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40)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 : 마누엘 1세의 딸

엘아라 2018. 4. 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0-;;

의외로 여기도 사람들이 없군요 -0-;;;


포르투갈의 인판타들...(40)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 : 마누엘 1세의 딸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

마누엘 1세의 딸

사보이 공작부인

Infanta Beatrice of Portugal 

(31 December 1504 – 8 January 1538)


인판타 베아트리스는 포르투갈의 국왕 마누엘 1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아라곤의 마리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베아트리스는 매우 아름답고 똑똑하고 또 야심 만만한 여성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마누엘 1세와 아라곤의 마리아 그리고 둘의 자녀들



베아트리스는 언니인 이사벨보다 더 먼저 결혼합니다. 1521년 사보이의 공작 카를로 3세와 결혼합니다. 아마도 언니인 이사벨은 장녀로 포르투갈의 왕위계승권에 가까운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사촌인 카를 5세(카를로스 1세)의 신부후보였기에 아마도 베아트리스는 통치 가문의 후손으로 사보이 공작령을 통치하고 있던 사보이 공작과 결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보이 공작인 카를로 3세는 원래는 사보이 가문 출신이긴 했지만 태어났을때는 공작령을 상속할만한 지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보이 공작이 후손없이 사망하면서 방계가문이었던 카를로 3세의 아버지가 사보이 공작령을 상속받았으며 1504년 카를로 3세의 형이 사망하면서 카를로 3세가 사보이 공작령을 이어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카를로 3세와 베아트리스는 18살 차이가 났었다고 합니다.



사보이의 카를로 3세


베아트리스는 1531년 사촌이자 형부였던 카를 5세(카를로스 1세)에게서 아들이 상속받을수 있는 영지를 얻게 된다고 합니다. 아마도 베아트리스의 언니인 이사벨과 사이가 좋았을뿐만 아니라 사보이 공작가문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사보이 공작령은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 두곳과 가까이 있었으며 이것은 두 경쟁 가문이었던 프랑스 왕가와 합스부르크 가문이 이곳에서 경쟁하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또 베아트리스는 카를 5세의 조카로 밀라노 공작과 결혼하러 왔던 덴마크의 크리스티나가 이탈리아로 왔을때 그녀를 반겼으며 또 그녀와 매우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이후 크리스티나가 과부가 되자,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아들과 크리스티나의 결혼을 지지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로렌 공작과 결혼하게 되죠.


덴마크의 크리스티나

카를 5세의 조카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를 5세는 서로 경쟁관계였고 둘은 라이벌로 대립관계가 됩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서로 전쟁을 하기도 했는데 사보이 공작가문은 여기 휘말리게 됩니다. 서로 친척관계였지만 카를로 3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을 지지하게 되고 조카였던 프랑수아 1세는 결국 외삼촌의 영지인 사보이를 점령했었죠. 이때 베아트리스는 사보이를 떠났고 덴마크의 크리스티나와 함께 밀라노에 살았었다고 합니다. 베아트리스와 그녀의 남편은 친척들 트히 황제에게 이 상황에 대해서 호소했었지만 사실 별 소득은 없었다고 합니다. 


베아트리스는 1538년 니스에서 사망했습니다.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


베아트리스와 카를로 3세와의 사이에서 아홉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만 아들이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보이 공작이 되는 엠마누엘레 필리베르토만이 살아서 성인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그는 후에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의 딸이자 앙리 2세의 여동생인 마르가레트와 결혼했고 이런 결혼관계 덕분에 사보이 공작령을 다시 되찾을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베아트리스의 아들

사보이 공작 엠마누엘레 필리베르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