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쓴김에 제가 좋아하는 루이즈 왕비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루이즈는 서른살이 넘어서 구스타프6세 아돌프와 결혼했습니다. 당시로 왕족들 기준으로는 완전 노처녀였죠.
(참고로 루이즈의 언니인 앨리스는 19살이 되기전에 결혼했습니다. 아마 열일곱에 눈이 맞아서 결혼하겠다고 난리였는데, 이때 앨리스는 결혼하기에 약간-0-;;어린정도였습니다.)
구스타프6세 아돌프는 부인 마거릿이 죽은후 재혼해야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의 모토는 "의무가 최우선이다"였으며 이를 성실히 수행했었죠. 당시 스웨덴 궁정에서는 궁정을 이끌어갈만한 여성이 없었는데, 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어머니인 빅토리아 왕비는 아파서 주로 국외에 머물렀고, 왕태자인 구스타프6세 아돌프는 상처했고, 동생인 빌헬름 왕자는 이혼했죠. 왕태자의 숙부인 유셴왕자는 미혼이었고, 구스타프 왕자는 귀천상혼했죠. 결국 궁정을 이끌만한 사람은 왕태자의 숙부인 칼 왕자의 부인인 잉에보리 왕자비밖에 없었습니다만, 칼 왕자와 그 가족들은 궁정에서 떨어진곳에서 살았습니다.
구스타프6세 아돌프가 루이즈에게 청혼했을때, 루이즈는 매우 놀랐다고 합니다. 그녀는 "만나면 악수나 하던 거의 모르던 남자"인 구스타프6세 아돌프가 청혼한것에 당황했고, 소심한 성격이었기에 외국의 왕비가 될수 있는 혼처에 엄청나게 고민합니다. 가족들은 적극 환영했으며 (특히 빅토리아가 대환영이었는데 노처녀로 늙을 딸을 걱정하고 있다가 치울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데다가 -물론 빅토리아는 신경안썼겠지만- 왕비 자리아닙니다..ㅎㅎㅎ) 루이즈에게 결혼하라고 등떠밀었습니다.
어쨌든 결혼해서 둘은 매우 행복했습니다. 제가 최근 스웨덴 텔레비전 사이트를 좀 뒤져서 루이즈 왕비 나오는 영상만 집중적으로 봤는데, 구스타프6세 아돌프가 루이즈를 엄청 챙기더라구요. 그리고 행사에 나오는 루이즈의 표정은 늘 밝았구요. (루이즈는 결혼한후부터 왕비가 수행해야하는 거의 모든일을 대신했습니다.)
구스타프6세 아돌프와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의 결혼
왕태자 시절의 구스타프6세 아돌프
...이집안은 어째 안경 벗으면 인물들이 더 나은겝니까..
마르가레타 왕태자비가 사망한 3년후, 구스타프 아돌프 왕태자는 1889년 태어난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과 결혼한다.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은 원래 바텐베르크 공녀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인 루이스공이 1917년 독일 왕족 칭호를 버리고 성을 마운트배튼으로 바꾸면서 그녀 역시 바텐베르크의 루이즈 공녀가 아니라 루이즈 마운트배튼이 되었다. 이후 루이스는 밀퍼드헤이븐후작이 되었고, 루이즈도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이 되었다. 루이즈의 어머니인 빅토리아는 헤센의 대공녀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였다. 재미난것은 젊은시절 루이즈가 포르투갈의 국왕에게 청혼받았을때 자신은 "홀아비나 국왕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라고 했던 점이다. 10여년후 루이즈는 홀아비이자 국왕이 될 남자와 결혼한다.
1920년대의 루이즈
아직 미모가 좀 남았을때...
..루이즈도 젊을때는 나름 예뻤습니다.
단지 언니 앨리스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이었던대다가, 결정적으로 빅토리아 여왕님 코를 닮는 바람에....-0-;;;;;;;;;
둘의 약혼은 1923년 7월2일 발표되었는데 모두들 깜짝 놀랐다. 많은 이들이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왕태자가 새로운 삶의 동반자를 찾은것에는 매우 기뻐했다.이 결혼은 루이즈에게도 갑작스러운것이었는데, 구스타프 아돌프가 청혼했을때 루이즈는 조카들이 신랑감을 찾으러 다니는데 샤프롱으로 따라다니고 있었다. 조카의 신랑감이 아닌 자신의 남편감을 찾은 루이즈는 무척이나 당황했고, 왕태자의 청혼에 어쩔줄 몰라했다. 루이즈가 홀로 살것이라고 생각했던 루이즈의 가족들은 이 결혼에 대찬성했으며, 특히 어머니 빅토리아는 구스타프 아돌프에게 적극적으로 대쉬하라고 충고하기까지 했다.
