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39) 포르투갈의 이사벨 : 마누엘 1세의 딸(세번쨰)

엘아라 2018. 3. 2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어쩌다가 보니 글이 세개군요..

반성중입니다..ㅠ.ㅠ


포르투갈의 인판타들...(39) 포르투갈의 이사벨 : 마누엘 1세의 딸(세번째)



포르투갈의 이사벨

마누엘1세의 딸

에스파냐의 왕비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Isabella of Portugal 

(IsabelIsabelle;Elizabeth;)

( 24 October 1503 – 1 May 1539) 


이사벨은 1526년 3월 세비야에서 카를로스와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둘의 결혼은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습니다만, 카를로스는 아름다운 이사벨을 보고 반했으며 둘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카를로스는 단순히 에스파냐 국왕일 뿐만이 아니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부르고뉴 공작이었기에 전 유럽에 영지가 있었으며 이런 상황은 그가 에스파냐에만 머물수 없었고 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국사를 돌봐야했었습니다. 이때문에 카를로스는 자주 에스파냐를 떠나야했고 아내인 이사벨은 남편을 대신해서 섭정으로 에스파냐 통치에 관여했다고 합니다. 


비록 둘은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부부는 서로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카를로스가 떠나있는 동안 둘은 서로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었습니다. 


카를로스와 이사벨


카를로스와 이사벨 사이에서는 일곱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중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는 세명밖에 없었고 아들은 펠리페 한명밖에 없었습니다. 이사벨은 아이들을 매우 사랑했으며 아이들의 교육에 매우 신경을 쓰는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특히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펠리페의 교육에 매우 신경을 썼었습니다. 


이사벨의 건강은 서서히 나빠지는데 그녀는 주기적으로 열이 났었는데 아마도 말라리아에 걸린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라리아에 걸린뒤에 건강이 악화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사벨은 12년간 일곱번 임신했는데 두번유산했고 이런 많은 임신과 출산은 그녀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또다른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1539년 이사벨은 일곱번째 임신중이었습니다만, 임신 3개월째 이사벨을 갑작스럽게 열이 올랐고 아이를 유산하게 됩니다.아이를 유산하고 2주지난후인 1539년 5월 1일 이사벨은 사망하게 됩니다. 이사벨의 죽음은 남편인 카를로스에게 큰 충격이었는데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카를로스는 수도원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을 정도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 재혼을 하지 않았으며 검은 상복을 입고 사랑했던 아내를 기렸으며 아름다웠던 아내의 초상화와 기념 그림을 그리게 했어습니다.


카를로스가 아내를 기리며 의뢰한 작품

라 글로리아


재미난 것은 이사벨이 죽은뒤 이사벨의 시신은 아들인 펠리페와 궁정 신하였던 4대 간디아 공작 프란세스코 데 보르히아가 옮겼는데 이때 그는 아름다웠던 여주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다음해에 자신의 아내가 죽은뒤 예수회 수사가 되었고 후에 시성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사벨과 카를로스 사이에서는 세명의 자녀가 성인으로 성장했는데 첫째 아이는 아들이자 후계자인 펠리페 2세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에스파냐와 신대륙의 영지 그리고 부르고뉴 공작령을 물려받았었습니다. 뛰어난 정치가이자 독신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있었죠. 딸인 마리아는 사촌이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와 결혼했고, 막내딸인 후아나는 역시 사촌이었던 주앙 마누엘과 결혼해서 포르투갈의 국왕이 되는 세바스티앙 1세의 어머니가 됩니다.


이사벨의 아들

펠리페 2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