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37) 포르투갈의 이사벨 : 마누엘 1세의 딸 (첫번째)

엘아라 2018. 3. 1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합스부르크 가문이랑 섞입니다. -0-;;

그러다가 부르봉 가문이랑도 연결되고...음냐..


포르투갈의 인판타들...(37) 포르투갈의 이사벨 : 마누엘 1세의 딸 (첫번째)




포르투갈의 이사벨

마누엘1세의 딸

에스파냐의 왕비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Isabella of Portugal 

(IsabelIsabelle;Elizabeth;)

( 24 October 1503 – 1 May 1539) 


포르투갈의 이사벨은 포르투갈의 국왕이었던 마누엘 1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아라곤의 마리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이사벨의 아버지인 마누엘은 복잡한 관계를 통해서 포르투갈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마누엘 1세는 두아르테의 손자로 포르투갈 왕가의 남성 후손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부모와 외조부모는 모두주앙 1세의 후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두아르테의 아들로 주앙 1세의 손자였고 어머니는 두아르테의 동생인 안판테 주앙의 딸로 역시 주앙 1세의 손녀였죠. 그의 외할머니 역시 주앙 1세의 손녀였는데 브라간사 공작의 딸로 숙부와 결혼한것이기도 했습니다. 마누엘은 왕가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자, 후계자였는데 특히 조카인 인판테 아폰수가 죽고, 역시 매형인 주앙 2세가 죽은뒤 왕가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자 남성후손으로 포르투갈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마누엘 1세의 가계도


마누엘 2세는 가톨릭 공동 군주였던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장녀였던 인판타 이사벨과 결혼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후손들이 이베리아 반도 전체의 군주가 될 기회를 주는 것이었지만 인판타 이사벨이 아이를 낳다가 죽고, 아들 역시 어려서 사망하면서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됩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아내의 동생인 마리아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리아 위로는 언니인 후아나가 있었고 후아나는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시집갔고 건강한 아이들을 많이 낳았기에 에스파냐 왕위를 합스부르크가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인판타 이사벨의 어머니인 인판타 마리아는 카스티야의 여왕이었던 이사벨과 아라곤의 국왕이었던 페르난도 2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가톨릭 공동군주라고 불리면서 그라나다를 점령해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데 기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인판타 마리아는 형부였던 마누엘과 결혼하는데 이것은 포르투갈과의 평화를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원래 카스티야쪽 왕가와 포르투갈은 자주 경쟁관계가 되었고 이런 상황은 두나라의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주 결혼동맹을 추진했었습니다. 이를테면 마리아의 외할머니인 포르투갈의 이사벨은 마누엘의 이모이기도 했습니다.



마리아와 마누엘의 결혼


인판타 이사벨은 이런 마누엘 1세와 아라곤의 마리아의 큰딸로 태어났고 남동생이 태어날때까지 제 1왕위계승자지위에 있기도 했었습니다. 비록 남동생들이 있긴 했지만 여성 왕위계승권을 인정하는 포르투갈에서 국왕의 장녀라는 신분은 다른 왕가에서 탐내는 신붓감이기도 했었습니다. 


인판타 이사벨은 어린시절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과 매우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또한 아름다웠다고 알려져있었으며 교육도 잘받아서 매우 지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라틴어,스페인어,프랑스어를 배웠으며 교회법도 배웠으며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교양이라는 여러가지 역시 배우게 됩니다. 게다가 인판타 이사벨은 매우 부유한 여성이었기에 결혼하기 전부터 문학작품등에 후원을 했고, 문학작품을 즐겨읽었기도 합니다. 이사벨의 후원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이사벨의 취향에 맞는 글을 많이 썼는데 그중에는 기사도 문학과 관계되는 이야기들도 많았었습니다.


이사벨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이사벨이 14살때 사망합니다. 이사벨의 어머니는 죽기전에 딸을 국왕이나 국왕의 적자에게만 시집보내라고 유언했었고 이것은 그녀의 결혼에 중요한 핵심사항이 됩니다. 이사벨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죽은 1년후인 1518년 이사벨의 아버지는 이사벨의 사촌이자 아내인 마리아의 조카였던 오스트리아의 레오노르와 결혼합니다. 사실 레오노르는 이사벨의 남동생의 결혼 상대로 여겨졌었지만 이사벨의 어머니가 죽자 포르투갈과의 연대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카를로스 1세(신성로마제국으로는 카를 5세)가 누나인 레오노르를 마누엘에게 시집보낸 것이었습니다. 

이사벨은 어머니의 의지가 있었기에 그녀의 혼담 상대가 될만한 가장 유력한 사람은 사촌이자 새어머니의 동생이었던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1세였습니다. 하지만 이 혼담은 쉽게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