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마르 싱에 대해서 없어서 결국 책을 읽었습니다..ㅠ.ㅠ
그런데 웹페이지를 찾았다는...ㅠ.ㅠ 이런이런..책내용이랑 그 웹페이지랑 비슷하더라구요.
아마르 싱이후에는 자료가 별로 없어서 그냥 책을 읽을까합니다만...진짜 영어 책은 읽히지가 않아요..
게다가 컴이 상태가 메롱해서 pdf파일을 읽는건..ㅠ.ㅠ
진짜 갤럭시 노트 10.1이나 아이패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사실 들고 튀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무한 진노를 살것같아서...ㅠ.ㅠ 백수주제에 조용히 살아야죠..ㅠ.ㅠ)
아마르 싱은 아버지 프라탑 싱의 유지를 열심히 받듭니다만...오랜 전쟁으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고 결국 아버지의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아버지의 숙원을 이루기는 했었습니다.-0-;;;
메와르의 투쟁 : 아마르 싱
아마르 싱 (메와르의 아마르1세)는 프라탑 싱의 열일곱 아들중 장남이었다. 그는 싸울수 있는 나이가 된 뒤로 아버지와 함께 전투를 했다. 그는 프라탑 싱에게 믿음직한 아들이자 동료 전사였다. 이때문에 아마르 싱은 아버지 프라탑싱의 원대한 꿈을 이해했다.
하지만 프라탑 싱은 아들이 당장의 어려움때문에 무굴제국과의 투쟁을 관둘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죽기전 아들에게 "무굴제국과의 투쟁을 끝까지 지속하겠다"라고 맹세를 시켰다. 그리고 아마르 싱은 이를 실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만했다.
아마르 싱
19세기 그림
프라탑 싱이 죽은후에도 그의 라이벌이었던 악바르 대제는 건재했으며 오랜 전쟁으로 나라는 피폐해졌다. 결국 아마르 싱은 무굴제국이 선제 공격하지 않한 전투를 하지 않기로 무굴제국과 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무굴제국은 8년 동안 메와르를 공격하지 않았다.
아마르 싱은 이 기간동안 피폐한 나라를 복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는 나라의 제도등을 개선했으며 엄격한 종교적 경제적 제재를 할수 있는 법률을 마련했고, 귀족들과 봉신들 역시 다시 재편했다. 또 아마르 싱은 아버지의 봉신들과 장군들을 설득해서 정글지대에서 벗어나 수도 우다이푸르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버려진 우다이푸르를 재건했다.
아마르 싱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으며 이때문에 이 불안정한 8년간의 기간동안 메와르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국가가 된다.
프라탑 싱이 죽은 8년후, 무굴제국의 악바르 대제가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인 자한기르가 황제가 된다. 이것으로 메와르와 무굴제국의 불안정한 평화를 깨지게 된다. 자한기르는 메와르의 정복을 다시 시작한다. 이후 10여년동안 메와르는 무굴제국의 엄청난 병력과 맞부딪혀서 싸워야했다. 자한기르는 수많은 장군들을 보냈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후계자가 되는 쿠르람(Kurram, 후에 샤 자한)까지 보내기에 이르렀다.
메와르는 순식간에 밀려드는 무굴제국의 군대를 막을수 없었다. 도시들은 약탈당했고 고아와 과부들이 넘쳐났으며, 사원들은 파괴되었다. (사원을 파괴한 이유는 자한기르가 이슬람교를 강요해서그렇다고 합니다.) 아마르가 간신히 궁정을 수습해서 아버지 프라탑 싱처럼 밀림지대로 들어갔을때 무굴제국은 이미 수도 우다이푸르까지 장악했었다.
황제 자한기르
하지만 아마르 싱은 차근차근 다시 빼앗긴 지역들을 수복하기 시작했다. 자한기르는 수많은 장군들을 보냈지만 아마르 싱이 다시 영토를 회복하는것을 막지 못했는데, 이때문에 마지막에는 후계자가 될 아들인 쿠르람을 보내야할 정도가 되었다.
