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70) 마리아 2세 : 페드루 4세의 딸(첫번째)

엘아라 2018. 11. 2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페드루 4세 딸들이군요 -0-;;


지난번에 책을 쓸때 이때쯤 이야기는 좀 읽은 것이 있어서 쓸만합니다만.....ㅠ.ㅠ

그래도 읽기 싫습니다. -0-;;;


포르투갈의 인판타들...(70) 마리아 2세 : 페드루 4세의 딸(첫번째)




포르투갈의 마리아 2세

마리아 다 글로리아

포르투갈의 여왕

Maria II of Portugal

 (4 April 1819 – 15 November 1853) 

 Maria da Glória Joana Carlota Leopoldina da Cruz Francisca Xavier de Paula Isidora Micaela Gabriela Rafaela Gonzaga



포르투갈의 여왕으로 주로 마리아 다 글로리아 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마리아 2세는 1819년 리우데자네이로에서 포르투갈과 브라질의 왕위계승자였던 동 페드루와 그의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큰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인 페드루는 주앙 6세의 아들이었으며 어머니인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1세의 딸이기도 했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레오폴디나 여대공

브라질의 마리아 레오폴지나 황후

마리아의 어머니


그녀는 포르투갈 왕가가 포르투갈로 돌아갈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녀의 아버지는 독립한 브라질의 황제로 즉위했으며 그녀는 브라질의 황녀가 됩니다만 포르투갈의 정치적 상황은 그녀를 브라질이 아닌 포르투갈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1826년 3월 마리아의 할아버지인 주앙 6세가 사망합니다. 포르투갈에서는 브라질 황제가 된 페드루와 반역을 일으켰던 미겔 두명의 왕위계승후보자가 잇었으며 페드루를 왕위계승자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페드루가 포르투갈로 돌아가길 원치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브라질은 막 포르투갈에서 독립했는데 만약 군주인 페드루가 포르투갈로 돌아가 왕위를 잇는다면 다시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 지위로 떨어질것을 우려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포르투갈 내 상황도 복잡했는데 대서양 건너에 있던 페드루보다 오스트리아에 있던 미겔 역시 왕위계승을 주장하는 상황이됩니다. 결국 페드루는 포르투갈로 돌아가지 않고 대신 장녀인 마리아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대신 동생인 미겔을 마리아와 결혼시켜서 포르투갈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게 하기로 합니다. 



마리아의 아버지

브라질의 페드루 1세

포르투갈의 페드루 4세


마리아는 포르투갈로 와서 왕위에 올랐으며 그녀의 숙부이자 약혼자인 미겔이 섭정이 됩니다. 하지만 곧 미겔은 조카를 몰아내고 스스로 국왕이 되는데 여기에는 포르투갈 내부의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간의 대립이 한몫하게 됩니다. 마리아의 아버지인 페드루는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며 정당한 왕위계승자이기도 햇었습니다. 하지만 미겔은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두개의 세력이 맞부딪히게 되자 섭정이었던 미겔은 조카이자 약혼녀와의 결혼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국왕이 되기로 한것입니다. 마리아는 이때 주로 외국의 여러 왕가를 방문했고 국내 정치는 미겔이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미겔이 스스로 왕위에 올랐을때 마리아는 10살도 되지 않은 나이였으며 결국 망명길에 올라야했습니다. 



포르투갈의 미겔

마리아의 숙부


아마 포르투갈에서 쫓겨난 시기 마리아는 매우 힘든 시기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녀는 미성년자였으며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브라질에 있었으며 어머니인 마리아 레오폴지나는 마리아가 여왕이 되던 1826년 12월 아이를 유산하고 사망했는데 그녀의 아버지인 페드루 1세가 아내에게 공개석상에서 그의 정부를 인정하라고 강요한 것을 거부하자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결국 아이를 유산한뒤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고 합니다.


마리아의 후견인중 하나였던 바르바세나 후작은 마리아와 함께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포르투갈 상황을 알리려 합니다. 먼저 마리아의 외가인 오스트리아로 가려 했지만 미겔이 메테르니히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전통적인 우방인 영국으로 갑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도 미겔에 대해 호의적인물들이 많았는데 이를테면 웰링턴 공작은 공개적으로 미겔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2세


아마도 이런 상황은 마리아가 영국에서 여왕으로 대우받긴했지만 포르투갈에 대해서 행동할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포르투갈 내에서 마리아 지지자들이 모여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마리아를 지지하는 자유주의자들은 포르투갈 본토에서 있지는 못했고 포르투갈에서 떨어진 아소르스 제도의 작은 점인 테르세이라 섬을 장악하고 유일하게 미겔에 대항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마리아는 영국에서 지냈지만 점차 영국에서 있기 힘들었으며 결국은 새어머니가 되는 로이히텐베르크의 아멜리(외젠 드 보아르네의 딸)과 만나서 아버지가 있는 브라질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때 마리아는 새어머니와 함께 브라질로 가는 의붓 외삼촌인 로이히텐베르크의 아우구스트와 만나게 됩니다.



로이히텐베르크의 아멜리

브라질의 황후

마리아의 새어머니


아마 여왕이 브라질로 돌아가면서 포르투갈의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더이상의 희망이 없어보였을듯합니다만 상황은 브라질의 복잡한 정치 상황과 함께 맞물려 다시 복잡하게 돌아가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