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21)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 : 페르난두 1세의 딸(세번째)

엘아라 2017. 10. 2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베아트리스 본인은 별로 한 일이 없는데 ㅠ.ㅠ

이때 완전히 왕위게승을 두고 전쟁하는 중이라...=-=

포르투갈 역사는 진짜 대충도 잘 몰라서 이렇게 중요한 포인트가 되면 읽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나마 랭카스터 공작 집안 이야기를 좀 읽어놔서 대충 잉글랜드가 왜 나오는지는 알겟는데 그건 그거고..카스티야랑 포르투갈이랑 사우는 이야기는 머리가 아프네요-0-;;;


어쨌든 이번편으로 끝낼수 있도록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과연...-0-;;

(싸우지 말고 적당히 왕위를 물려주란 말이다!!!)


포르투갈의 인판타들...(21)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 : 페르난두 1세의 딸(세번째)




포르투갈의 베아트리스

카스티야와 레온의 왕비

포르투갈 왕위계승 요구자

Beatrice

 ( 7–13 February 1373 –  c. 1420)


베아트리스의 남편인 후안 1세가 포르투갈을 공격하면서 포르투갈과 전면전을 불가피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카스티야 군에 대해서 상대가 되지 않았으며 특히 후안 1세가 리스본을 포위 공격하면서 리스본 사람들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아비스 기사단장으로 저항의 중심이었던 주앙은 군사력만으로 해결할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외교적인 방향으로 이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백년 전쟁중이었던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를 이용한 것이었죠. 전통적으로 프랑스와 카스티야가 동맹이었기에 주앙은 잉글랜드를 끌어들였으며 잉글랜드는 포르투갈의 문제에 관여하게 됩니다. 결국 1385년 알주바르타 전투에서 아비스 기사단장 주앙이 이끄는 포르투갈 군이 카스티야 군을 물리쳤고 아비스의 주앙이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1세로 즉위하게 되면서 포르투갈과 카스티야 간의 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알주바르타 전투


이 전투이후 카스티야와 포르투갈 모두 잉글랜드와 협화적 조약을 맺게 만들었는데, 포르투갈의 주앙 1세는 랭카스터 공작의 장녀인 필리파와 결혼했으며, 카스티야의 후안 1세는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엔리케를 랭카스터 공작의 딸이자 카스티야의 페드로 1세의 외손녀인 캐서린과 결혼시키기로 결정하게 되었죠. 


포르투갈의 상황이 이렇게 되는 동안 베아트리스는 아직 성년이 아니었기에 모든 상황은 남편인 후안 1세가 결정했으며 베아트리스는 단지 조용히 지냈었습니다. 베아트리스는 성년이 되는 1385년이 되어서야 독자적 씰이나 명령등을 내릴수 있었으며 그전까지는 왕비였지만 미성년이었기에 남편이 모든 것을 결정했었습니다.


1390년 베아트리스의 남편인 후안 1세가 사망한 뒤에도 여전히 궁정에 남았으며 의붓아들의 궁정에서 지냈었습니다. 사실 남편이 죽었을때 겨우 17살이었던 베아트리스가 수녀원으로 은퇴하기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었죠. 베아트리스는 의붓 아들인 페르난도(후에 아라곤의 국왕)와 가깝게 지냈으며 그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것은 엔리케 3세가 일찍 죽고 페르난도와 그의 아들들이 카스티야에서 권력을 잡았던 시기에 베아트리스가 정치적으로 페르난도측을 지지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베아트리스는 1411년 궁정에서 은퇴했으며 1420년 사망합니다.



카스티야의 엔리케 3세

베아트리스의 의붓아들


베아트리스의 존재는 포르투갈의 왕위계승 문제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가 과연 포르투갈의 정당한 여왕이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그녀의 계승권에 대한 논쟁 역시 있었죠. 적어도 포르투갈과 카스티야 간에는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베아트리스가 죽고 난 뒤였다고 합니다. 이후 카스티야 왕가는 포르투갈 왕가와 다시 통혼을 해서 후안 2세와 엔리케 4세 모두 포르투갈 공주를 왕비로 맞았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