계승권리를 얻게 될것이며 그녀의남편은 나바라의 국왕이 될수있는 상황이었죠. 이것은 블란카의 혼담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브르타뉴 공작 피에르(블란카의 시아버지)와 휴10세 뤼지냥과 함께 있는 테오발도 1세(상파뉴의 티보 4세)



블란카는 1236년 브르타뉴 공작이었던 장 1세와 결혼합니다. 아마 이 결혼은 블란카가 가진 왕위계승권리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테오발도 1세는 블란카의 남편이었던 장 1세를 자신의 후계자 후보중 한명으로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1239년 이후 테오발도 1세에게 아들들이 태어나면서 브르타뉴 공작은 나바라에 대한 계승 권리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브르타뉴 공작 장 1세

블란카의 남편


블란카는 장 1세와의 사이에서 여덟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위의 세 아이만이 성인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270년 블란카는 남편과 함께 수도원을 세웠으며 죽은뒤 그 수도원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죽은 뒤 3년 정도 더 살다가 사망했고 역시 아내가 묻힌 그 수도원에 묻힙니다.



브르타뉴 공작 장 2세의 씰

블란카의 아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