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24) 포르투갈의 레오노르 : 에두아르트의 딸 (첫번째)

엘아라 2017. 11.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막시밀리안 1세 어머니입니다만.그러고보니까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 할때 했군요...ㅎㅎㅎ

해도 그냥 합니다. (...네 막 아는 사람들 나오는데 건너뛰고 모르는 사람들 읽을려니 싫어요..-0-;;;)


포르투갈의 인판타들...(24) 포르투갈의 레오노르 : 에두아르트의 딸 (첫번째)




포르투갈의 레오노르

신성로마제국의 엘레오노르 황후

Eleanor of Portugal 

(18 September 1434 – 3 September 1467) 


포르투갈의 레오노르는 포르투갈의 국왕 에두아르트와 그의 아내인 아라곤의 레오노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에두아르트는 주앙 1세와 랭카스터의 필리파의 아들로 에두아르트라는 이름도 필리파의 할아버지였던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3세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합니다. 



레오노르의 아버지

에두아르트


레오노르의 어머니인 아라곤의 레오노르는 카스티야의 국왕 후안 1세의 손녀로 그녀의 아버지인 페르난도는 후안 1세의 둘째아들로 형인 엔리케 3세가 일찍죽자 조카인 후안 2세의 섭정으로 있었습니다. 그뒤에 그는 외가쪽의 지위를 이어받아 아라곤의 국왕이되었습니다. 페르난도와 그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가문을 통해서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권력을 확고히 하기 원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레오노르의 언니인 마리아는 사촌인 후안 2세와 결혼해서 카스티야의 왕비가 되었고, 오빠인 후안은 나바라의 여왕과 결혼해서 나바라의 국왕이 되었죠. 레오노르는 어머니가 정한대로 포르투갈의 왕위계승자인 에두아르트와 결혼했었습니다. 


레오노르의 아버지인 에두아르트는 레오노르가 4살무렵인 1438년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이 죽은뒤 유복자인 딸 후아나를 낳았습니다. 레오노르는 어린 아들의 섭정으로 일을 했지만, 곧 시동생이었던 인판테 페드루와 마찰을 빚었으며 결국 1440년 카스티야로 추방당했는데 이때 매우 아팠으며 추방당한지 5년후인 1445년 사망합니다.



레오노르의 어머니

아라곤의 레오노르

라고 알려졌었는데 최근 연구 결과는 레오노르가 아니라 주앙 1세의 딸인 인판테 이사벨이라고 추정한다고 합니다. (이게 뭐야 -0-;;;)


아마 레오노르는 부모가 어려서 사망하거나 떠났지만 동시대 많은 왕가의 아이들처럼 부모없이 자라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동시대 많은 왕가의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서 살고 교육받았으며 아마도 국왕의 여동생이었던 레오노르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람이 될수 있었기에 적당한 교육을 받고 살았을 것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와 레오노르의 혼담은 레오노르의 친척들에 의해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 왕가쪽에서 추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매서는 것으로 유명했던 고모인 부르고뉴 공작부인 이사벨이 처음에 혼담을 추진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혼담을 진행한 사람은 외삼촌이었던 아라곤과 나폴리의 국왕 알폰소 5세로 그는 궁정 화가를 보내서 레오노르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초상화를 왕가들에 뿌리는 것이죠 -0-;;) 동시에 프랑스의 샤를 7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도팽 루이(후에 루이 11세)세와의 혼담도 들어왔었습니다. 이때 레오노르는 프랑스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쪽을 좀더 선호했습니다. 프랑스로 시집가면 왕비가 되지만 신성로마제국으로 시집가면 황후가 될수 있었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레오노르의 외삼촌

아라곤과 나폴리의 국왕 알폰소 5세


황제와 결혼협상이 진행되었으며 1451년 결혼협상이 끝나면서 이제 레오노르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