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인물들

30년 전쟁과 관련된 인물들...(2)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

엘아라 2011. 9.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다음은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입니다.

프리드리히 5세는 팔츠의 선제후로 30년 전쟁 당시 신교측의 중심인물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무척 이상적인 사람이었던듯합니다만, 웨지우드는 그의 "이상적 행위"는 결국 독일 통일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더우기 30년전쟁을 막는데는 더욱더 도움이 안된다고 언급합니다.

 

30년 전쟁에 대해서는 늘 추천하는 책인 웨지우드의 30년 전쟁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자꾸 언급하게 되는데 제가 이벤트로 책이 당첨되서 그런거 아니라 진짜 좋은 책입니다..ㅠ.ㅠ 서평안써서 찔려서 자꾸 언급하는것도 아닙니다..쿨럭..)


30년 전쟁(1618-1648)

저자
C. V. 웨지우드 지음
출판사
출판사 | 2011-06-13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깊은 안목과 섬세한 필치로 빚어낸 ‘유럽판 삼국지’!오늘의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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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과 관련된 인물들...(2)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

 

 

 

팔츠의 프리드리히 5세

보헤미아의 국왕

Frederick V (Friedrich V.)

(26 August 1596 – 29 November 1632)

그는 30년 전쟁의 시작이 되는 사건들에 연관되었으며 조용히 전쟁을 끝낼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권리와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그 기회를 날려버립니다.

 

 

프리드리히의 부모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4세와 오라녜-나사우의 루이제 율리아나

프리드리히 4세는 신교도들의 중요한 구심점중 한명이었습니다. 오라녜-나사우의 루이제 율리아나는 침묵공 빌렘과 그의 세번째 부인인 부르봉-몽팡시에의 샤를로트의 딸이었습니다.

이때문에 네덜란드의 슈타트하우더였던 마우리츠와 프레데릭 헨드릭은 모두 프리드리히 5세의 외삼촌이기도 했습니다.

 

 

1613년의 프리드리히 5세

프리드리히는 어린시절 이모부인 부용 공작의 궁정으로 보내져서 살았습니다.

이후 14살이었던 1610년 아버지가 죽자 그는 팔츠의 선제후 지위를 물려받았고 팔츠 가문의 다른 분가인 팔츠 츠바이브뤽켄이나 팔츠 노이부르크의 공들이 후견인이 됩니다.

1614년 그는 18살이 되었고 친정을 시작했습니다.

 

1613년의 프리드리히 5세와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1613년 프리드리히는 영국의 공주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와 결혼합니다.

둘의 결혼은 정략결혼으로 프리드리히는 독일의 신교도 왕족의 리더중 한명이었고,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는 신교도로 신교 국가인 잉글랜드의 공주였죠.

 

 

1619/1620년의 프리드리히

30년 전쟁 시작의 직접적 원인은 프리드리히가 보헤미아의 국왕직을 받아들이면서였습니다.

이에 그를 상대로 합스부르크가문은 전쟁을 했으며, 그는 결국 보헤미아에서 쫓겨날수 밖에 없었습니다.

 

 

망명이후의 프리드리히 5세

그는 보헤미아에서 패배했으며 그의 팔츠 선제후령은 제국군에 점령당했으며 네덜란드로 망명해야했습니다. 네덜란드의 통치자는 그의 외삼촌이었던 마우리츠였으며 그는 정치적 이유로 조카의 망명을 환영했습니다.

프리드리히 5세는 1632년 네덜란드에서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유해는 이리저리 옮겨다녔으며 어디에 묻히게 되었는지 현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프리드리히 5세의 부인인 엘리자베트 스튜어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군주의 딸로 아름답고 재치있었습니다.

그녀는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과 남편의 지위를 되찾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프리드리히와 엘리자베스

 

 

1621년

아마도 도망치는 프리드리히와 그의 가족을 뵤사한듯합니다.

 

네덜란드에서 망명생활중일때

 

역시 네덜란드에서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