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 여기도 참 점점 소재가 줄어듭니다. 흑..다음에 할거 없으면 또 로마시대 해야합니다..ㅠ.ㅠ
로마시대는 진짜 이름부터 난감한데 말입니다. ㅠ.ㅠ
안되면 그냥 배경 사건같은것도 하고 그래야겠습니다.
책을 빌렸는데 특별한 오페라가 없군요...-0-;;아는 역사적 인물이라고는 이제 로마시대 밖에 없습니다..ㅠ.ㅠ
안되면 시리즈 갈아엎죠 뭐-0-;; 요즘 보보경심보고 나서 옹정제 특집을 어디선가 미친듯이 썼는데 안되면 옹정제 특집이나 하죠뭐--;;;;;
오페라속의 역사이야기...(10)로시니의 오페라 엘리자베타,영국의 여왕과 엘리자베스1세
로시니
1815년
로시니의 오페라 엘리자베타 영국의 여왕(Elisabetta, regina d'Inghilterra, Elizabeth, Queen of England)는 1815년 나폴리에서 처음으로 상연된 로시니의 오페라입니다. 로시니는 이시기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에 있었는데 이때 쓰여진 아홉편의 오페라들은 로시니의 대표적인 오페라들이었죠.
로시니가 이 오페라를 쓰던 시기 이탈리아에서의 영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을때였고 이때문에 영국 역사에 대한 오페라를 올리게 되는것이었죠. 이 오페라를 준비하면서 로시니는 당대 최고의 메조 소프라노인 이사벨라 콜브란을 만나게 됩니다. 로시니는 그녀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고 이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후에 콜브란은 로시니의 오페라에 단골로 출연하게 됐으며 그와 결혼까지 했습니다.
초연당시 여주인공이었던 이사벨라 콜브란
로시니는 자신의 오페라의 멜로디를 다른 오페라에 쓰는 일을 자주 했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엘리자베타의 서곡은 사실 이전에 작곡된 Aureliano in Palmira의 서곡이었습니다. (이것은 후에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서곡으로 다시 쓰입니다.) 엘리자베타의 몇몇 멜로디들은 바로 뒤에 작곡된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에 쓰이기도 합니다.
이 오페라는 나폴리에서의 첫 공연은 성공적입니다만 그뒤로 외국 공연에서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영국에서는 1818년 상연되기도 했지만 그다지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1840년 이후에는 거의 상연되지 않게 됩니다.
이 오페라를 다시 볼수 있게 된것은 1950년대 이후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1952년 즉위했기 때문입니다.(앗 여왕님 다이아몬드 주빌리 특집을 해야하는데 말입니다..ㅠ.ㅠ) 엘리자베스 여왕을 기념하기 위해 같은 이름이 들어가는 오페라를 공연하기 시작한것이었죠.
현재도 그리 많이 상연되는 오페라는 아니라고 합니다만, 몇개의 레코딩이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용은 레스터 백작과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도 레스터 백작의 비밀결혼이 등장하는데 재미난것은 레스터 백작이비밀결혼한 사람이 메리 스튜어트의 딸이라고 나온다는 점이죠. 여왕은 레스터 백작이 비밀결혼한것을 알고 분노하는데 그것이 메리 스튜어트의 딸인것을 알고 반역죄로 레스터 백작을 체포합니다.(메리 스튜어트는 영국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엘리자베스 1세가 메리 스튜어트와 단리경의 결혼에 불같이 화를 낸것이었죠.) 하지만 민중은 레스터 백작을 위해 탄원을 하고 여왕은 모두를 사면해주고 나서 자신은 국가를 위해 살겠다고 선언을 하면서 끝납니다.
Quant'e grato all'alma mia
엘리자베타의 아리아
제니퍼 라무어
1970년에 녹음된 오페라 전곡
서곡이 참 익숙하군요..-0-;;;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와 두번째 부인인 앤 불린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태어났을때 헨리 8세는 딸을 정략결혼의 대상으로 유럽의 여러 왕가에 선을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앤 불린이 죽고 나자 신분이 매우 불안정하게 됩니다. 헨리 8세는 앤 불린과의 결혼을 무효화 했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공주가 아닌 레이디 엘리자베스라고 불렸죠. 어머니가 죽고 난 직후에는 매우 불안정한 삶을 살았는데 엘리자베스를 돌보던 사람은 국왕에게 엘리자베스의 곤궁한 처지를 탄원하는 편지를 보낼정도였죠.
엘리자베스가 어느정도 안정을 찾은것은 헨리 8세가 캐서린 하워드와 결혼한 후였을듯합니다. 캐서린 하워드는 앤 불린과 친척관계였기에 엘리자베스에게 어느정도 잘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캐서린 파와 헨리 8세가 결혼한 후이후에 엘리자베스는 캐서린 파가 돌봐주게 되죠.
소녀시절의 엘리자베스
아버지가 죽고 난뒤 엘리자베스는 다시 불안정한 삶을 삽니다. 비록 동생인 에드워드와 친하게 지냈지만 그와 별도로 늘 왕위계승과 관련된 말썽에 휩쌓입니다. 또 언니인 메리가 즉위한후에는 거의 찬밥신세가 되죠. 앤 불린에 원한이 깊었던 메리는 동생 엘리자베스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메리가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 현실적인 후계자는 엘리자베스 밖에 없었지만 메리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자베스의 왕위계승만은 막으려고만 했죠. 이를 반대한 인물이 메리의 남편인 스페인의 펠리페 2세였습니다. 이때 엘리자베스는 "형부의 호의"에 감사했다고 하죠.
엘리자베스의 언니 부부
잉글랜드의 메리 1세와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
언니가 죽은후 엘리자베스는 잉글랜드의 여왕으로 즉위합니다. 하지만 여왕으로써 엘리자베스의 삶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녀는 평생 전쟁을 치뤄야했고, 내부적으로는 늘 반란음모에 직면했습니다. 또 결혼문제도 여왕을 골치아프게 만드는 것이었죠.
여왕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결혼을 정치적 협상도구로만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여왕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들라면 바로 레스터 백작이 되는 로버트 더들리일듯합니다.
여왕이 그와 결혼하고 싶었는지 아닌지는 알수 없지만 적어도 로버트 더들리와 결혼할 입장이 못됐습니다. 왜냐면 여왕이 그와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고 얼마 되지 않아서 로버트 더들리의 아내가 의문사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임에도 여왕이 로버트 더들리와 결혼하려 했다면 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듯합니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여왕은 후에 보스웰 백작과 결혼하려는 메리 스튜어트를 말리기도 했습니다. 여왕의 입장에서 그것은 군주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여겼을듯합니다.
레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
여왕이 포도주 징세권을 줘서 떼돈 버셨댑니다.-0-;;;
로버트 더들리는 두번 결혼했는데 특히 두번째 결혼이후 여왕은 로버트 더들리에게 매우 화를 냈고 그의 아내를 정식 부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마저 취합니다. 이런 여왕의 태도는 후에 여러 문학작품에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로시니의 오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죠.
하지만 19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이었고 이때문에 여왕에 대한 이미지 역시 대범하게 자신을 속인 이들을 용서하는 모습으로 나오는듯합니다.
엘리자베스 1세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불멸의 오페라 II(2007,박종호,시공사)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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