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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속의 역사 이야기...(9) 몬테베르디의 포페아의 대관과 포파에아 아우구스타 사비나

엘아라 2012. 4. 1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오늘 책 빌리러 갔다가 도서관 문닫는 시간 넘어서 가서 결국 책을 못빌렸습니다..ㅠ.ㅠ

책을 봐야 뭔 이야기를 적죠..ㅠ.ㅠ

그래서 결국 아는 이야기 하기로 했습니다.


진짜 바로크는 안할려고 했는데...ㅠ.ㅠ 저에게 로마시대는 진짜 난해한 시대라서 말입니다...ㅠ.ㅠ


오페라 속의 역사 이야기...(9) 몬테베르디의 포페아의 대관과 포파에아 아우구스타 사비나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몬테베르디 마드리갈들을 좋아합니다.-0-;;;;



오페라의 세계에서 몬테베르디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오페라라는 장르가 만들어질 당시 크게 기여한 인물중 하나로 여겨지는 사람입니다.  몬테베르디는 최소 열여덟편의 작품을 작곡한것으로 알려져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작품은 겨우 세작품 정도이며 그중 하나가 포페아의 대관L'incoronazione di Poppea (SV 308, The Coronation of Poppea)입니다.

이 작품은 서막과 세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오페라로 1642-1643년 베네치아의 카니발 시즌에 처음으로 상연된 오페라였습니다.  1651년 나폴리에서 재상연되기도 했지만 그뒤로 잊혀졌으며 1888년에 악보가 재 발견되면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학자들이 연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발견된 악보는 1642-3년 베네치아 카니발 시즌을 위해 작곡된 원본이 아니라 1650년에 다시 필사한 것으로 두개의 다른 대본이 존재했는데 두개는 완전히 똑같이 않아서 어디까지가 몬테베르디의 작품이고 어디까지가 다른 작곡가가 끼워넣은 곡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포페아와 네로네가 부르는 이중창의 경우 몬테베르디의 작품이 아닐것이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오페라는 대체적으로 몬테베르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초기 오페라는 1960년대 이후 전세계에서 많이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16세기 그려진 포파에아 사비나의 초상화


이 오페라의 내용은 로마 네로 황제시기입니다. 

네로네(황제 네로)에게는 그의 정부인 포페아(포라에아 사비나)가 있습니다. 그녀는 이미 오토네(오토)와 결혼한 유부녀였지만 황제를 매우 사랑했죠. 포페아처럼 네로네에게도 이미 황후인 옥타비아가 있었습니다. 포페아는 황제와 함께하기 위해 남편과 헤어지는것도 마다하지 않죠. 황후는 이런 포페아에게 위협을 느꼈고 오토네는 질투를 느낍니다.

결국 오토네와 옥타비아는 모두 추방당하고 네로네와 포페아는 결혼하면서 오페라는 행복하게 끝이 납니다.


포페아의 대관
아리아 이름이 안나옴..ㅠ .ㅠ

Oblivion soave
네로네의 아리아

포페아의 대관중 네로네와 포페아가 부르는 엔딩 이중창
pur ti miro /pur ti godo



이 오페라는 네로 황제의 두번째 황후였던 포파에아 아우구스타 사비나의 이야기를 다룬 오페라로 이런 극의 연출은 당시 도덕적 관념과 너무 다른것이었다고 합니다. 포파에아와 네로와의 관계는 부적절한것이었으며 특히 네로는 포파에아를 맞이하기 위해 정숙한 아내를 내쫓은거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네로가 임신한 포파에아를 학대해서 유산시켜서 사망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기에  이런 오페라의 결말은 실제 역사를 아는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포파에아 사비나


포파에아 아우구스타 사비나는 티투스 올리우스와 포파에아 사비나의 딸로 폼페이에서 AD30년 경에 태어났습니다. 포파에아의 아버지인 티투스 올리우스는 티베리우스 시절의 재무관을 지냈는데 티베리우스가 권력을 물려준 세야누스와의 친분 관계 때문에 세야누스가 실각한후 그 역시 공직에서 물러나야했으며 이후 젊은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포파에아의 어머니인 포파에아 사비나는 매우 뛰어난 여성으로 부유했으며 결단력있었고 아름다웠던 여성으로 "당시 가장 사랑스러웠던 여성"으로 일컬어졌습니다. 하지만 포파에아 사비나는 클라디우스 황제의 아내였던 발레리아 메살리나 황후의 음모로 인해 자살해야했습니다. 

포파에아 아우구스타 사비나의 외할아버지였던 가이우스 포파에우스 사비누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티베리우스 황제가 중요한 신하로 포파에아는 외할아버지가 죽을때쯤 외가의 성인 사비나라는 이름을 받았을것으로 추측됩니다.


포파에아는 열네살때 루프리우스 크리스피누스와 결혼합니다. 그는 클라디우스 황제의 근위대 대장이기도 했죠. 포파에아는 그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습니다만 곧 그와 이혼합니다. 그리고 클라디우스 황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네로의 절친한 친구였던 오토와 재혼하죠. 하지만 그녀는 새 황제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포페아의 두번째 남편

오토 



네로는 아내 클라우디아 옥타비아와 정략결혼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었습니다. 네로는 여러 여자들과 연애사건을 일으켰는데 아름다운 포파에아가 임신하게 되자 아내와 이혼하려 합니다. 아내와의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었는데 포파에아가 임신하게 된것이죠.

옥타비아와 이혼한 직후 포파에아와 결혼했고 포파에아는 네로의 딸인 클라우디아 아우구스타를 낳습니다. 네로는 딸이 태어나자 아내와 딸에게 황후와 황녀들의 이름인 아우구스타를 부여합니다. 



엄마 소 아그리피나와 함께 있는 네로


포파에아는 65년경 두번째 아이를 임신중에 갑자기 사망합니다. 그녀가 죽기전 네로와 크게 싸웠는데 많은 이들이 네로가 임신한 포파에아를 때려서 숨지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몇몇 저작에서는 포파에아를 독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또 다른 역사가는 네로가 포파에아를 때린것이 고의적인지 우발적인지 확실치 않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 역사가들중 일부는 포파에아가 통상적인 유산이나 사산때문에 사망했으리라 추정하기도 합니다.



네로 황제


포파에아가 죽자 네로는 매우 깊이 슬퍼했습니다. 그녀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루게 하고 신의 반열에 올렸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