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대선 결과가 나왔네요.
이제 나라가 안정되길 바랍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3) 프라스코비아 살티코바 : 짜르 이반 5세의 아내
프라스코비아 표도로브나 살티코바
Praskovia Fyodorovna Saltykova
(Прасковья Фёдоровна Салтыкова)
(12 October 1664 – 13 October 1723)
프라스코비아 표도로브나 살티코바는 폴란츠 출신의 보야르였던 표도르 페트로비치 살티코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가문은 부유하지 않았으며 작은 귀족가문이었기에 프라스코비아는 당대 권력을 가진 가문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습니다. 이것은 프라스코비아가 당대 중산층의 도덕 기준등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치보다 가족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또 그녀는 아름다웠다고 알려져있는데 실제로 그녀의 가문 지위가 높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간택될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아름다움이었을 것입니다.
프라스코비아는 전통적인 신부 간택 행사를 통해서 당시 러시아의 짜르였던 이반 5세와 1683년 말이나 1684년초에 결혼합니다. 프라스코비아는 결혼후 건강이 나쁜 남편이었던 이반과 함께 조용한 삶을 선택합니다. 사실 권력은 이반의 누나였던 소피아에게 있었으며, 후에 이반의 이복동생인 표트르가 누나와 권력다툼을 했었죠. 이 와중에서 처음 이반은 소피아와 함께 있으면서 소피아의 권력의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나와 이복동생이 권력다툼을 할때 누나의 편이 아니라 이복동생인 표트르의 편을 들게 됩니다. 이반의 결정은 이반의 가정교사였던 프로조로프스키의 영향이었다고 합니다. 이 선택은 표트르가 권력을 얻고 난뒤 이반이 권력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평온한 삶을 사는데 기여했습니다.
소피아 알렉세예브나
이반 5세와 표트르 대제의 누나
프라스코비아는 뇌전증을 심하게 앓았기에 많은 부분에서 다른 건강한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았던 이반과 결혼을 원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가문에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으며 결혼이 결정된 이상 번복할수도 없었습니다. 프라스코비아가 결혼했을때 궁정을 장악하고 있던 인물은 시누이인 소피아였으며,후에 표트르 대제가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에는 표트르의 어머니인 나탈리야가 궁정을 장악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프라스코비아가 정치와 무관하게 조용한 삶을 살게했을 것인데, 특히 그녀의 남편인 이반은 평생 실권이 없는 짜르였으며 이런 상황 역시 그녀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프라스코비아는 당대 전통대로 남편을 자신의 가장으로 공경하면서 조용히 살았었습니다. 이반 5세는 건강이 나빴지만 프라스코비아와의 결혼생활동안 모두 다섯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그중 세명의 딸이 성인으로 성장했었죠.
이반 5세
1696년 남편인 이반 5세가 사망한뒤, 프라스코비아는 세딸을 데리고 처음에는 조용한 지역으로 이주합니다만, 곧 연금문제가 발생합니다. 결국 프라스코비아의 시동생이었던 표트르 대제는 프라스코비아와 자신의 조카들이 머물 지역과 연금을 부여했으며, 프라스코비아의 남동생이었던 바실리 페트로비치 살티코프에게 관리를 맡겼습니다. 프라스코비아는 조용히 살았었고 이때문에 다른 가족들과 잘 지냈었습니다. 표트르대제의 여동생이자 프라스코비아의 시누이였던 나탈리야와도 잘 지냈으며, 후에는 표트르 대제의 딸들을 맡아 키우기도 했었습니다. 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프라스코비아는 표트르 대제에게 공식적으로 아내가 없던 시기에 궁정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궁정을 이끌어갔었습니다. 아마 이것은 그녀가 표트르 대제의 개혁 정책을 이해하고 지지했었던 인물이었기에 표트르 대제 역시 그녀에게 호의적이었던 것일겁니다.
이반 5세와 표트르 대제
프라스코비아는 오래도록 과부로 지냈는데, 이때문에 오래도록 측근이었던 바실리 유쉬코프를 믿고 의지했었습니다. 유쉬코프에 대해서 프라스코비아는 과도하게 그를 아꼈으며 아마 이때문에 프라스코비아가 그와 연인관계였을 것이라 추정합니다.실제로 유쉬코프는 프라스코비아의 재산을 착취했으며,특히 그녀의 영지운영을 엉망으로 하고 횡령등을 일삼았습니다. 결국 프라스코비아가 죽기 직전, 그는 표트르대제에 의해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프라스코비아는 이반 5세와의 사이에 다섯딸을 낳았으며 그중 세딸이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큰딸인 예카테리나는 표트르 대제의 정책에 따라 유럽의 왕족인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카를 레오폴트와 결혼했고, 그녀의 외손자가 바로 후에 아기로 즉위하는 이반 6세입니다. 둘째딸인 안나 역시 표트르 대제의 정책에 따라 쿠르트란드 공작과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후손이 없었지만 결국 표트르대제가 죽고 난뒤 혼란한 러시아 상황 덕분에 러시아의 여제가 됩니다. 막내딸인 프라스코비아는 러시아 귀족과 결혼했습니다.
프라스코비아의 둘째딸
안나 여제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러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5)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 : 이반 5세의 딸(두번째) (0) | 2017.05.24 |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4)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 : 이반 5세의 딸(첫번째) (0) | 2017.05.17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2)마르파 마트예브나 아프락시나 :짜르 표도르 3세의 부인 (0) | 2017.05.03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1) 아가피아 그루셰츠카야 : 짜르 표도르 3세의 부인(두번째) (0) | 2017.03.29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20) 아가피아 그루셰츠카야 : 짜르 표도르 3세의 부인(첫번째) (0) | 2017.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