구스타프 아돌프와 루이즈
루이즈와 구스타프 아돌프 왕태자의 결혼은 쉽지는 않았는데, 구스타프 아돌프는 아이들에게 새어머니가 생길것이라는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했다. 다큰 위의 아이들에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선명했으며, 특히 고명딸이었던 잉리드에게는 새어머니가 생긴다는것 자체가 이해못할 일이었다. 또 루이즈의 신분도 문제가 되었다. 루이즈가 왕족인지 아니면 단순한 귀족인지는 구스타프 아돌프의 왕위계승권에 중요한 문제였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왕족과 결혼해야 귀천상혼이 되지 않기에 왕족으로 태어나서 왕족 타이틀을 버린 루이즈의 신분은 애매한 것이었다. 결국 영국 국왕이었던 조지5세는 루이즈가 영국 왕실가족의 일원임을 명확히 하는 외교문서 만들어서 루이즈의 신분을 보장했다.
결혼식은 1923년 11월 3일 런던에 있는 성 제임스궁전의 채플로열에서 열렸다. 영국의 국왕이었던 조지5세가 둘의 결혼을 허락했기에 국왕의 명으로 결혼준비가 진행되었다. 채플 로열은 환하게 불이 밝혀졌고, 예배단에는 꽃들로 장식되었다. 이것은 바깥의 11월 중순의 날씨에 비하면 매우 달라보이는 풍경이었다.
신랑은 스웨덴 장군 군복을 입었으며, 그의 베스트맨은 동생인 빌헬름왕자였다.
신부는 흰 인도 비단으로만든 가운을 입었는데, 허리선이 아래쪽으로 간 20년대 스타일의 옷이었다. 루이즈는 화려한 티아라를 썻으며 그 아래로 레이스 베일을 썼고, 긴 트레인을 입었다. 부케는 신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인 은방울꽃으로 만든 커다란 꽃다발이었다. 신부 들러리들은 신부 조카들인 네명의 그리스 공주들이었고, 두명의 화동역시 신부 조카들인 밀포드헤이븐 후작의 아들과 딸이었다. 캔터베리대주교가 결혼을 집전했다.
결혼사진
신혼부부는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갔으며, 12월 11일 스웨덴에 도착했다. 북해를 가로질러 배를 타고 갔을때, 풍랑이 거세서 수많은 하객들은 심한 배멀미를 해야만했다.
주지사가 부부 동반으로 환영행사를 계획했고, 이들은 예테보리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주지사의 공관에서 점심식사가 열렸고, 주교와 어린이 병원을 방문했고, 그후에 콘서트 홀을 방문해서 공연을 감상했다. 공연 감상후 주식 중계소에서 큰 만찬이 열렸다. 시전체가 조명으로 환해졌고, 횃불 행렬이 있었으며, 수많은 꽃이 증정되었고, 환호가 울려퍼졌다. 왕태자 부부는 특별열차편으로 스톡홀름으로 갔다. 스톡홀름 역에서는 더 많은 행사가 준비되었다. 왕태자부부는 마차를 타고 스톡홀름을 통과해서 왕궁의 동쪽문으로 들어갔다. 마차가 지나가는 길에는 등과 깃발로 장식되었다.
국왕부부는 옐로우 룸에서 신혼부부를 맞이했고, 로열 채플에서는 테데움이 울려퍼졌다.다음날 왕태자비는 환영의 의미로 폴라스타 챔버 오더를 받았으며, Hall of State에서 공식 환영행사와 대 연회장에서의 만찬이 있었다.
전통에 따라 12월 13일 오페라하우스에서 갈라 공연이 있었고, 이때 빌헬름 페데트손 베르게르의 음악 공연과 백조의 호수가 공연되었다.
나이든 후의 부부
둘은 나이든 후에도 무척이나 다정한 모습입니다.
국왕부부는 이렇게 경호원없이 스톡홀름의 왕궁 주변을 산책했고, 저렇게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루이즈가 왕비가 된후 (1950년에 왕비가 되었습니다.) 아플때 가끔 언니 앨리스가 루이즈를 찾아갔는데, 스웨덴에서 국왕인 남편에게 잔심부름시키는 동생을 보고 잔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
자료출처
1.스웨덴 왕실 홈페이지 http://www.royalcourt.se/
2.Alice : Princess Andrew of Greece (2001, Hugo Vickers)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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