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4)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 : 이반 5세의 딸(첫번째)

엘아라 2017. 5. 1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일단 이반 5세 딸들 다하고, 그다음에 이반 5세의 외손녀인 안나 레오폴도브나까지 하는 걸로 할까합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4)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 : 이반 5세의 딸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작부인

Tsarevna Catherine Ivanovna of Russia 

(20 October 1691 – 14 June 1733)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짜르 이반 5세와 그의 아내인 프라스코비아 살티코바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두명의 언니가 더 있었지만 일찍 사망했기에 자라면서 예카테리나가 부모의 첫째아이가 됩니다. 예카테리나가 태어났을때 그녀의 대부모로는 숙부였던 표트르 대제와 종조모였던 타티야나 미하일로브나(표트르 대제와 이반 5세의 고모)였습니다.



예카테리나의 아버지 

이반 5세


어린시절 아버지가 죽은뒤, 어머니와 여동생들과 함께 표트르대제가 준 영지에서 지냈으며 후에는 표트르 대제의 정책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갔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인 프라스코비아는 러시아 전통적 교육을 받고 성장한 여성이었지만, 표트르 대제의 개혁정책에 공감하고 지지했었으며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서유럽식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이때문에 예카테리나는 여동생들과 함께 프랑스어와 독일어등을 배웠으며 서유럽식 교양이었던 음악과 악기등도 배웠을 것입니다.


예카테리나는 아름다웠다고 알려졌던 어머니처럼 아름다웠다고 전해지는데 검은 머리에 흰 피부를 가졌으며 활발한 성격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예카테리나는 이전의 로마노프 가문 여성들과 달리 외국 왕족과 결혼하게 됩니다. 표트르 대제는 자신의 자녀들과 조카들을 서유럽의 여러 왕가와 결혼시켜서 개혁정책을 이어가는 것은 물론, 서유럽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려했습니다. 그리고 예카테리나의 혼담 역시 이런 표트르 대제의 의중이 반영됩니다.



예카테리나의 숙부

표트르 대제


예카테리나의 혼담 대상은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작 카를 레오폴트였습니다.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은 러시아의 교역에 중요한 지역이였을 뿐아니라  메클렌부르크-슈베린과의 동맹을 통해 공작령내의 항구에 러시아 함대가 머물수있는 기계를 마련한 것이었죠. 반면 메클렌부르크-슈베린쪽에서는 당대 떠오르는 세력이었던 러시아와의 동맹 역시 중요했습니다. 카를 레오폴트는 이전에 스웨덴의 칼 12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독일 내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칼 12세를 물리친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와 러시아는 큰 존재로 다가왔을 것이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는것은 괜찮은 일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사실 카를 레오폴트는 이전에 예카테리나의 여동생이자 쿠를란드 공작부인으로 남편이 사망한뒤 쿠를란드의 통치에 관여하고 있던 안나 이바노브나에게 처음에는 청혼했었습니다만. 표트르 대제는 그에게 다른 조카인 예카테리나와의 결혼을 주선한것이었습니다.


1716년 예카테리나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작 카를 레오폴트와 결혼했으며, 결혼 당시 예카테리나는 개종하지 않고 정교회의 믿음을 유지할수 있었으며, 공작은 아내에게 일정한 연금을 지급하기로 합니다. 둘 사이에서는 두딸이 태어나는데 1718년 태어난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나 폰 메클렌부르크-슈베린만이 살아남아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공작 

카를 에오폴트


예카테리나와 카를 레오폴트의 결혼은 매우 불행했는데, 당대 많은 독일의 군주들처럼 카를 레오폴트도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예카테리나는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견디지 못했으며 1722년 딸을 데리고 러시아로 돌아옵니다. 예카테리나와 카를 레오폴트는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예카테리나와 카를 레오폴트는 서로 다시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