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읽은 글이 없어서 쓸수 있는 글이 없습니다.
윌리엄 왕자 결혼기념으로 뭔갈 해보려니....귀찮습니다.-0-;;;;
살아있는 사람은 관심없는데다가 이넘의 영국 왕실 홈페이지는 2파운드가량하는 로열웨딩 앱 파는거나 광고하고 말입니다.-0-;; 우리나라 신문은 왕자 결혼식에 북한 대사 초대한다는것 정도가 이슈고 말입니다.-0-;;; (스웨덴의 빅토리아 공주 결혼식때도 북한대사가 하객명단에 포함됐는데 그땐 별로 나오지도 않두만요..--;;하긴 그때 통신사들이 공주 결혼식에 딴지 걸고 있긴했었습니다..ㅎㅎㅎ)
하여튼 결론은 새로 쓸만한 글이 없다는 것이죠. 물론 글감은 많지만 읽어본 내용이 없어서 글을 못쓴다는 슬픈 사실입니다. 그래서 결국 또 지웠던 글을 풀어봅니다.
유럽공주님들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가끔 사생아를 낳은 공주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악의적소문"으로 사생아를 낳았다는 소문이 돈 사람도 있지만 진짜로 아이를 낳은 공주들도 있다죠.
제가 처음 봤었던 사람은 덴마크의 공주였던 티라입니다.
사생아를 낳은 공주님들...(1) 덴마크의 티라 : 크리스티안 9세의 막내딸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는 세명의 아들과 세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그 중 아들 둘은 각각 덴마크와 그리스의 국왕이 되었고, 딸은 영국의 왕비,러시아의 황후, 하노버의 공작부인이 되었죠. 그중 하노버의 공작부인이 되는 티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합니다.
덴마크의 티라
하노버의 마지막 왕태자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부인, 컴벌랜드 공작부인
Princess Thyra of Denmark
Thyra Amelie Caroline Charlotte Anne;
Danish: Thyra Amalie Caroline Charlotte Anna; Thyra
덴마크식으로는 튜러..정도로 발음나는 모양입니다.--;;;
앞쪽에서 말했듯이 티라의 언니들은 영국의 알렉산드라 왕비와 러시아의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덴마크 국왕이었으며, 큰오빠는 그 뒤를 이을 왕자였고, 둘째오빠는 그리스의 국왕이었죠. 사실 티라의 어머니인 루이제 왕비는 자녀들을 대가문과 결혼시키기 위해 무척이나 힘쓴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실 크리스티안 9세도 태어날때는 방계왕족으로 태어났지만, 아내의 지위와 여러가지 여건으로 덴마크 국왕이 될수 있었죠. (자세한 내용은 저의 앞쪽 포스트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 : 두번째 덴마크 왕위계승문제 를 참조해주세요)
1862년의 크리스티안9세의 가족들
뒤의 세사람이 왼쪽에서 프레데릭8세,크리스티안9세,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1세입니다.
앞쪽 사람들은 왼쪽에서 다우마, 발데마르 왕자,루이세 왕비,티라,알렉산드라입니다.
이렇게 덴마크 공주이자 미래의 영국 국왕과 러시아 황제의 처제였으며, 그리스 국왕의 여동생인 티라 좋은 혼처를 기대할수 있었습니다.
1871년 티라는 둘째 오빠인 게오르기오스1세를 만나러 그리스로 향합니다. 그리고 이때 그녀는 공식적으로 "아프게"됩니다. 하지만 사실 이때 티라는 아이를 낳으러 그리스로 간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71년 11월 8일 18살의 티라는 딸을 낳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기병 장교였던 빌헬름 프리만 마체르(Marcher)였습니다. 둘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정확히 알려진바는 없지만, 티라가 그리스로 간후 그는 티라의 아버지인 국왕과 면담한 후인 1782년 1월에 자살합니다. 그가 국왕과 만났을때 분위기는 매우 험악했고, 아마도 국왕은 그와 티라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던듯합니다.
1871년의 티라
전 개인적으로 이 덴마크 공주들이 유럽에서 제일 예쁜 자매들..이라고 생각한다죠.
알렉산드라가 제일 예쁘고, 티라가 미모가 제일 딸리긴하지만, 짙은 머리색에 어두운 푸른 눈동자를 가진 참한 여성이었던 티라 역시 매력적이었다고 합니다.
티라의 사생아 딸은 처음에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티라의 사생아 딸에 대한 여러명의 후보가 있었지만, 아마도 덴마크 인이었던 라스무스 율겐센과 그의 부인인 앤 마리 율겐센에게 입양된 케이트 율겐센이 티라의 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케이트라는 이름은 입양된후 새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케이트 율겐센은 1902년 Frode Pløyen-Holstein와 결혼했으며 1964년에 사망했습니다.
티라의 어머니인 루이세 왕비는 여전히 딸을 좋은 혼처로 시집보내길 원했는데, 여러 혼처중에는 할아버지뻘이이었던 네덜란드의 국왕인 빌렘3세도 있었습니다.(물론 티라는 그를 거절했습니다.)
여러 혼처중 티라는 부모와 언니들의 뜻에 따라 하노버의 왕태자였던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합니다. 이 혼담이 성립된 중요한 이유는 하노버 가문이 프로이센에 적대적이었기때문입니다. 프로이센중심의 독일 통일때 하노버는 왕국 지위를 상실했고, 이에 하노버 가문은 앙심을 품었죠. 덴마크 역시 프로이센에 의해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의 대부분을 상실했고 이때문에 프로이센은 물론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제국에도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정치적 이유로 티라는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합니다.
하노버의 마지막 왕태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티라의 남편
잠시 복잡한 족보관계를 따져보면 먼저 그의 아버지인 게오르그 5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입니다. 그래서 그와 티라의 형부인 에드워드7세는 육촌관계입니다.
그의 어머니인 작센-알텐부르크의 마리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와 자매간입니다. 이때문에 티라의 올케인 그리스의 올가 왕비와 그는 사촌간입니다. ^^*
티라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티라는 남편과의 첫 아이를 임신했을때 아이 울음소리를 환각으로 듣기도 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첫번째 아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듯합니다. 하지만 티라의 남편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는 매우 다정한 사람으로 아내를 잘 다독였고, 덕분에 티라는 점점 안정을 되찾았으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여섯아이들과 함께 있는 부부
참고로 티라는 나이들어갈수록 둘째언니인 마리야 황후랑 점점 닮아갑니다.
아들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독일의 빌헬름2세의 고명딸인 빅토리아 루이제와 결혼했습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빅토리아 루이제의 딸이 그리스의 프레데리카왕비고, 프레데리카의 딸이 스페인의 소피아 왕비입니다.)
큰딸인 마리 루이제는 바덴의 막시밀리안과 결혼했습니다. (둘의 아들인 베르톨트는 필립공의 누나인 그리스의 테오도라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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