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

[가벼운 읽을거리]빅토리아 여왕과 애들

엘아라 2012. 10. 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메와르에 대한 글을 쓸 책을 못 읽었습니다.ㅠ.ㅠ

내일은 어디 커피전문점에라도 가서 글을 읽던가 해야겠습니다.--;;

이러다가는 쓸 글이 없을듯하다는...ㅠ.ㅠ


오늘 문득 "어린애들에게도 어른의 예의범절을 강요했던 빅토리아 여왕"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여왕님이야기를 잠시 해볼까합니다.


[가벼운 읽을거리]빅토리아 여왕과 애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공 그리고 아홉아이들

여왕이 안고 있는 아이가 막내인 베아트리스 공주이고 큰딸인 빅키는 오른쪽 제일 큰 여자아이인데 1년도 되지 않아서 프로이센의 왕위계승자와 결혼합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빅토리아 시대"라고 불리던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률중 하나가 부부가 화목하며 아이들과 잘 지내는것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정작 여왕은 아이들을 싫어했다.

여왕이 아이를 낳을수 밖에 없었던것은 "왕위 계승자를 낳아야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허니문 베이비였던 큰딸은 여왕이 아이들을 싫어하는데 결정타를 입혔을듯하다. 여왕은 좀더 오붓한 신혼시절을 즐기길 원했었지만 결혼 직후 임신하게 되었다. 외삼촌인 벨기에의 레오폴 1세에게 "대가족의 어머니"가 될 준비가 되었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여왕은 아이를 가짐으로써 받게되는 여러가지 제약을 너무나 싫어했다. 몸이 무거워 지면서 좋아하던 승마나 겨울 스포츠를 하나도 즐길수 없는것에 짜증냈으며, 임신한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 싫어했다고 한다. 통통했던 여왕은 임신하면서 체중이 더욱더 불어났기에 외모에 더 스트레스 받았을수도 있다. (하지만 앨버트공은 임신해서 몸이 불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왕은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는데 그 남편은 첫째딸인 빅키에게 완전히 빠져들어서 "딸바보"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여왕은 자신보다 딸을 더 사랑하는듯한 남편의 행동에 서운한 감정을 가졌고 질투심마저 느꼈을수도 있다. 이것은 여왕이 아이들을 싫어하는데 악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프린세스 로열과 함께 있는 빅토리아 여왕

여왕은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 큰 딸을 질투했었지만, 딸이 시집가고 남편이 죽은뒤 빅키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됩니다.


또 여왕은 갓난 아이들을 싫어했는데 여왕이 자신의 아이들을 시키는데 참여한것은 거의 드물었다. 막내딸인 베아트리스 공주가 태어났을때 정도가 되어서야 딸을 목욕시키는데 참여했지만 그전까지 아기들을 돌보는것을 좋아하지 않았는것이 분명했다. 특히 여왕은 모유수유를 끔찍히 싫어했는데 훗날 딸인 앨리스 공주가 모유수유하는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젖소에 딸의 이름을 붙일 정도였다고 한다.


빅토리아 여왕은 아이들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여왕은 아이들도 "어른들과 같은 예의 범절"을 갖춰야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여왕은 자녀들에 대해서도 자신이 "군주"임을 잊지 않았었다. 앨버트공은 이런 아내에게 "아이들과 진정으로 가까워지려면 그렇게 잔소리만 해서는 안된다"라고 할정도였다. 여왕의 어머니인 켄트 공작부인도 여왕에게 아이들에게 너그러워 지라고 이야기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왕은 "어머닌 자녀가 하나뿐이셨잖아요"라고 대꾸했었다.)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 공


특히 빅토리아 여왕의 자녀들은 어머니를 두려워했다. 비록 여왕은 남편인 앨버트공에 의지했지만 사실 여왕이 화를 내면 앨버트 공조차 감당이 안되었다. 앨버트공은 여왕이 화를 내면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아내의 화가 가라 앉을때까지 기다렸으며 쪽지로만 대화했다. 여왕은 남편이 죽은뒤에도 이런 방식을 고수했는데 여왕은 딸인 베아트리스 공주가 결혼하겠다고 했을때 딸이 옆에 있었음에도 거의 육개월간 쪽지로만 대화했다. 여왕의 자녀들과 그 후손들은 감히 여왕에게 반항할 엄두도 못냈었다. 


