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92) 포르투갈의 마리아 아델라이드 : 브라간사 공작 미겔의 딸

엘아라 2019. 7. 2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미겔의 딸들 이야기는 제대로 안나와요..흑

어쨌든 본편 마지막입니다. 다음편은 맺음말정도입니다.

다음은 어디를 해야할지 고민입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 아라곤 왕국, 나바라 왕국중 한곳을 하려고 합니다만 복잡한 이베리아 반도 상황이랑 맞물려서 읽어야할것이 너무 많네요. 게다가 시작은 전부 10세기 이전이라 좌절 엄청 할것같구요 -0-;;;;


포르투갈의 인판타들...(92) 포르투갈의 마리아 아델라이드 : 브라간사 공작 미겔의 딸



포르투갈의 마리아 아델라이드

Maria Adelaide of Braganza, Infanta of Portugal

Maria Adelaide Manuela Amélia Micaela Rafaela

(31 January 1912 – 24 February 2012)



인판타 마리아 아델라이드는 1912년 프랑스에서 브라간사 공작 미겔과 그의 두번째 아내인 뢰벤슈타인-베르테임-로젠베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태어났을때 포르투갈은 공화국이 되었으며 당시 국왕이었던 미겔 2세와 그의 어머니인 아멜리 왕비 역시 망명중이었습니다. 이때문에 아마도 마리아 2세의 후손이었던 미겔 2세와 마리아 2세의 숙부였던 미겔1세의 후손이었던 브라간사 공작 미겔의 가족들이 서로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바뀌었던 듯합니다. 이런 결과 미겔 2세와 아멜리 왕비는 마리아 아델라이드의 대부모가 되어줬다고 합니다.



아멜리 왕비와 아들인 미겔 2세

마리아 아델라이드의 대부모



마리아 아델라이드는 독일에서 교육받고 자라났으며 특히 2차대전때는 간호사와 사회 봉사자로 사람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폭격이 일어나면 한밤중에라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집밖으로 나갔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에 가입했었으며 이것은 게쉬타포가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계기가 됩니다. 마리아 아델라이드가 위험해졌을때 그녀의 안전에 개입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포르투갈의 국회의장이었던 안토니오 드 올리비에라 살라자르였습니다. 그는 독일에 마리아 아델라이드가 포르투갈에 중요한 인물임을 강조하면서 그녀가 무사할수 있도록 힘을 실어줍니다. 결국 마리아 아델라이드는 풀려나서 오빠가 살고 있던 스위스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뒤 오스트리아로 돌아오죠



두아르테 누노 데 브라간사

마리아 아델라이드의 오빠



마리아 아델라이드는 1945년 네덜란드 출신의 과학자였던 니콜라스 반 우덴과 결혼합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피부과의사가 되죠. 이후 마리아 아델라이드는 1949년 남편과 함께 포르투갈로 갑니다. 마리아 아델라이드의 남편인 니콜라스는 포르투갈에서 의사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때문에 작은 연구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는 꽤나 중요한 연구를 할수 있게 되었으며 이후 의생리학부분에서 권위있는 학자가 됩니다.


포르투갈에서 마리아 아델라이드는 사회 사업에 집중합니다. 그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관을 만들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아이들이나 고아들을 돌보는 사업을 집중했습니다.특히 그녀가 봉사하던 곳은 포르투갈에서 빈민가였다고 합니다.


이런 사회사업은 마리아 아델라이드가 100살이 되던 2012년 1월 포르투갈 대통령이 그녀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훈장을 수여받은 직후 사망하게 되죠.


마리아 아델라이드의 이런 일들은 그녀의 조카이자 브라간사 공작으로 포르투갈 왕위계승 요구자인 두아르테 피오가 포르투갈에서 홯발한 활동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두아르테 피오 데 브라간사

브라간사 공작

포르투갈의 왕위계승요구자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