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스웨덴

베르나도트 장군과 데지레 클라리의 결혼 (칼14세 요한과 데시데리아 왕비)

엘아라 2010. 9. 8. 00:26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요즘 상태가 뭉크가 그린 "절규"랑 비슷한 상태입니다.

참 뭉크가 대단한 작가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느끼는데 , 저 절규라는 그림 하나로 제 상태를 설명할수 있다니 말입니다....-0-;;;

 

어쨌든 상태가 안좋아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하려고 했던것들을 다 작파했습니다.

이럴때는 써놨던 글을 훔쳐다가(...제글을 훔친다고 하니 좀 이상하군요...ㅎㅎㅎ) 올리는것이 묘미 아니겠습니까...ㅎㅎㅎ.

 

원래 스웨덴의 빅토리아 공주 결혼식때 홈페이지에 나와있던 왕실 결혼식글들을 미친듯이 읽었었답니다. 그래서 나온 글이 이 글되겠습니다. 사실 이 글은 왕실 홈페이지에 정보가 많이 없어서 그냥 데지레 전기랑 베르나도트 전기보고 쓴글입니다.

 

....그러고보니 읽다만 전기들이 많군요,데지레 전기도 있고, 크리스티나 여왕전기도 있고...ㅠ.ㅠ

 

 

 

스웨덴의 칼14세 요한 

프랑스의 베르나도트 장군

 

 

데지레 클라리와 베르나도트의 결혼은 다분히 정략결혼이었다. 하지만 동 시대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의 결혼이 행복했다고 여겼다. 특히 나폴레옹가문의 사람들과 가까운 사이였던 노라쥐노(쥐노 장군의 부인)의 책에보면 데지레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에 대한 언급이 묘사되어있으며, 베르나도트가 얼마나 연애에 관심이 없었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베르나도트는 당시 잘생긴 외모로 알려져있었다. 동시대 인물들은 그가 "큰키에 짙은 머리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있는 잘생긴 남자로 묘사한다. 또 그가 군의 선두에 서서 병사들을 이끌고 행진하는 모습은 너무나 근사했다도 이야기한다.이런 그의 외모와 가스코뉴지방 사람 특유의 사람을 사로잡는 언행은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고 특히 살롱의 여성들이 그랬다. 당시 사교계에서 유명한 인물들이었던 마담 드 스탈이나 마담 르카미에는 그에게 열광했고 심지어 그를 가스코뉴지방 출신으로 프랑스 국왕이 된 앙리4세에 비유하고는 했다. (하지만 정작 이 여성들과 베르나도트는 정치적 의견을 나누는것을 더 좋아했는데, 마담 르카미에는 데지레에게 "당신 남편은 나와 단둘이 있을때면, 정치이야기만 하려할까요"라고 할정도였다.)

 그는 데지레와 결혼하기전 이미 결혼을 생각했던적이 있었다. 1796년 코블랜츠에서 겨울 숙영을 하는동안 독일인 은행가의 딸들과 교류를 했다. 그는 이 독일 여성들중 한명과의 결혼을 심각하게 생각했던듯하다. 그는 자신의 부관에게 많은 나이차(10살정도차이났다고 합니다.)와 재산이 없는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이 혼담은 성사되지 않았는데 독일측 자료에 따르면 "아버지인 은행가가 절대 프랑스 장군과 딸을 결혼시키지 않겠다"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792년 36연대 중위 베르나도트

   

데지레 클라리는 마르세유의 부유한 상인의 딸로 베르나도트보다 열네살정도 어렸다. 그녀는 보나파르트 가문과 소녀시절부터 알고 지냈고, 10대에 이미 나폴레옹과 약혼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데지레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그가 그녀를 찬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야심많은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렸고 세상을 잘 모르는 부잣집 아가씨였다. 그녀에게는 정치적 인맥도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과 인맥을 만들려는 의지도 없었다. 정치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사교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몰랐으며, 그렇다고 교육을 많이 받은것도 아니었다. 출세를 갈망하던 나폴레옹은 데지레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1796년 데지레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이때 베르나도트는 열심히 독일에서 퇴각작전중..-0-;;)

 

 

 

데지레를 찬후 잘나간 나폴레옹

1796년 아르콜라 전투

 

