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인물들

30년 전쟁과 관련된 인물들...(4)작센의 요한 게오르크 1세

엘아라 2011. 9. 2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게오르크와 루트비히라고 써야할 시기일듯합니다.-0-;;

작센의 요한 게오르크에 대해서 웨지우드는 나름 호의적 평가를 내립니다. "입헌주의를 외치고 그 견지를 전쟁 내내 유지한 인물"이라는 것이죠. 웨지우드는 그가 다른 이들보다는 "독일"을 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실제로 같은 신교 세력이었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호엔촐레른가문)나 팔츠의 선제후 보다는 카톨릭 세력이었던 합스부르크가를 더 지지했고 웨지우드는 이것이 "독일"자체를 위해 더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익을 버리지 않았기에 위대한 정치가도 아니었고 뛰어난 인물도 아니었기에 30년 전쟁동안 그의 행위는 그냥 여기저기를 배신한 행동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30년 전쟁(1618-1648)

저자
C. V. 웨지우드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1-06-13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깊은 안목과 섬세한 필치로 빚어낸 ‘유럽판 삼국지’!오늘의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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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과 관련된 인물들...(4)작센의 요한 게오르크 1세

 

 

작센의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 1세

John George I of Saxony

(5 March 1585 – 8 October 1656)

 

 

요한 게오르크 1세의 부모

작센의 크리스티안 1세와 브란덴부르크의 조피

브란덴부르크의 조피는 루터파였는데 아들이 성인이 되기전 남편이 죽자 섭정중 한명이 됩니다.

그녀는 루터파를 지지했는데 남편이 죽고 난뒤 칼팽파 정치가로 루터파를 박해했던 대신을 체포해서 요새에 가뒀다가 처형했습니다. 이때문에 "작센의 유디트"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작센의 크리스티안 2세

요한 게오르크 1세의 형

그는 덴마크 공주와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이 사망했고, 그가 죽은후 요한 게오르크 1세가 형의 지위를 이어받습니다.

 

요한 게오르크의 첫번째 부인

뷔르템베르크의 시빌레 엘리자베트

첫아이를 낳다 사망합니다.

 

요한 게오르크의 두번째 부인

프로이센의 마그달레나 시빌레

웨지우드의 책에 의하면 마그달레나 시빌레는 사려깊은 부인 좋은 어머니였으며 군주의 아내로 당시 다른 군주의 부인들과 달리 군주인 남편과 백성들과의 사이를 가깝게 해야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그달레나 시빌레의 큰언니는 안나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와 결혼했습니다. 안나의 딸인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스웨덴 왕비로 구스타프2세 아돌프의 부인이었는데 마리아 엘레오노라와 마그달레나 시빌레는 친한 사이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1637년의 요한 게오르크 1세

요한 게오르크는 카톨릭 세력에 좀 더 친하게 지냈습니다만, 그는 대신 카톨릭 세력이 신교 세력을 업악하는것도 반대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독일 자체를 위해서 좋은 행동이었지만, 그는 "난세의 영웅"이 되지 못했고 그의 행동은 다른이들에게는 "배신"처럼 느껴졌을것입니다.

좀더 개인적 욕심을 버렸다면 더 좋은 평가가 나왔을듯도 합니다만, 그것은 그의 한계였겠죠.

 

 

1630년의 동전에 그려진 요한 게오르크1세

 

 

윗쪽이 아마도 요한 게오르크1세의 문장같습니다.

(맨위가 작센 가문의 문장이거든요)

 

 

1652년의 요한 게오르크 1세

그는 과음하는 전통을 그냥 따랐는데 이때문에 비록 그는 멍청하지는 않았지만 술을 점점 많이 마시게 되었고 이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실수하거나 미뤄야할때가 많았습니다.

 

 

18세기에 그려진 초상화

 

 

독일에 있는 그의 동상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http://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John_George_I,_Elector_of_Saxony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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