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언젠가 갈수있을지도.

[프랑스] 베르사유

엘아라 2010. 7. 12. 23:3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 이러다가 친구님 유럽 가겠습니다..-0-;;;(곧 떠난다는...=0-;;)

 

뭐 아는것도 없고 찾기도 귀찮고 하니 자꾸 안쓰는군요..

이러다가 나중에 친구님 유럽갔다온후에 친구님 사진을 사용하는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ㅎㅎㅎ

 

프랑스에 가면 빼놓지 않고 가야할곳이 있죠. 바로 베르사유!!

...전 사실 유명한 "베르사유의 장미"를 다 안읽었습니다. (...어릴때 유행했는데, 그때 전 프랑스 혁명에 대한 다른 책을 읽었었다죠.--;;; 그결과 프랑스는 포기...ㅠ.ㅠ 였다는...)

그래서 베르사유나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서 잘 모른다죠. (친구님은 보셨던가....ㅎㅎㅎ)

그래도 프랑스에 대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그 두껍디 두꺼운 마리 앙투아네트 전기군요.

(.....--;;;; 그러고보니 마리 앙투아네트 전기가 마지막이 아니라 베르나토트 전기가 마지막이군요.... --;;;음냐.칼14세 요한은 스웨덴으로 이민갔기때문에 스웨덴 사람 전기라고 우길렵니다.-0-;;;;;;;;; 마리도 원래 오스트리아 여대공인데 프랑스로 시집가서 프랑스 사람인거잖아요..ㅎㅎㅎ)

 

베르사유는 파리에서 파리 외각의 위성도시로, 한때 수도기능을 담당했던 곳입니다. 루이14세때 이곳에 베르사유 궁전이 지어지면서, 이곳이 유명하게 되었다고 하네요..ㅎㅎㅎ

 

베르사유 궁전에 대해서만 쓸려고 하니...도시가 궁전옆에 붙은 상황이긴하지만, 그래도 도시이야기도 좀 해야할듯해서 일단 베르사유 도시부터 봅니다.

 

 

 

 

베르사유

 

 

 

베르사유 시청

여기도 사람사는 동네인데 관청이 있어야겠죠..^^*

(전 사진보고서 무슨 호텔인줄 알았습니다.-0-;;)

 

베르사유 궁전으로 유명한 이 도시의 이름인 베르사유  Versailles 는 어디서 유래했는지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지만, 중세시대때 비옥한 땅을 자주 가리키던 라틴어 단어인  versare,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궁전의 이름으로 베르사유라는 이름으로 유명했지만, 프랑스 대혁명 직후 잠시 Berceau-de-la-Liberté (자유의 요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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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의 인공위성사진

(구글 위성사진)

 

베르사유가 처음으로 프랑스 역사에 등장하는것은 11세기입니다. 파리 인근의 베르사유는 국왕의 직속 영주가 다스리던 영지로, 베르사유의 영주는 국왕의 명을 직접적으로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베르사유는 역사의 중심지는 아니었죠. 이후 중세시대의 성채와 교회가 건립되어 마을이 서서히 발전되었지만, 격동의 14세기를 베르사유 역시 견디지 못합니다. 프랑스를 황폐화시킨 흑사병과 100년 전쟁은 다른곳들처럼 베르사유를 폐허로 만들었죠. (사놓고 안 읽고 있는 책 중에 하나가 이 14세기 프랑스 영주에 대한 전기인데 말입니다.) 백년전쟁이 끝난 15세기 말이 되어서야 베르사유는 다시 마을의 모습을 갖춥니다.

16세기 샤를9세의 재무담당관이 베르사유의 영주가 되면서 마을이 발전하지만, 성 바르톨메오 학살때 살해당합니다. (성 바르톨메오 학살은 나바르의 앙리-후에 앙리4세-와 앙리2세의 딸인 마르그리트의 결혼식날 일어난 신교도 학살이었습니다. 영화 "여왕 마고"-여왕 아니고 왕비인데 말입니다.-의 배경이 바로 이 사건입니다.) 이후 베르사유는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따라 프랑스로 온 신하 가문의 소유가 됩니다.

 

 

베르사유시의 문장

위의 닭은 무슨 상징인지 모르겠으니 패스 (...불사조 아니고 닭 맞겠죠)

아래 백합세개는 프랑스 왕실을 상징 

 

이 베르사유가 프랑스 왕실의 소유가 되기 시작한것은 루이13세때입니다. 루이 13세는 베르사유 인근 숲에서 사냥을 했는데, 이곳 사냥터가 마음에 들어서 숲의 일부를 구매한후, 사냥용 오두막을 건설합니다. 이곳은 후에 Day of Dupes 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유명한 사건이 일어난 곳입니다. 루이13세의 모후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는 아들에게 자신이나 리슐리외 추기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합니다. 이때 루이13세는 이 베르사유의 사냥터로 가버렸고, 모두들 리슐리외 추기경이 몰락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리슐리외 추기경은 이 사냥터에서 국왕의 신임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고, 도리어 국왕의 모후인 마리 드 메디시스가 궁정을 떠났다고 합니다.

