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딸들 다입니다.
이야기 안한 자녀는 그림 못찾은 앙주공작과 테레제밖에 없네요.
루이 15세와 가족들... 딸 빅투아르, 소피, 루이즈-마리
마담 빅투아르
Victoire de France
(Marie Louise Thérèse Victoire)
( 11 May 1733 – 7 June 1799)
마담 빅투아르는 언니 오빠들과 달리 동생들과 함께 수녀원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마담 빅투아르가 베르사유로 돌아온것은 열다섯살때였습니다. 수녀원에서 돌아온 뒤 마담 빅투아르는 신앙심 깊었던 어머니와 매우 가깝게 지냈으며, 다른 형제 자매들과도 친하게 지냅니다. 엄격한 수녀원에서 성장한 그녀는 아버지가 여러 여자들을 가까이 하는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다른 형제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정부들을 싫어하게 됩니다.
1748년
마담 빅투아르는 1753년 스페인의 페르디난도 6세의 왕비가 중병에 걸리자, 스페인 왕비감으로 고려됩니다. 하지만 페르디난도 6세의 왕비는 살아났고 혼담은 없었던것이 되죠.
오빠와 어머니가 죽자 마담 빅투아르는 다른 자매들 처럼 매우 슬퍼했으며, 특히 어머니가 죽은 뒤에는 아버지의 정부였던 마담 뒤바리에 대해서 더욱더 용서하지 못합니다.
1765년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집왔을때 마담 빅투아르는 언니인 마담 아델라이드와 함께 마담 뒤바리와 마리 앙투아네트간에 싸움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정부를 쫓아낼수는 없었죠.
조카인 루이 16세가 즉위한후 마담 빅투아르는 언니와 함께 베르사유에 머무는것을 허락받았습니다만, 사람들은 곧 국왕의 고모들에 대해서 잊습니다. 왕실은 루이 16세와 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죠. 마담 빅투아르는 언니와 함께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살아갑니다.
1788년
혁명후 마담 빅투아르는 언니인 마담 아델라이드와 함께 프랑스를 떠납니다. 투린과 나폴리를 거쳐 코르푸섬으로 간 마담 빅투아르는 그곳에서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마담 소피
Sophie Philippine Élisabeth Justine de France,
(27 July 1734 – 2 March 1782)
마담 소피 역시 언니인 마담 빅투아르와 동생들인 마담 테레제와 마담 루이즈 마리와 함께 베르사유가 아닌 수녀원에 보내져서 교육받았습니다.
베르사유로 돌아왔을때 그녀는 매우 수줍음 많고 소심하며 못생겼으며 여러가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녀는 특히나 천둥을 두려워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마담 소피는 언니들인 마담 아델라이드나 마담 빅투아르와 달리 정치적인 영향력을 거의 가지지 않았고 흥미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정부들을 싫어했으며, 언니들의 주도하에 아버지의 정부들에 대항하는 일에 동참하고는 했다고 합니다.
1763년
조카가 즉위한후 마담 소피 역시 조용한 삶을 살았으며 혁명이 일어나기전 사망합니다.
소피의 묘는 혁명중 훼손됩니다.
마담 루이즈
Louise Marie de France
(15 July 1737 - 23 December 1787)
이 그림도 베르사유 특별전에 온 그림일겁니다.
흑..날이 갈수록 기억이 점점 안나는..ㅠ.ㅠ
루이 15세의 막내딸인 마담 루이즈는 언니들인 마담 빅투아르, 마담 소피, 마담 테레제와 함께 수녀원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녀는 신앙심이 깊었으며 수녀원에서 교육받는 동안 스스로 수녀가 되길 결심합니다. 그녀는 왕의 딸이었지만, "하나님의 딸"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수녀원에 있었던 1748년 루이 15세가 마담 루이즈를 보니 프린스 찰리 (영 프리텐더,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제임스2세의 손자)와 결혼시키려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담 루이즈는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어떤 사람과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1770년경
1750년 베르사유로 돌아온 마담 루이즈는 20년간 베르사유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1770년 아버지에게 수녀가 되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마담 루이즈는 자신이 수녀가 되는 것이 아버지를 회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마담 루이즈는 조카인 도팽과 오스트리아의 여대공인 마리아 안토니아와의 결혼식을 본후 생 드니의 수녀원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마담 루이즈는 속세의 이름을 버리고 생 오귀스틴의 테레제 수녀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다음해인 1771년 종신서원을 합니다.
생 오귀스틴의 테레제 수녀
마담 루이즈
수녀원에서 마담 루이즈는 다른수녀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길 원했으며, 어린시절 사고를 당해서 무릎이 불편했지만, 도와주는 사람을 쓸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합니다.
수녀가 된 막내딸과 함께 있는 루이 15세
다른 왕족들의 묘 처럼 마담 루이즈의 묘 역시 혁명때 훼손되었는데, 교황 피우스 9세는 1873년 그녀에게 가경자(The Venerable) 칭호를 부여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프랑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이 15세와 가족들....(9)정부 마담 뒤 바리 (0) | 2011.01.09 |
---|---|
루이 15세와 가족들...(8) 정부 마담 드 퐁파두르 (0) | 2011.01.08 |
루이 15세와 가족들...(6) 딸 앙리에트,루이즈, 아델라이드 (0) | 2011.01.06 |
루이 15세와 가족들...(5) 딸 루이즈 엘리자베트 : 파르마 공작부인 (0) | 2011.01.05 |
루이 15세와 가족들...(4)아들 도팽 루이와 부인들 (0) | 2011.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