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 ...(22) 포르투갈의 이사벨 : 주앙 1세의 딸(첫번째)

엘아라 2017. 10. 3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주앙 1세는 성인이 된 딸이 하나 밖에 없군요.

쉽구나..라고 생각하려니....-0-;;;

음냐 하필 이분이 부르고뉴로 시집간 그분이드랩니다.

뭐 신성로마제국으로 시집간 분도 있으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 ...(22) 포르투갈의 이사벨 : 주앙 1세의 딸(첫번째)




포르투갈의 이사벨

부르고뉴 공작부인

Isabella of Portugal 

(22 February 1397 – 17 December 1471) 


포르투갈의 이사벨은 포투갈의 국왕 주앙 1세와 그의 아내인 랭카스터의 필리파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주앙 1세는 원래 페드루 1세의 서자로 아비스 기사단장이었습니다. (사실 보통 이런 기독교 기사단은 종신서원을 한다고 알고 있는데 아비스 기사단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후 이복형인 페르난두 1세가 남성 후계자 없이 사망하고 조카인 베아트리스가 카스티야 왕비가 되면서 카스티야의 국왕 후안 1세가 포르투갈의 내정에 간섭하게 되자 이를 게기로 왕위계승을 주장하면서 전쟁을 했고 승리를 거두고 포르투갈의 왕위를 얻은 것이었죠.




주앙 1세


이사벨의 어머니인 필리파는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3세의 손녀로 랭카스터 공작이었던 곤트의 존과 그의 첫번째 아내인 랭카스터의 블랑쉬의 딸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이 카스티야에 대항하기 위해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었으며 그 결과 필리파가 포르투갈의 국왕인 주앙 1세와 결혼하게 된 것이었죠. 




주앙 1세와 필리파의 결혼


이사벨의 어머니인 랭카스터의 필리파는 잉글랜드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었습니다. 필리파의 어머니인 랭카스터의 블랑쉬는 잉글랜드 최고의 상속녀였으며 그녀의 아버지인 랭카스터 공작은 뛰어난 잉글랜드 기사중 하나였습니다. 이들은 시인등을 후원했는데 "켄터베리 이야기"로 유명한 제프리 초서 역시 후원하던 사람중 하나였습니다. 게다가 랭카스터 공작의 두번째 부인은 전처 자식들과 함께 지내지는 않았지만 대신 랭카스터 공작의 정부이자 후에 아내가 되는 캐서린 스윈포드는 자신이 모시던 공작부인의 자녀들을 무척이나 아꼈으며 이들의 교육에도 큰 영향을 줬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필리파는 당대 여성들이 받던 교육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었습니다. 또 필리파 스스로는 매우 책임감 강한 여성으로 왕족으로써의 신분과 의무를잊지 않고 늘 모범이 되는 행동을 하던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과 생각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랭카스터의 필리파

필리파 왕비


필리파는 자녀들 모두에게 훌륭한 교육을 시켰으며 책임감과 신암심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영향을 이사벨은 열성적인 독서가였으며 (당대에는 문맹율이 매우 높아서 왕족 여성들도 문맹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정치에 흥미를 가지기도 했었죠. 이사벨의 아버지인 주앙 1세는 딸이 정치적 문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아들들과 함께 정치등을 공부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사벨은 오빠와 남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프랑스어,라틴어,영어,이탈리아어를 배웠으며 남자 형제들과 함께 사냥을 자주 다녔으며 승마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이사벨은 포르투갈의 공주이자 훌륭한 교육을 받았기에 좋은 혼처를 찾을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을 것입니다. 1415년 이사벨은 사촌이었던 잉글랜드의 헨리 5세와 혼담이 오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 혼담은 성사되지 못했죠. 이해는 이사벨에게 슬픈해이기도 했는데 늘 가까웠던 어머니 필리파가 그해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헨리 5세


이후 이사벨은 혼담이 없이 나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결혼할만한 왕자들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벨은 30살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고 지냈는데 아마 많은 이들이 이사벨이 더이상 결혼하지 못할 것으로 여겼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사벨에게 혼담이 들어오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