 

 

루이13세

앙리4세와 마리 드 메디시스의 아들

루이14세의 아버지로 "삼총사"에 나오는 국왕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왕비는 안 왕비)

안왕비와는 사이가 별로였는데, 숙적인 스페인 합스부르크가 출신인점도 있었을듯합니다.

결혼초기에 안왕비는 유산을 많이 했으며  한동안 애가 없었습니다. 이때문에 루이14세가 태어나서 자기 자식인지 약간 의심했던 모양입니다. 둘째 아들인 필리프(오를레앙공작)가 태어나자 그제서야 의심을 풀었고,왕위계승자인 루이가 태어났을때보다 더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베르사유가 역사에 이름을 영원히 남기게 만드는 루이14세가 즉위합니다. 루이 14세는 파리를 떠나 외각지인 베르사유에 대규모 궁전을 건설하고 궁정을 그곳으로 이관해서 자신이 권력의 중심이 되도록 합니다. 이때문에 베르사유는 왕실의 궁전이 있는 임시 수도가 되었고, 인구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베르사유의 성당

이름이 무슨 노트르담이었는데...아하하.. 

 

루이14세가 죽고 루이15세(루이14세의 증손자)의 섭정이었던 오를레앙 공작은 궁정을 다시 파리로 옮겨갔으며, 이때문에 파리가 다시 수도의 기능을 합니다. 이때문에 베르사유는 좀 쇠퇴합니다.

하지만 루이15세가 성인이 되면서, 그는 다시 궁정을 베르사유로 옮겼고, 드디어 베르사유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의 중심이 됩니다.

베르사유의 인구 변화는 베르사유의 지위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 예입니다.백년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인구는 100여명이었고, 샤를9세때는 500명 정도였으며, 루이 13세때는 1000명 정도였습니다. 이후 루이14세가 죽을때는 인구가 30000명가량됐으며,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루이16세때는 인구가 무려 600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1789년의 베르사유

(...프랑스 대혁명이 1789년 아니던가...음냐.) 

 

 

화려했던 베르사유는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면서 사그라 들게 됩니다. 혁명정부는 수도를 다시 파리로 옮겼고, 화려했던 베르사유궁전은 쓸쓸하게 버려지게 됩니다. 이후,를레앙 가문 출신이던 루이 필리프가 베르사유전체를 보전하게 했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베르사유의 쇠퇴를 가져오게 되었고, 도시는 쇠락의 길에 들어섭니다.

 

19세기 후반에 베르사유는 역사에 재 등장합니다. 독일의 황제가 되는 빌헬름1세가 베르사유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즉위한것입니다. (결국 이것도 감정싸움--;;;;) 이 사건이 일어난해 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나자(파리코뮌) 정부는 임시로 수도기능을 베르사유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왕정복고를 심각하게 고민하던때, 베르사유가 다시 수도로 부활할가능성마저 있었습니다만, 결국 프랑스는 공화국이 되었고, 수도는 파리가 됩니다.

 

 

빌헬름1세의 즉위

...왜 프랑스에서 즉위했나 했더니.....음냐

가운데 단상위에 올라서있는 멋진 수염의 대머리 할아버지가 빌헬름1세입니다.

(전 손자인 빌헬름2세 수염은 별로던데, 빌헬름1세 수염은 마음에 들더라구요..ㅎㅎㅎ)

그 왼쪽에 옆모습으로 폼잡고 있는 사람은 아들인 프리드리히3세 같습니다.

단 아래 흰옷을 입은 사람은 바로 비스마르크입니다.

(저 그림에 대해서 읽은 적이 있는데, 제국의 최대 공로자인 비스마르크를 특별히 흰색옷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해서 두드러지게 한대나 어쩐대나..그랬던것같습니다.)

 

 

이후 1차대전까지 베르사유도 다른 프랑스 도시들처럼 발전합니다. 그리고 1차대전때 수많은 조약들이 이곳에서 체결되면서 다시한번 역사에 나타나죠. 이후 베르사유는 수도 파리가 성장하면서, 그 외각지역들중 하나로 성장했고, 특히나 관광수입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때문에 파리 서쪽 외각의 중심으로 부상합니다.

 

베르사유는 거대한 궁전을 중심으로 그 인근에 마을이 형성된 형태이기에, 공장등이 있긴 하지만 베르사유의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아닙니다. 베르사유는 행정도시였으며, 관광산업이 주된 사업이며, 베르사유는 군사도시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베르사유에는 여러 자매도시들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경주와 자매도시라고 합니다.

베르사유의 다른 자매도시들은 타이페이(대만),캔버라(호주),푸쉬킨(러시아),나라(일본),기센(독일)입니다.

 

 

베르사유의 시장(market)

 

 

 베르사유의 성 루이 대성당

 

ㅎㅎㅎ 이건 베르사유궁전에 들어가야하는데.....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랑했다는 시골풍의 빌라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