비록 빅토리아 여왕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좋은 "할머니"이자 "증조할머니"가 되어갔다. 자녀들에게 하듯이 손자손녀들을 사랑했는데 그래도 일단 얌전하고 예쁜애들을 먼저 편애했다.가끔 여왕의 자손들중 여왕에게 대꾸한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여왕에게 매우 무례한 일이었으며 그런 무례가 용납되는것은 "특혜"이기도 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가장 사랑한 딸이었던 베아트리스 공주는 어린시절 어머니에게 말대꾸를 수시로 했고, 여왕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여왕은 다른 자녀들에게 하는것과 달리 베아트리스의 행동을 눈감아줬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는데 먼저 사랑하는 앨버트공이 큰딸이 시집가버린후 베아트리스를 가장 아끼게 되었는데, 여왕에게 이것은 큰딸에게 느꼈을 질투의 감정을 베아트리스에게는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거라 추측하기도 한다.(남편이 죽은뒤에는 이 딸을 동반자로 의지했는데 베아트리스 공주는 아버지가 죽은뒤로는 더이상 여왕에게 말대답하던 버릇없던 이이가 아니라 얌전하고 늘 어머니를 위로하려는 어린 소녀로 변해있었다.)


빅토리아 여왕과 막내딸 베아트리스 공주

앨버트 공이 죽은 뒤

여왕은 평생 이 딸을 놔주지 않습니다.


여왕은 손자 손녀들에게는 무척이나 따뜻한 사람으로 인식되었지만 손자 손녀들 역시 "할머니의 엄한 눈초리"에 대해서는 무서워했었다. 그리고 여왕의 손자 손녀들 역시 여왕의 뜻을 거슬리는것을 피하려했었다. 여왕이 가장 사랑했던 손녀는 외손녀인 헤센 의 빅토리아 였다. 그녀는 어머니 앨리스 공주가 죽고 난 뒤 여왕에게는 딸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빅토리아는 어머니 앨리스 공주처럼 여왕에게 매우 순종적이었으며 여왕의 뜻을 거슬리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했었다. 사실 여왕이 빅토리아를 사랑한것은 영국에서 태어난 첫번째 손주였으며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쓴 손주였기 때문에 특별히 여기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헤센의 빅토리아의 총명함 역시 여왕의 마음에 들었던것이다. 게다가 잘생긴 외손주 사위까지도 딱 마음에 들었을것이다. 이때문에 여왕은 헤센의 빅토리아와 그 가족들을 매우 아끼고 사랑했는데 증손자손녀들이었던 바텐베르크 가문 아이들 역시 매우 사랑했다. 헤센의 빅토리아의 큰딸인 앨리스는 매우 조용하고 예쁜 아이였기에 모두의 사랑을 받았는데 여왕 역시 이 아이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런데 이 앨리스에게도 여왕에게 반항한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

여왕은 어린아이에게도 "예의"를 강요했기에,어린아이였던 앨리스가 놀러왔을때, 여왕은 이 증손녀에게 손에 키스하라고 했다. 하지만 어린 앨리스는 증조할머니의 손에 키스하는것을 거부했다. 여왕은 앨리스의 손을 찰싹 때리면서 "버릇없는 아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앨리스는 증조할머니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버릇없는 그랜마"라고 했다고 한다.이 이야기를 썼던 헤센의 빅토리아는 "나는 그 버릇없는 아이를 얼른 밖으로 내보내야만 했다"라고 언급한다.



빅토리아 여왕과 베아트리스 공주

헤센의 빅토리아와 그녀의 딸인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이 사진이 몇개 시리즈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빅토리아 여왕이 매우 크게 웃고 있는 사진이 있다죠.

사실 여왕이 웃고있는 사진이 드물기 때문에 앨리스가 여왕을 즐겁게 했다고 추정하는 사진중 하나랍니다.



자료출처 (앞쪽에 나오기 때문에 대충 적음-0-;;)

1.the last princess(베아트리스 공주 전기)

2.Alice : Princess Andrew of Greece(필립공의 모친인 앨리스 왕자비 전기)

3.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1.마지막 사진 : Alice:Princess Andrew of Greece

2.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