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비제주 공작 가문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딸 둘중 한명은 포르투갈 왕비 또하나는 브라간사 공작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포르투갈 국왕이 되어서 그대로 그냥 이어지면 됩니다.
..그런데 보면 뭐랄까 자식들이 많긴한데 후계자는 점점 줄어드네요 -0-;;;
포르투갈의 인판타들...(35) 비제우의 레오노르 : 두아르테의 손녀
비제우의 레오노르
포르투갈의 왕비
Eleanor of Viseu
(2 May 1458 – 17 November 1525)
(Leonor de Viseu )
비제우의 레오노르는 베자와 비제우 공작이었던 페르난두와 그의 아내인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페르난두는 두아르테의 셋째아들이자 아폰수 5세의 바로 밑의 동생으로, 아폰수 5세에게 자녀가 태어나는 1451년까지 포르투갈의 제 1왕위계승자였었습니다.
레오노르의 아버지
베자와 비제우 공작 페르난두
레오노르의 어머니인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는 주앙 1세의 손녀이자 브라간사 공작(주앙 1세의 아들)의 외손녀이기도 했습니다.(아 또 꼬인 족보..-0-;;;) 주앙 1세의 손녀였기에 페르난두와 베아트리스는 사촌관계이기도 했었습니다. 둘의 결혼은 정치적으로 중요했는데 베아트리스의 외할아버지였던 브라간사 공작은 아폰수 5세의 총신으로 이복동생인 코임브라 공작과 경쟁관계였고, 코임브라 공작의 딸이 왕비가 되자 자신의 외손녀를 페르난두와 결혼시킨것일 것입니다.
인판타 베아트리스
베자와 비제우 공작부인
레오노르가 태어났을때, 레오노르의 백부였던 아폰수 5세는 레오노르와 자신의 아들인 주앙을 결혼시키기로 결정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때문에 레오노르는 어린시절부터 남편이 될 주앙을 잘 알았을 것이며 1470년 12살의 레오노르는 15살의 주앙과 결혼했고 둘은 어린 나이였기에 함께 자라났었습니다. 그리고 1475년에는 아들이자 포르투갈 왕국의 후계자가 될 아폰수를 낳았습니다. 이때 아폰수 5세가 살아있었으며, 유일한 아들로부터 손자가 태어난것에 아마도 매우 기뻐했을 것입니다.
레오노르의 남편
주앙 2세
레오노르의 백부이자 시아버지였던 아폰수 5세는 1481년 사망했으며 그 뒤를이어 레오노르의 남편인 주앙이 주앙 2세로 즉위합니다. 그리고 레오노르는 왕비가 되죠. 레오노르는 매우 부유한 왕비였는데 어린시절부터 그녀는 많은 재산을 받았었습니다. 특히 1대 비제우 공작이었던 항해왕 엔리케는 무역로를 통한 재산을 공작가문의 후손에게 물려줬고 이 재산은 비제우 공작 가문을 부유하게 만들었으며 레오노르 역시 이 재산의 일부를 물려받게 됩니다. 또 그녀는 왕비로써 영지등을 받았고 이때문에 그녀의 재산은 더욱더 늘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레오노르는 주앙 2세가 귀족들을 억누르기 위해 그녀의 가족들을 숙청할때 손쓸수 없이 지켜 보기만을 해야했습니다. 그녀의 제부였던 브라간사 공작이 1483년에 처형되었으며 그녀의 오빠였던 베자와 비제우 공작 디오고가 1484년에 처형되었을때, 그녀는 그들을 위해 해줄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것은 그녀가 남편에 대해 어느정도 원망을 쌓아놓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간의 불화는 아들인 아폰수가 사고로 죽은후 표면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아폰수는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고로 사망했는데 레오노르는 아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며느리인 아라곤의 이사벨은 아폰수를 너무나 사랑했었기에 역시나 충격이 심했었다고 합니다.
인판테 아폰수의 죽음
유일한 후계자인 아들이 죽자 주앙 2세는 자신의 사생아 아들이었던 조지 데 랭카스트리를 적자로 인정해서 왕위계승자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사실 아폰수가 죽은뒤 다음 왕위계승권을 가진 사람은 레오노르의 동생인 마누엘로 그는 매형의 숙청에서 간신히 살아남을수 있었던 인물이었죠. 레오노르는 남편이 자신의 서자를 왕위계승자로 세우려는데 반발했으며 서자를 인정할수 없다고 교황에게 편지를 보냈었습니다. 결국 교황은 조지 데 랭카스트리를 주앙 2세의 적자로 인정해주지 않았죠. 하지만 주앙 2세는 조지 데 랭카스트리를 왕위계승권에 더욱더 가깝게 하려고 노력했었으며 아마도 이런 상황은 레오노르에게는 매우 불쾌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남편인 주앙 2세가 죽고 동생인 마누엘이 국왕이 된뒤 자브레가스 궁전으로 옮겨가서 그곳에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레오노르는 매우 부유했었으며 이때문에 그녀는 자신만의 궁정에서 여러 사회사업을 하면서 지내게 되죠.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나 여성들을 돕는 기관이었던 산타 카사 다 미제리코지아(Santa Casa de Misericórdia)를 세웠습니다. 또 리스본에는 병원을 세웠는데 당대 유럽 최고의 병원으로 알려지게 되죠. 또 수녀원도 세우게 되는데 레오노르는 이 수녀원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으며 죽기 얼만전에는 수녀복장으로 이곳에서 지냈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 뒤 수녀 복장을 하고 있는 레오노르 왕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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