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음악이야기

마리오 란자

엘아라 2012. 2. 10. 06:3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지인께서 마리오 란자를 좋아하시더라구요. 전 잘 몰랐고 사실 들어본 영화에 나온 노래는 그다지 였는데 문득 듣다가 필이 꽂혔습니다. 게다가 지금 딱 나폴레옹이 사랑한 여인들 시리즈 하기 싫은 시점이라서 (사실 초상화도 없더라구요..-0-;;) 일단 땡빵용으로 이글 먼저 씁니다.-0-;;;;

 

마리오 란자

 

 

 

 

마리오 란자

Mario Lanza

Alfredo Arnold Cocozza

(January 31, 1921 – October 7, 1959)

 

마리오 란자는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던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 이름은 앨프러드 아놀드 코코짜였는데 훗날  예명으로 어머니 처녀때 성인 란자라는 이름을 쓰게 된것입니다.

 

어린시절 이미 그는 재능을 보였는데 열 여섯살때부터 가수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10대땐 필라델피아 YMCA의 오페라단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20대가 되었을때 보스턴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세르게이 쿠세비츠스키의 지원하에 버크셔뮤직센터에서 공부하게 되죠. 이때 쿠세비츠스키는 마리오 란자에게 "백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목소리다"라고 극찬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이시기 같이 공부한 사람중에는 레널드 번슈타인도 있다고 하네요

 

1942년 마리오 란자는 오페라 "윈저의 즐거운 과부들"로 데뷔합니다. 그리고 잇따라 여러 오페라들을 하는데 이모두에 대해서 엄청난 찬사를 받게 됩니다. 특히 라보엠에서 루돌포 역으로 극찬받는데 상대역이었던 메조 소프라노는 죽기전 마리오 란자에 대해서 회상할때 "매우 정확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목소리였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http://youtu.be/vn---QLcZiE

토셀리의 세레나데

 

마리오 란자의 오페라 경력은 2차대전으로 잠시 중단됩니다. 마리오 란자는 미국 공군으로 입대했으며, 전쟁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 자신의 멘토가 되는 바리톤 피터 허먼 애들러와의 공연으로 다시 무대로 돌아옵니다. 동시에 라디오에도 출연합니다. 그리고 1947년에서 1948년 사이 북미 전역을 돌면서 콘서트를 했고  이 콘서트 역시 극찬을 받게 됩니다. 언론에서는 그에 대해서 "압도적인 진정한 테너"라고 극찬했죠.

이 공연에서 돌아온후 오페라 나비부인,라트라비아타등에 참여했으며 극찬을 받게 됩니다.

 

 

 

나비부인중 그 나쁜넘 역할중 --;;;

(왜 갑자기 이름이 기억이 안나지..)

 

오페라 나비 부인중

 

마리오 란자는 오페라에 출연하던 시기 이미 헐리우드 진출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1947년 헐리우드에서 열린 콘서트에 갔다가 MGM 사장인 루이스 메이어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마리오 란자를 영화업계로 스카웃하고 싶어했고 마리오 란자 역시 이에 대해 매우 고민합니다. 그리고 1949년 영화를 하기로 계약하죠. 이때쯤 마리오 란자의 첫번째 음반이 발매되었는데 여기 수록된 오페라 "라보엠"의 아리아 "Che gelida manina는 대단히 인기를 끌었고 미국 비평가협회에서 수여한 올해의 오페라 음반상을 받기도 합니다.

 

 

 

 

http://youtu.be/BSiLt9atkaM

라보엠 중 Che gellida manina

 

 

헐리우드로 간 마리오 란자는 일곱편의 영화에 주연배우로 출연했으며 한 영화에서는 목소리만 출연합니다. Student Prince에서 목소리만 출연한 이유는 마리오 란자의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은 감독과의 갈등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여덟편의 영화는 마리오 란자에게 대단한 명성을 안겨주게 됩니다. 특히 the Great Caruso의 경우는 유명한데 어린 호세 카레라스가 이 영화를 보고 오페라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훗날 호세 카레라스는 마리오 란자 헌정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http://youtu.be/O_YVNzDiavg

the Great Caruso중

 

 

 

영화 The Toast of New Orleans에서

 

 

1958년 마리오 란자는 이탈리아에서 그의 마지막 영화 "for the first time"을 찍습니다. 1960/1961년이미 로마의 오페라극장과 계약했고 라스칼라나 산카를로 같은 곳에서도 초청하려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59년경 마리오 란자의 건강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아마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과 급격한 다이어트등이 원인이 되어서 그럴것이라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1959년 가벼운 심장마비가 온뒤 폐렴에 걸린 마리오 란자는 건강이 급속히 악화됩니다. 그리고 1959년 10월 38살의 나이로 로마에서 폐색전으로 사망합니다.

 

 

 

 

http://youtu.be/FYgSDFjhHbk

for the first time 중 오페라 오셀로의 Niun mi tema

 

매우 뛰어난 가수였던 마리오 란자는 RCA Victor에서 첫 레드씰(이게 음반 팔리는거에 따라 색깔이 다르더라구요.-0-;;)을 받은 음악가였습니다. 이때그는 250만장의 앨범을 팔았죠. 이 기록은 앨비스프레슬리가 나오기전에 깨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많은 음악가들이 마리오 란자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 호세 카레라스는 물론 플라시도 도밍고 역시 마리오 란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인터뷰를 합니다.

 

 

 

http://youtu.be/FCyhj35sKW0

최근 듣고 반한 곡

일트레바토레 중 Di quella pira

 

더하기

카를로스 마린(일디보)도 영향을 준 음악가 중에 한명으로 마리오 란자를 꼽네요. 카를로스도 the Great Caruso를 보고 노래를 부르겠다는 생각을 했대요...ㅎㅎㅎ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http://en.wikipedia.org/wiki/Mario_Lanza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http://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Mario_Lan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