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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hite Queen] 엘리자베스 우드빌 : the white queen 에드워드 4세의 왕비

엘아라 2013. 10. 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최근에 The White Queen을 봤습니다. 뭐 사실 원작자인 필리파 그레고리의 이야기들은 좀 자극적 소재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제 취향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뭐랄까 재미는 있더라구요.

필리파 그레고리 책중 the white queen은 장미전쟁 시리즈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the cousin war 시리즈로 엘리자베스 우드빌(the white queen),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the red queen), 레이디 앤 네빌(the kingmaker's daughter)이렇게 세개 시리즈인데 그 첫번째이야기로 the white queen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등장 인물들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했는데 주요 인물인 세명중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이미 했고, 엘리자베스 우드빌이랑 레이디 앤 네빌은 "잉글랜드의 왕비들"시리즈에서 할예정이고--;;; the white princess인 요크의 엘리자베스도 이미 했어서 고민이더군요.-0-;;

 

그래도 일단 다른 인물들이야기도 좀 해야하니 그냥 이때쯤 인물들 이야기를 살짝 해볼까합니다.

먼저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그 주변 인물들부터 해볼까하네요. ㅎㅎㅎ

[The White Queen] 엘리자베스 우드빌 : the white queen 에드워드 4세의 왕비


 

 

엘리자베스 우드빌

에드워드 4세의 왕비

Elizabeth Woodville

 (also spelled WydvilleWydeville or Widvile;)

(c. 1437[ – 8 June 1492)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1437년 10월경 리처드 우드빌과 그의 부인인 룩셈부르크의 자퀘타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아버지보다 신분이 높고 부유한 여성이었으며 둘의 결혼은 큰 스캔들이었다고 합니다.

 

룩셈부르크의 자퀘타는 생-폴 백작의 딸로 통치 백작의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가문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배출했었던 가문이기도 햇었죠. 이때문에 자퀘타는 17살때인 1443년 헨리 4세의 아들이자 헨리 5세의 동생인 베드퍼드 공작인 랭카스터의 존과 결혼해서 잉글랜드로 오게 됩니다. 하지만 2년뒤 자퀘타의 남편은 죽었으며 자퀘타는 부유한 과부가 됩니다.

리처드 우드빌 경은 베드퍼드 공작의 시종무관이었는데 그의 가문은 오래되고 명망높았지만, 세습귀족가문은 아니었고 리처드 우드빌이 겨우 기사 작위를 부여받는 정도였었습니다. 자퀘타는 이 리처드 우드빌과 사랑에 빠졌고 결국 그와 비밀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국왕의 숙모였던 자퀘타가 신분이 낮은 남자와 재혼했다는 사실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었죠. 하지만 자퀘타와 리처드 우드빌 사이에서는 모두 열두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1452년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랭카스터 가문의 가신인 존 그레이와 결혼했으며 두 아들인 토마스와 리처드를 낳습니다. 하지만 1461년 존 그레이는 전투에서 사망했으며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24살에 과부가 됩니다.

과부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1464년 요크가문의 왕위계승요구자였던 에드워드 4세와 비밀결혼하게 됩니다. 많은 정부가 있었던 에드워드는 당대 최고의 미녀라고 알려졌던 레이디 그레이에게 반했으며 그녀가 자신의 정부가 되길 바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의 정부가 되길 거절했고 결국 에드워드 4세는 그녀와 비밀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에드워드 4세가 즉위하면서 엘리자베스 우드빌도 정식 왕비가 됩니다.

 

 

에드워드 4세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에드워드 4세의 주변 인물들에게 그다지 호의를 받지 못했는데 그녀는 평민 출신이었으며 랭카스터가문 가신의 아내였었기때문이었습니다. 적대적 인물들중 하나는 바로 "킹메이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워윅 백작 리처드 네빌이었죠.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곧 에드워드 4세에게 많은 아이들을 낳아주었으며 이런 후계자를 낳은 엘리자베스에게 더이상 왕비의 자격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궁정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알았기에 자신의 편을 많이 만들려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인물들의 궁정내 지위를 높이기 위해 여러가지 일을 했는데 여동생들이나 남동생들 아들들을 유력한 가문의 사람들과 결혼시키는 일을 많이 했었습니다.

 

 

아들 에드워드와 함께 있는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삶이 바뀐것은 바로 남편인 에드워드 4세가 죽은 뒤였습니다. 그녀의 아들들은 전통대로 런던탑으로 갔지만 왕이 되기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에드워드의 동생인 리처드가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에드워드 4세간의 결혼이 정식 결혼이 아니라고 선포했고 그에 따라 그가 국왕 리처드 3세로 즉위합니다. 엘리자베스는 리처드에게서 딸들과 함께 도망가서 성역권에 숨어지냅니다. 이때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가 접근하죠. 그녀는 엘리자베스의 장녀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자신의 아들을 결혼시키자는 제의를 했고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이를 수용합니다. 하지만 반란이 실패하면서 레이디 마거릿은 가택연금당했고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성역권에서 나와 역시 감금당합니다. 그리고 요크의 엘리자베스는 숙부의 궁정으로 가죠.

 

 

리처드 3세

 

다시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운이 바뀐것은 바로 헨리 튜더가 리처드 3세와의 전투체서 승리를 거둔 뒤였습니다. 그는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정식으로 결혼하려했는데 이것은 복잡한 왕위계승문제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다시 궁정으로 돌아왔으며 "대비(Queen Dowager)"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딸이 왕비가 된 2년후인 1487년 궁정에서 은퇴해서 수녀원으로 들어갑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사위인 헨리 7세가 그녀를 궁정에서 은퇴시켰다는 이야기와 스스로 궁정에서 은퇴하려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요크가문의 반란때문에 은퇴했다는 이야기들이 있다고 합니다.

확실한것은 헨리 7세의 어머니이자 아들이 국왕이 되는데 큰 공을 세웠었으며 스스로 거의 "수녀"처럼 행동했었던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궁정에 남았다는 것이죠. 이로 미뤄보아서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권력에서 밀려난것은 어느정도는 사실일듯합니다.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헨리 7세

각각 요크가문의 흰장미와 랭카스터가문의 붉은 장미를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엘리자베스는 "대비"로써의 예우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연금을 받았으며 손자 손녀가 태어날때 그곳에 참석하기도 했었죠. 엘리자베스는 1492년 사망했으며 남편인 에드워드 4세 곁에 묻혔습니다.

 

 

2013년 방영된 드라마 The White Queen에서 엘리자베스 우드빌

이 드라마에서 그녀는 어머니 자퀘타 처럼 "마녀"로 나옵니다.

그녀는 미래를 보는 영감이 있으며, 자신의 아들이 죽었을때 그 책임이 있는 자들의 아들들이 없어지게 저주를 내리죠. 결국 이 이야기는 튜더가문의 남성 직계 후계자가 단절되는 것에 대한 암시 인듯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1.위키 미디어 커먼스 

2.BBC one the white queen 페이지

http://www.bbc.co.uk/programmes/p018sxqp/profiles/elizabeth-woodvi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