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루이 15세의 딸들중 살아남아서 성인으로 성장한 딸들은 모두 여섯명입니다. 그중에서 결혼한 사람은 큰딸인 루이즈 엘리자베트 밖에 없었습니다. 루이 15세의 딸들이 결혼하지 않은 이유는 막내딸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신분에 맞는 신랑감을 찾을수 없었을뿐 아니라 화려한 프랑스 궁정을 떠나기 싫어했던것도 원인이 됩니다. 막내딸인 루이즈 마리는 어린시절부터 수녀가 되기로 결심했었기에 예외였다고 합니다.
원래는 딸들을 한꺼번에 다 하거나 적어도 루이즈 엘리자베트와 앙리에트를 같이하려 했는데 (둘이 쌍둥이다보니 같이 하는편이 좋을듯했거든요) 아무래도 루이즈 엘리자베트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야기가 좀더 많더군요. 그래서 결국 루이즈 엘리자베트이야기를 따로 합니다. (.....이 글을 쓰는데 데자뷰현상이 일어나는군요..--;;;어디서 이런 비슷한 글을 적었나 봅니다...쿨럭..)
루이 15세와 가족들... 딸 루이즈 엘리자베트
루이즈 엘리자베트 드 프랑스
마담 엘리자베트
파르마 공작부인
Louise Élisabeth de France
(Marie Louise Élisabeth; 14 August 1727 – 6 December 1759
루이 15세의 첫번째 아이는 쌍둥이로 루이즈 엘리자베트와 앙리에트 입니다. 그중 먼저 태어난 루이즈 엘리자베트는 아버지에게서 "마담 르와얄"이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이 칭호는 주로 국왕의 장녀에게 내리는 호칭으로 국왕의 동생을 "무슈"라고 부르거나 무슈의 부인을 "마담"이라고 부르는 칭호와 비슷한 것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공주 출신으로 잉글랜드 왕비가 되었던 헨리에타 마리아는 이 칭호를 잉글랜드 왕실에 도입했는데 그것이 프린세스 로열 칭호입니다.
루이즈 엘리자베트는 주로 마담 엘리자베트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프랑스 공주들에게는 마담이라는 칭호가 붙었습니다. 미혼이었어도 마담이라는 칭호를 썼습니다.)
마담 엘리자베트는 동생들과 함께 베르사유에서 자랐습니다. 루이 15세가 어린 딸들을 수녀원으로 보낸것은 밑의 아이들만 그랬던것이죠. 마담 엘리자베트는 매우 총명했으며 여러가지를 빨리배우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마담 엘리자베트는 스페인의 인판테 펠리페와 혼담이 오갑니다. 인판테 펠리페는 펠리페 5세의 아들로 아버지 루이 15세의 사촌이었죠. 둘의 결혼은 프랑스와 스페인간의 평화조약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둘이 결혼한후 펠리페의 누이동생인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가 마담 엘리자베트의 동생인 도팽과 결혼하게 됩니다.
1739년 12살의 마담 엘리자베트는 마드리드에서 19살의 남편인 인판테 펠리페와 결혼합니다. 둘의 결혼은 매우 불행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어린나이에 스페인으로 시집온 마담 엘리자베트는 엄격한 스페인 궁정의 예법과 시어머니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궁정의 삶에 힘들어 합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피해 인형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아버지에게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해서 편지를 씁니다.
1740년 인판테 펠리페
14살의 마담 엘리자베트는 첫째아이인 딸을 낳는데 시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이사벨라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사벨라는 후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인 요제프2세와 결혼합니다.
딸 이사벨라와 함께 있는 엘리자베트
엘리자베트의 딸 이사벨라
엘리자베트라는 이름은 스페인식으로 이사벨라가 됩니다.
하지만 딸의 이름은 시어머니인 파르마의 엘리자베트에서 이름을 따온것입니다.
여덟살때 그린 이 그림은 베르사유 특별전에 와 있는 그림입니다.
스페인 궁정에서 힘들었던 생활후 그녀는 파르마의 공작이 되는 남편을 따라 파르마로 갑니다. 마담 엘리자베트의 시어머니는 파르마의 상속녀였는데, 파르마를 상속받는데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때 루이 15세는 사위의 파르마 공국 상속을 지지했고 그는 파르마 공작이 되었죠.
마담 엘리자베트는 파르마로 가는 길에 처음으로 친정에 돌아옵니다. 이곳에서 아버지의 정부였던 마담 드 퐁파두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마담 엘리자베트의 동생들은 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올케들인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나 마리아 요제파와도 매우 잘 지냈고, 특히 마리아 요제파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마담 엘리자베트
파르마에서 마담 엘리자베트는 두 아이를 더 낳습니다. 아들인 페르디난트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언니인 마리아 아말리아와 결혼했습니다. 딸인 루이사 마리아는 후에 스페인의 왕비가 됩니다.
파르마 공작 부부와 자녀들
앉아있는 사람들이 엘리자베트와 펠리페이고 서있는 처녀가 큰딸인 이사벨라입니다.
남자아이는 후계자가 되는 페르디난트이고 여자아이는 스페인의 왕비가 되는 루이사 마리아입니다.
1758년 17살의 이사벨라
이사벨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큰오빠인 요제프 2세와 결혼했습니다.
요제프 2세는 이 아름다운 파르마 공녀를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아내가 죽은후 큰 상심에 빠져서 결혼하기를 거부할정도였습니다. 결국 요제프의 여동생인 마리아 엘리자베트 여대공이 이사벨라와 자신사이의 편지를 보여주면서 이사벨라가 요제프2세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죽은 부인을 잊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요제프 2세는 이 사실에 경악하면서 여성들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더욱더 결혼을 원치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페르디난트와 마리아 아말리아
마리아 아말리아는 팔츠-츠바이브뤽켄의 가난한 공작이었던 카를 아우구스트를 사랑했습니다만, 여제는 부르봉가문과의 결속을 위해 딸을 파르마 공작에게 시집보냅니다. 마리아 아말리아는 언니인 마리아 엘리자베트를 가난한 공작에게 시집보냈던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해줄줄 알았다가 거절당해서 어머니와 사이가 나빠집니다. 게다가 오빠인 요제프2세 마저 마리아 아말리아를 페르디난트와 결혼시키는데 찬성했습니다.
....후에 카를 아우구스트는 비텔스바흐 가문 전체 영지 (팔츠와 바이에른)을 상속받는 상속자가 됩니다. (여제가 좀 아까워 했을듯해요..요제프 2세도 그렇구요...요제프 2세는 바이에른을 탐내기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고야가 그린 카를로스 4세의 가족들
가운데 여성이 스페인 국정을 운영했던 왕비 루이사 마리아입니다.
마담 엘리자베트는 자주 프랑스를 방문했으며 결국 베르사유에서 사망합니다. 그녀는 쌍둥이 여동생인 앙리에트 곁에 묻혔는데, 그녀의 무덤은 프랑스 혁명중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프랑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이 15세와 가족들...(7) 딸 빅투아르, 소피,루이즈 마리 (0) | 2011.01.07 |
---|---|
루이 15세와 가족들...(6) 딸 앙리에트,루이즈, 아델라이드 (0) | 2011.01.06 |
루이 15세와 가족들...(4)아들 도팽 루이와 부인들 (0) | 2011.01.04 |
루이 15세와 가족들...(3) 왕비 마리 레슈친스카 (0) | 2011.01.03 |
루이 15세와 가족들...(2) 약혼녀 : 스페인의 마리아나 빅토리아 (0) | 2011.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