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85) 레이디 앤 네빌 : 리처드 3세의 왕비(세번째)

엘아라 2016. 9. 2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진짜 잘 안 읽히네요 흑흑흑


잉글랜드의 왕비들...(85) 레이디 앤 네빌 : 리처드 3세의 왕비(세번째)




레이디 앤 네빌

웨일즈 공비

잉글랜드의 왕비

Anne Neville 

(11 June 1456 – 16 March 1485) 

후대의 상상화


레이디 앤 네빌은 1456년 워릭 성에서 16대 워릭 여백작인 앤 드 보챔프와 그녀의 남편이었던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앤 네빌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의 출신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샐리스버리 백작의 후계자였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워릭 여백작이자 드스펜서 가문의 상속녀이기도 했었습니다. 게다가 앤 네빌은 모계와 부계 모두 잉글랜드 왕가와 혈연관계이기도 했습니다.

앤의 아버지인 리처드 네빌은 레이디 조앤 보퍼트의 손자로 레이디 조앤 보퍼트는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인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의 딸이었습니다. 앤의 어머니인 앤 드 보챔프는 요크의 콘스탄스의 외손녀로 요크의 콘스탄스는 요크 공작이었던 랭리의 에드먼드의 딸이었습니다. 


말그대로 앤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라는 말에 걸맞게 재산이 많고 신분이 높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부계와 모계로 모두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이 되었으며, 워릭 백작가문의 엄청난 재산은 물론 그녀의 아버지는 샐리스버리 백작령의 상속자이기도 했었습니다. 게다가 앤의 대고모였던 레이디 시슬리 네빌은 요크 공작 리처드와 결혼해서 후에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는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를 낳았었습니다.



네빌 가문의 문장


이런 가족 관계 때문에 요크 공작 가문과 워릭 공작 가문은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며, 어린시절 앤은 아버지의 사촌들이었던 요크 공작의 아들들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특히 앤은 가문의 여러 성중에 미들햄성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었는데, 이곳에서 앤은 언니 이사벨과 함께 요크 공작의 두 아들들인 조지와 리처드를 만났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리처드의 경우 아버지가 죽은 뒤 미들햄성에서 기사수업을 받았기에 아마도 앤과 리처드는 어린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였으리라 추정할수 있습니다. 아마도 요크 공작은 생전에 두 아들들을 당대 최고의 상속녀들이 될 워릭 백작의 딸들과 엮어주려했을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두 가문은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며, 상속영지가 부족했던 두 아들들을 잉글랜드 최고의 상속녀들과 엮어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어보입니다.


레이디 앤이 살았던 시기는 잉글랜드의 내전중 하나인 "장미전쟁"시기였습니다. 앤의 가문은 요크 가문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1460년 12월 말 웨이크필드 전투에서 요크 공작과 앤의 할아버지인 샐리스버리 백작이 사망합니다. 이 상황은 요크 가문에 불리해보였지만, 요크 공작의 아들인 에드워드와 앤의 아버지인 워릭 백작이 다시 전세를 뒤집었으며, 이후 에드워드는 헨리 6세를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4세가 됩니다. 에드워드가 국왕이 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 바로 앤의 아버지였던 워릭백작이었으며 이런 상황은 워릭 백작을 잉글랜드 최고의 권신으로 만들게 됩니다.



네빌-워릭 가문의 문장


하지만 에드워드 4세와 워릭 백작 사이는 점차 벌어지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에드워드 4세의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가문은 랭카스터 가문을 지지하던 가문이었으며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죽은 남편 역시 랭카스터 가문의 가신이었습니다. 이런 조건을 봤을때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왕비감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워릭 백작은 에드워드 4세의 왕위계승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외국 왕가와의 동맹을 원하고 있었고, 프랑스 공주와 에드워드 4세간의 결혼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드워드 4세가 이런 동맹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우드빌 같은 여성과 결혼하므로써 워릭 백작은 에드워드 4세에 크게 실망하고 불만을 품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는 우드빌 가문 사람들을 중용했고, 우드빌 가문 사람들은 워릭 백작의 라이벌로상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워릭 백작의 입장에서는 매우 어이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워릭 백작은 아버지는 물론 그 역시 요크 가문에 충성을 다했던 인물이었지만, 우드빌 가문 사람들은 원래 랭카스터 가문쪽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에드워드 4세의 행동은 워릭 백작에게는 배신이나 다름 없었을 것입니다.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결혼식


게다가 딸들의 결혼문제 역시 에드워드 4세와 워릭 백작과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듭니다.워릭 백작은 에드워드 4세의 동생들과 딸들의 혼담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4세는 자신은 외국 공주와 결혼하지 않았으면서 동생들은 국익을 위해서 외국 공주와 결혼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워릭 백작의 계획을 다시 한번 방해합니다. 이런 상황은 워릭 백작이 국왕에게 매우 큰 불만을 품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앤의 언니인 이사벨은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었던 클라렌스 공작 조지와 결혼했습니다만 워릭 백작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결국 에드워드 4세에 반기를 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이런 워릭 백작의 결심은 딸인 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