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17) 포르투갈의 마리아 : 페드루 1세의 딸

엘아라 2017. 9.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이녜스 데 카스트로 이야기로 유명한 포르투갈의 페드루 1세 딸입니다.

그러고보니 페드루 1세의 조카인 카스티야의 페드로 1세는 마리아 데 파딜라와 관계있고, 매형인 카스티야의 알폰소 11세는 레오노르 데 구스만이랑 연결되고...-0-;;;

음냐 이때 막장 드라마들이 다 비슷한 시기였군요. 하여튼 한 집안 아니랠까봐...-0-;;;;;;


포르투갈의 인판타들...(17) 포르투갈의 마리아 : 페드루 1세의 딸


Maria of Portugal (ÉvoraKingdom of Portugal, 6 April 1342[1] – Aveiro, Kingdom of Portugal, after 1375;[2]


포르투갈의 마리아는 포르투갈의 국왕 페드루 1세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비레나의 콘스탄사 마누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콘스탄사 마누엘은 비레나 공이었던 후안 마누엘의 딸로, 후안 마누엘은 카스티야의 국왕 페르난도 3세의 손자였습니다. 카스티야의 방계 가문 출신이었던 콘스탄사 마누엘은 10살이 되기전인 1325년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11세와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곧 알폰소 11세는 포르투갈의 공주로 아폰수 4세의 딸인 마리아와 결혼하기 위해 콘스탄사 마누엘과의 결혼을 무효화시키게 됩니다. 아마도 미성년의 결혼 서약을 무효가 될수 있으며 또 같은 가문으로 근친 결혼에도 해당되기에 쉽게 무효화 시킬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혼이 무효가 된뒤 콘스탄사 마누엘은 알폰소 11세에 의해서 감금되었는데, 결국 그녀의 아버지이자 당대 권력과 부를 지니고 있었던 비레나 공 후안 마누엘이 알폰소 11세에 대항해서 군사를 일으키고 나서야 풀려날수 있었다고 합니다.


콘스탄사 마누엘이 전 남편의 새 아내의 동생인 복잡한 관계의 페드루와 결혼하게 된것은 역시 정치적 문제 때문이었죠. 카스티야의 알폰소 11세는 포르투갈의 마리아와 결혼했지만, 이미 정부였던 레오노르 데 구스만에게 빠져있었으며 알폰소 11세는 후계자인 아들을 낳은 마리아를 버리고 레오노르 데 구스만과 함께 살았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마리아의 아버지인 포르투갈의 아폰수 4세는 격노했으며, 역시 알폰소 11세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비레나 공 후안 마누엘과 손을 잡기로 결심합니다. 그 결과 콘스탄사 마누엘은 아폰수 4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페드루와 결혼하게 되죠.


문제는 콘스탄사 마누엘과 페드루가 결혼할때 콘스탄사 마누엘의 시녀로 한 여성이 등장합니다.그녀의 이름은 이녜스 데 카스트로라는 여성이었죠. 페드루는 이녜스 데 카스트로에게 반해버렸으며, 이녜스를 정부로 삼았습니다. 이후 콘스탄사 마누엘이 죽은뒤 이녜스 데 카스트로 역시 살해당하게 됩니다.


마리아는 콘스탄사 마누엘의 딸로 3살때 어머니인 콘스탄사 마누엘이 사망했습니다. 이후 마리아는 정치적 목적으로 아라곤으로 시집가게 되는데 상대는 고모였던 인판타 레오노르의 혼담 상대였던 아라곤의 페르난도였습니다. 이것은 복잡한 아라곤과의 관계 때문이었는데 고모가 아라곤의 국왕과 결혼했었는데, 아라곤의 페르난도는 마리아의 고모부의 동생이기도 했습니다. (...--;;;족보가..) 이 결혼은 마리아의 할아버지였던 아폰수 4세가 결정한 것으로 1354년 12살의 나이로 마리아는 아라곤의 페르난도와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1363년 마리아의 남편인 페르난도는 이복형이었던 아라곤의 페드로 4세에게 살해당했으며, 남편과의 자녀도 없었던 마리아는  친정인 포르투갈로 돌아왔고 포르투갈에서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