베르나도트가 데지레와 결혼할 무렵에도 데지레의 성격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인맥관계는 매우 변해있었고, 이런 변화는 그녀가 "야심많은 남성"에게 중요한 사람이 된다. 데지레 클라리는 보나파르트 가문 사람들이 좋아하는 친척이었다. 특히 언니 쥘리와는 매우 친한 사이였고, 이때문에 형부인 조제프 보나파르트와도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나폴레옹의 어머니인 마담 레티치아는 아들과의 결혼은 깨졌지만, 데지레를 딸처럼 생각했었다. 이런 보나파르트가와의 연줄은 나폴레옹 휘하 장군들에게 큰 매력을 느끼게 했으며 몇몇 장군들이 데지레에게 청혼했고, 이탈리아에서 뒤포장군과는 거의 결혼할뻔했다. (하지만 뒤포는 죽었다. 일설에 따르면 그가 죽은 날이 데지레와 결혼하기로 되어있는 날이었다고 한다.)

 

베르나도트와 데지레가 처음 만난것은 1798년이었다. 베르나도트는 병사들을 데리고 파리에 입성했고 병사들을 이끌고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때 데지레는 친구들과 발코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둘은 서로 눈이 마주쳤다. 이사건이 있은 얼마후 베르나도트는 친구들의 소개로 데지레를 만나게 된다. (..이 장면 읽고..혹시 이거 소설아닌가 하고 책을 다시 봤다는...-0-;;;분명 전기였는데 말입니다.)

나폴레옹의 가족들과 베르나도트는 친구가 되었으며-특히 뤼시앵과 무척 친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데지레의 형부인 조제프는 베르나도트를 모임에 초대했고 처제인 데지레를 소개시켜주었다.  베르나도트는 이 발랄한 어린 처녀에게 빠져 들었다. 물론 그녀의 연줄 역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데지레는 그를 좋아하고 존경했지만 처음에는 그 이상의 감정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녀의 가족들이 베르나도트와 데지레의 결혼에 목을 맸다. 데지레는 그의 청혼에 바로 거절하지 않았고, 그녀가 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후일 스웨덴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1798년 조제프 보나파르트와 이미 친해져있던 베르나도트 장군이 나에게 결혼해달라고 했다. 그는 이미 높은 지위에 있었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 나는 그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다. 나는 그와의 결혼을 바로 거절하지는 않았는데, 사람들이 그가 나폴레옹과 대적할만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는것을 듣고서는 그와 결혼할 결심을 했다."

 

 

카이로에 있던 나폴레옹은 둘의 결혼에 대한 승락과 축하가 담긴 편지를 보냈고, 이편지가 온 직후 결혼식 준비가 시작되었다.

1798년 8월 17일 파리 인근의 소에서 베르나도트와 데지레 클라리는 결혼했다. 이 결혼은 가족모임으로 진행되었고, 종교의식은 생략되었다. 베르나도트 집안 사람 일부는 칼뱅파 였으며 (그가 앙리4세와 같은 지방 출신인것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베르나도트나 그의 동료들은 종교예식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혼후 데지레 클라리

남편이 출정하면 울고, 집에 돌아오면 또 전장으로 가야하는것 때문에 울었다는데...

남편없는 동안에 당시 여성으로는 진짜 특별나게도 경제생활을 영위하느라 바쁘셨댑니다.

(...남편이 맨날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편지 보내면 그냥 무시하셨다고..-0-;;)

 

나폴레옹이 일찍이 알아차렸던것처럼 데지레는 남편의 경력을 위해 힘쓰거나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여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데지레와 나폴레옹과의 관계는 데지레를 매우 중요한 인물로 만들었다. 특히 남편 베르나도트와 나폴레옹 사이가 점점 벌어져갈때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남편을 보호해줬다. 나폴레옹은 자신과 마찰을 빚는 베르나도트를 껄끄럽게 생각했고, 그가 데지레의 남편만 아니었다면 아마 총살형을 집행했을거라는 이야기까지 있다. 나폴레옹의 약점중 하나는 가족에게 약한것이었고, 데지레는 가족이었다. 또 나폴레옹은 데지레와의 약혼을 자신이 깬것에 대해 어느정도 죄책감도 있었을것이다. 나폴레옹과 베르나도트와의 관계가 불편해질수록 데지레는 베르나도트의 마스코트로 남편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데지레는 진짜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자기 사는 이야기를 근처에 사는 언니 쥘리와 형부 조제프에게 다 말했기때문에, 결혼초기에는 베르나도트가 부인과 "즐거운 대화"밖에 안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1.Bernadotte : the first phase 1763-1799

2.A Queen of Napoleon's court : life story of Desiree Bernadotte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