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66)앙주의 마르거리트 : 헨리 6세의 왕비(첫번째)

엘아라 2016. 5. 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오늘 앙주의 마거릿에 대해서 읽다가 머리 깨지는줄 알았습니다.

왜냐구요.ㅠ.ㅠ

읽다가 정신차려보니 마거릿에 대해서 읽는것이 아니라 나폴리 왕위계승 문제를 미친듯이 읽고 있드랩니다.

..ㅠ.ㅠ 진짜 이래서 이탈리아는 손대기가 무섭다니까요..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66)앙주의 마르거리트 : 헨리 6세의 왕비(첫번째)





앙주의 마르거리트

잉글랜드의 마거릿 왕비

헨리 6세의 왕비

Margaret of Anjou 

(French: Marguerite; 23 March 1430 – 25 August 1482) 

마거릿의 아버지인 르네의 문장



잉글랜드의 헨리 6세의 왕비가 되는 앙주의 마르거리트는 1430년 로렌 공작령에 있던 퐁타무송에서 1430년 앙주 공작 르네와 그의 부인이었던 로렌의 여공작 이자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르거리트는 발루아 가문의 방계 가문인 발루아-앙주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이 가문은 나폴리 왕위계승 문제와 연결되면서 매우 복잡한 상황이었는데 특히 마르거리트의 아버지였던 르네는 나폴리 국왕의 지위를 물려받습니다만 프랑스측을 견제했던 아라곤 왕가때문에 나폴리 왕위에 오르는데 복잡한 상황이 되었으며, 아내의 상속영지인 로렌 공작령을 물려받는 것도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모든 요구 작위들을 다 넣은 르네의 문장

위에서 세개는 헝가리,나폴리,예루살렘을 의미하고 밑의 세개는 발루아-앙주,바 공작령,로렌 공작령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가운데는 아라곤을 의미하구요.

나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필리프 3세의 손자였으며 그의 아버지인 샤를은 필리프 4세의 동생으로 "발루아 백작"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그의 가문은 카페 왕가의 방계 가문인 "발루아 가문"으로 알려졌으며, 살리카법의 복잡한 계승 관계로 국왕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이 상황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계승권리를 주장하면서 100년전쟁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필리프 6세의 어머니인 앙주의 여백작 마르거리트는 나폴리 국왕의 딸이자 프랑스 국왕의 증손녀였습니다. 마르거리트의 할아버지인 앙주의 샤를은 루이 8세의 아들로 나폴리의 국왕 카를로 1세가 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마르거리트는 발루아 백작과 결혼하면서 혼수로 앙주와 멘 백작령을 가져왔었습니다. 그리고 필리프 6세의 아들인 장 2세는 자신의 둘째아들인 루이에게 앙주 공작 지위를 부여했었습니다.



앙주 공작의 문장


복잡한 관계에서 알수 있듯이 당시 나폴리 왕가 역시 카페 왕가의 방계 가문이었으며, 발루아 가문과는 혼인관계로도 연결되어있었습니다. 나폴리의 여왕이었던 조반나 1세는 후계자가 없었습니다.그리고 그녀는 장 2세의 둘째아들인 앙주 공작 루이를 양자로 입양해서 자신의 후계자로 내세웁니다. 하지만 나폴리왕가의 헝가리쪽 분가 남아있었고 당연히 헝가리쪽 분가가 반대했었습니다. 결국 조반나 1세는 살해당했고, 나폴리는 헝가리쪽 분가 출신의 카를로 3세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앙주 공작이었던 루이는 나폴리의 국왕 "루이지 1세"로 주장했지만 실질적으로 나폴리를 통치하지는 않았습니다.



앙주 공작 루이 1세.나폴리의루이지 1세, 마르거리트의 증조할아버지



"루이지 1세"의 아들이었던 앙주 공작 루이 2세는 결국 나폴리의 국왕 지위를 얻게 됩니다. 여기에는 그의 어머니인 블루아의 마리는 아들을 나폴리의 국왕으로 세우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털어서 군대를 키웠고 결국 아들을 나폴리의 국왕 "루이지 2세"로 즉위시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나폴리의 전 국왕이었던 라디슬라오에게 왕위를 뺏기게 됩니다. 하지만 라디슬라오는 후계자 없이 사망했으며, 왕위는 라디슬라오의 누나인 조반나2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앙주 공작 루이 2세, 나폴리의 루이지 2세, 마르거리트의 할아버지



조반나 2세 역시 후손이없었고 결국 나폴리왕국의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조반나 2세는 루이지 2세의 아들인 앙주의 루이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하게 됩니다. 문제는 조반나 2세가 이전에 시칠리 왕위를 가지고 있던 아라곤의 알폰소 5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었던 점에 있습니다. 루이지 2세의 아내인 아라곤의 욜란다는 아라곤 국왕의 딸로 숙부와 왕위계승 다툼을 했었던 것입니다. 복잡한 계승 과정을 거쳐서 아라곤과 시칠리의 왕위는 알폰소 5세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이런 상황은 앙주 가문이 나폴리를 두고 아라곤 왕가와 경쟁을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앙주 공작 루이 3세,나폴리의 루이지 3세, 마르거리트의 백부



하지만 앙주의 루이 3세는 조반나 2세보다 일찍 사망했으며, 조반나는 루이 3세의 동생이자 형의 지위를 물려받은 앙주의 르네를 후계자로 선언합니다. 그리고 르네는 잠시 나폴리의 국왕이 됩니다만, 곧 아라곤의 국왕 알폰소 5세에 의해서 나폴리를 뺏기고 그 역시 포로가 되었습니다.



마르거리트의 아버지 르네, 나폴리의 레나토 


마르거리트의 아버지 뿐만 아니라 어머니인 이자벨 역시 복잡한 상속문제에 연관되어있었습니다. 이자벨의 아버지였던 로렌의 공작 샤를 2세는 적자로는 두명의 딸밖에 없었습니다. 샤를 2세는 장녀인 이자벨을 상속녀로 생각했고 사위인 르네가 딸과 함께 로렌지방을 다스리길 바랬었습니다. 하지만 샤를 2세의 조카이자 로렌 공작가문의 남성 후손이었던 보데몽의 앙투안은 백부에게 자신이 로렌 가문의 정당한 상속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샤를 2세가 죽은뒤에는 앙투안을 상대로 이자벨의 남편인 르네가 아내의 권리를 대신해서 로렌 공작령에 대한 지위를 주장합니다. 물론 이자벨 역시 여기에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이자벨은 시어머니인 아라곤의 욜란다나 시할머니인 블루아의 마리처럼 자신과 남편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의 권리를 지키고 쟁취하기 위해 적극적인 여성이었습니다. 특히 남편인 르네가 나폴리에서 패배하고 포로가 되었을때 남편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갔었을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마르거리트는 이런 어머니를 보고 자랐기에 훗날 그녀 역시 군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갈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합니다.



로렌의 이자벨, 마르거리트의 어머니


로렌 공작 가문은 100년 전쟁중 프랑스 왕가와 여러가지로 인연이 깊었습니다. 마르거리트의 외할아버지였던 샤를 2세는 잔다르크를 샤를 7세와 프랑스 궁정이 있던 시농으로 보내줬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자벨은 자신의 시녀를 샤를 7세에게 소개 시켜줬는데, 이자벨이 소개시켜준 시녀가 바로 샤를 7세의 공식정부가 되는 아녜스 소렐이었습니다.


마르거리트의 가족은 이런 복잡한 정치 상황 한가운데 있었으며, 결국 마르거리트가 잉글랜드의 국왕인 헨리 6세와 결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