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사실 왕족들 이야기로 읽는 스웨덴 역사를 쓸 시간이긴한데 문제가 이게 분명 브런치에는 몇주치 미리 올렸었거든요. 그런데 정신차려보니 블로그랑 브런치랑 같은날 올라가게 되드랩니다.
그래도 브런치에 좀 올라가야지 이건 아니다 싶어서 한주 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뭐 할 이야기 없나 이리저리 찾다가 써놓은 이야기 하나를 할까합니다.
스웨덴의 과들루프펀드 : 스웨덴 왕가의 스웨덴 국채 투자
스웨덴어로 "Guadeloupefonden"이라고 부르는 이 펀드는 사실상 "역사적으로 존재했었던 펀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펀드는 스웨덴의회가 스웨덴 왕가에 일정한 수익을 보장한 것으로 뭐랄까 일종의 스웨덴왕가의 스웨덴 국채 투자라고 볼수 있을것이다.
이 펀드는 1815년 시행되는데, 이 펀드의 이야기는 스웨덴 왕가의 시조이자 프랑스의 베르나도트 장군으로 불렸던 "칼 14세 요한"으로부터 시작된다.
1810년 프랑스의 베르나도트 장군은 스웨덴 의회에서 "왕위계승자"로 당선이 되었다. 베르나도트의 왕위계승자 당선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데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왕권이 아니라 귀족권력이 강한나라였다. 그나마 이때쯤 구스타프 3세가 의회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켜서 실권을 장악했었지만,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대 프랑스 전쟁"으로 인해서 나라가 완전히 파탄나게되자 다시 귀족들이 국왕을 추방하고 권력을 잡게 되었다. (이에 대한 글은 제 앞쪽 글 어딘가에 있음)
이때쯤 스웨덴 경제는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렀으며 스웨덴의 은행들은 거의 파산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1810년 베르나도트는 스웨덴의 왕위계승자인 "칼 요한"이 되었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공령인 폰테 코르보를 나폴레옹에게 반납하고 대신 그가 받을수 있는 이익만큼의 연금을 지급받았다고 한다.
이런 칼 요한은 이후 나폴레옹의 반대측에 서서 영국과 러시아와 손을 잡게 된다. 이 사건으로 그는 스웨덴에서는 나라를 구한 뛰어난 국왕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지만 모국이었던 프랑스에서는 "배신자"라는 평가를 듣게된다.
스웨덴의 왕태자 칼 요한
스웨덴의 칼 14세 요한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이런 상황은 영국이 스웨덴의 칼 요한에게 경제적 배상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반 나폴레옹 진영에 가담하므로써 프랑스에서 나오던 모든 수익과 프랑스 내 모든 재산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아마도 영국은 자신들이 점령한 "과들루프"를 스웨덴에 할양하는 방식으로 스웨덴의 이익을 보장했었던듯하다. 과들루프 섬은 오래도록 프랑스의 식민지였지만 후발주자인 영국은 계속 그 섬을 노리고 있었고 분쟁이 있어왔다.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을 기회로 영국이 그 섬을 점령했었다.
영국이 과들루프를 무작정 스웨덴에 할양한것은 아니었다. 과들루프중 일부에는 이미 스웨덴의 식민지가 진출해있었다. 이것은 루이 16세와 구스타프 3세가 각각 통치하던 프랑스와 스웨덴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스웨덴이 과들루프에 진출하는 것을 허락했던 것이었다.과들루프 전체에 대한 권리는 "스웨덴의 국왕(칼 13세)와 그 후계자(칼 요한)와 그 후손들"이 갖게 된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스웨덴 국왕의 개인재산이 된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면서 다시 과들루프 문제가 좀 복잡해지게 된다. 전쟁이 끝난뒤 과들루프는 다시 프랑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빈회의에서 그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이렇게 되자 영국과 스웨덴의 칼 요한은 난처한 상황이 된것이었다. 특히 직접적 손해를 입은 것은 바로 칼 요한이었다. 물론 구체제로 복귀하는 것이 중요하긴했지만 칼 요한은 승전국의 일원이었으며 전쟁에서 그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칼 요한에게 돈으로 그의 손실을 대체하게 만들었다.
과들루프 위성지도
이렇게 받은 돈을 칼 요한(당시 섭정)은 스웨덴의 빚을 갚는데 쓰게 된다. 이에 스웨덴 의회는 섭정의 개인 재산으로 국채를 갚는데 썼기에 이에 대한 일정률의 수익을 보장하게 된다. 매년 스웨덴은 왕태자인 칼 요한과 그의 후손(..스웨덴 국왕)에게 30만 Riksdaler(당시 스웨덴 화폐로 대충 현재 스웨덴 코로나로 바뀌기 전에 쓰이던 화폐로 바뀔때 1:1의 비율이었다함)를 영구히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오래도록 지속된 연금이었지만, 20세기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폐지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다. 이것은 왕실에서 받는 연금외에 따로 받는 금액이었던듯하다. 어쨌든 스웨덴에서는 20세기 중반 왕실 페지 운동이 제일 활발했고 이 상황에서 왕실에 대한 여러가지 개혁을 단행했었고 이 연금에 대한 것도 그중 하나였던듯하다.(재미난 사실은 사실 이때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6세 아돌프-현스웨덴 국왕의 할아버지-가 스웨덴 내 인기가 너무 좋아서 만약 스웨덴이 왕정을 폐지한다면 대통령으로 국왕이 뽑힐거라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한다.)
스웨덴 왕실에 대한 많은 개혁들처럼 현 스웨덴 국왕대에 이르러서 이 연금 역시 폐지 된다. 1983년 국왕 칼16세 구스타프는 이 연금을 마지막으로 수령했고 이제 스웨덴에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아들인 칼 필립왕자 결혼식때 국왕 부부
자료출처
1.위키 피디어
2.http://www.svenskdam.se/2013/01/pa-tal-om-det-kungliga-apanaget-vad-ar-guadeloupefonden-egentligen/ (스웨덴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마지막은 아마도 텔레그라프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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