아마르 싱 역시 수도 우다이푸르까지 다시 되찾지만 이를 위해 수많은 전투를 해야겠고 그때문에 용맹한 메와르의 베테랑 대부분을 잃어야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614년 쿠르람 왕자가 무굴제국군대를 이끌고 우다이푸르근처에서 진을 치게 되자 큰 혼란에 빠졌다. 무굴제국의 대군을 막기에는 병력이 너무나 부족했으며 지속된 전투로 인해서 귀족들과 궁정 관리들은 또한번의 대규모 전투에 대해서 자신감을 잃었다.
무굴제국의 장군들에게 둘러쌓여있는 아마르 싱
이런 상황은 아마르 싱이 어쩔수 없이 평화를 위한 협상을 나서게 만들었다. 그는 평생 아버지의 뜻을 따라 무굴제국에 대적했지만, 이제 왕국의 존재가 위협받는 지경이었던것이다. 그는 두명의 귀족을 사절로 보냈는데 그중 한명은 아마르 싱의 외삼촌이었다.
한편 쿠르람 왕자 역시 메와르와의 대규모 전투보다는 평화 협정이 훨씬 이득일것이라고 생각했다. 왕자는 아버지인 황제에게 "메와르와의 우정"을 받아들여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것이 또다시 전투로 국력을 소비하는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이에 황제는 메와르와의 평화 협정을 인정했다.
메와르와 무굴제국은 결국 협정을 맺게된다.
이것은 매우 미묘한 협정이었는데 메와르측에서는 무굴제국의 황제를 "외국세력"으로 규정한것을 인정받았다. 외국 세력이었기에 라나가 황제의 궁정에 가지 않아도 됐고 황제를 알현할 필요도 없었으며 결혼동맹을 맺을 필요도 없었다. 또 중요한 칫토르 역시 돌려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대규모의 요새는 파괴되었으며 파괴된채 그대로 메와르에 반환되었다. 또 비록 군주가 황제를 알현하지는 않았지만, 라나의 후계자는 황제를 알현하고 얼마나 수도에 머물러야했다. 다시 말해서 메와르는 무굴제국의 영향력을 인정한것이었다. 그리고 무굴 제국은 필요할때 말 천마리와 기수를 요구할수 있었다.
1615년 아마르 싱은 황제는 아니지만 쿠르람 왕자를 알현했으며 이곳에서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이것은 프라탑 싱의 유언에 반대되는 일이었기에 강경파 부족과 귀족들은 이에 극심하게 반대했으며 심지어는 나라를 떠나기도했다. 하지만 이 협정으로 인해 아마르 싱은 아버지의 또다른 염원인 칫토르를 되찾을수있었다. (하지만 파괴된채 돌려받았기에 이후 칫토르는 버려지게 됩니다.--;;; 요즘은 관광지라서.... 인도에서도 유명한 관광지라고 하더라구요.)
19세기 중엽의 칫토르가르
이 평화 협정은 메와르 왕가와 무굴제국의 황가 사이에 우호 관계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아마르 싱과 그 가족은 메와르와의 협정에 좋은 조건을 제시한 쿠르람 왕자에게 호감을 가졌고, 쿠르람 역시 메와르의 왕가와 우정을 쌓았다. 그리고 아마르 싱의 아들이자 후계자가 될 카란 싱은 자한기르의 초청으로 무굴제국의 궁정에 잠시 머물렀으며,다음 황위계승자가 될 쿠르람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었다.
이로써 메와르와 무굴제국은 잠시 평화로운 분위기에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메와르와 무굴제국의 투쟁은 끝난것은 아니었다.
자료출처
1. http://www.indhistory.com/mewar-submission.html
2. Tod's Annals of Rajastan : The Annals of Mewar (Payne)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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