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앨리스 왕자비책의 감동을 마무리짓는 의미로 앨리스라는 이름의 공주님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앨리스라는 이름은 프랑스어에서 출발한이름으로 여러곳에서 앨리스,알리시아,알릭스 등으로 발음된다고 합니다. 특히 영국(앨리스)와 이탈리아(알리치아인가 알리시아인가)는 매우 인기있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앨리스라는 이름으로 가장 유명한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아니겠습니까 아하하..하지만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딸인 앨리스 공주(헤센의 대공비)의 이름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이자 멋쟁이였던 앨리스 루즈벨트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루즈벨트 대통령은 테디베어의 그 루즈벨트 대통령이십니다.^^*)
첫번째 앨리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딸입니다.
영국의 앨리스 공주
헤센의 대공비
The Princess Alice
The Grand Duchess of Hesse
(Alice Maud Mary; 25 April 1843 – 14 December 1878)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딸이 태어났을때, 여왕은 자신이 존경하는 정치가이자 수상인 멜버른 경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이름인 앨리스라는 이름으로 딸의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그녀는 언니인 빅토리아의 재능에 가려서 많이 빛을 못봤다고 합니다. 그때문에 오빠인 버티와 동질감을 느껴서 무척이나 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니 빅토리아와도 역시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
언니가 시집가자. 큰딸을 가장 사랑했던 알버트공에게 언니 대신의 자리를 채워야했는데 그일이 쉽지많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앨리스는 아버지와 취미나 관심사가 가장 비슷한 딸이었다고 합니다.
외할머니가 사망했을때 그녀를 간호했던 앨리스는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과 더욱더 가까워지게 되죠. 그리고 아버지 알버트공이 사망했을때 남편이 죽어간다는 사실에 슬픔에 빠져있던 여왕을 보살피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간호한것도 앨리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죽은후 성에 칩거한 여왕과 내각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한 사람도 앨리스였구요. 이런 일들을 통해서 여왕은 앨리스를 많이 의지했다고 합니다.
앨리스는 잘생긴 헤센 대공가의 후계자인 루드비히와 결혼합니다. 여왕은 남편을 잃은뒤 자녀들을 떠나보내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앨리스의 결혼은 사랑했던 남편이 이미 결정한 일이었죠.
헤센대공가가 있는 독일의 다름슈타트로 온 앨리스는 그곳에서 자신의 집을 짓습니다. 아버지 알버트공이 독일 왕족인것을 늘 자랑스러워했듯이 앨리스 역시 자신이 영국 공주인것을 잊지 않았죠. 그리고 자신만의 집을 모두 영국식으로 꾸몄고, 아이들을 영국식으로 키웠다고 합니다.
앨리스와 후에 헤센의 대공이 되는 루드비히 사이에서는 모두 일곱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빅토리아,엘리자베트,이레네,에른스트 루드비히,프리드리히,알릭스,메이였죠.
앨리스는 영국에서 그랬던것처럼 독일에서도 늘 자선사업을 했으며, 특히나 의료사업에 대해서 매우 전념했습니다. 그녀는 셋째아이인 이레네를 가졌을때, 만삭의 몸으로 전쟁중 부상을 당한 헤센의 병사들을 간호했다고합니다. (당시 헤센은 프로이센과 전쟁을 했습니다. 독일 통일 당시 헤센대공가는 오스트리아를 지지했었습니다.) 헤센 사람들은 이런 대공비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합니다.
앨리스와 루드비히사이는 '마치 평행선같아서 절대 만나는일이 없다'라고 할정도로 달랐다고 합니다. 둘은 서로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 다 아이들을 끔찍하게 사랑했고, 아이들이 둘을 연결하는 고리가 됩니다.
앨리스는 아들 프리드리히가 2살이 되기전에 혈우병으로 사망합니다. 1층 앨리스의 침실에서 놀다가 창문에서 떨어져서 프리드리히는 사망했고, 그 모습을 지켜봤던 앨리스는 큰 충격에 빠졌고, 자신이 한동안 교회를 등한시 했기에 벌받은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앨리스의 남편이 헤센의 대공이 된후 앨리스는 더욱더 많은 자선사업을 했고, 무척이나 바빴다고 합니다. 그리고 1878년 헤센 대공가에 디프테리아가 돕니다. 앨리스는 딸 엘라를 제외하고 모든 가족들이 디프테리아에 걸리자 혼자 간호하기 시작합니다. 남편마저 아픈와중에 막내딸인 메이를 잃죠. 앨리스는 전염의 위험을 알면서도 아이들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키스를 했다고 합니다. 결국 앨리스역시 감염되었고, 막내딸을 잃은 그녀는 살 힘을 잃었죠. 1878년 아버지 알버트공의 기일에 그녀 역시 사망합니다.
헤센 대공가의 가족들
1865년 앨리스공주의 이름을 따서 프린세스 앨리스라는 이름이 붙은 한 증기선이 있었습니다. 우연의 일치로 그 배는 앨리스 대공비가 죽기 두달전 런던에서 침몰했고 타고있던 승객의 대부분이 사망했는데 그 수가 무려 640여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이탈리아쪽 공주님이십니다. 문제는 제가 이탈리아쪽도 잘 모른다는...프랑스보다 더모르는곳이 이탈리아라죠.....ㅠ.ㅠ
부르봉-파르마의 알리치아(알리시아인가..--;;)
Princess Alice of Bourbon-Parma
(Italian: Alicia Maria Carolina Ferdinanda Rachael Giovanna Filomena, Principessa di Parma)
( December 27, 1849 - January 16, 1935 )
파르마 공작인 카를로3세와 그의 부인인 프랑스의 루이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의 루이즈는 프랑스의 샤를 10세의 손녀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투스카니의 대공인 페르디난드4세와 결혼했습니다. (부르봉-파르마에다가 투스카니...--;;;진짜 모르는 파트입니다..크헉..게다가 위키에 사진도 없습니다..ㅠ.ㅠ)
세번째는 첫번째 앨리스 공주의 따님이 되시는 분이시죠. 후에 유명한 알렉산드라 황후가 되는 알릭스입니다.
헤센의 알릭스 대공녀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
Alix of Hesse and by Rhine
Alexandra Feodorovna Romanova (Russian: Императрица Александра Фёдоровна Романова)
(6 June 1872 – 17 July 1918)
유명한 분이시고 많이 다뤘던 분이시죠.^^* 그래서 간단히 할까합니다
알릭스의 세례명을 보면 빅토리아 여왕의 딸들 이름 전체가 들어갑니다. 그중에서 어머니 앨리스의 이름을 따서 알릭스라고 불렸는데, 앨리스 대공비는 자신의 이름이 독일식으로 '알리체'라고 불리는것이 싫어서 딸의 이름을 좀더 앨리스에 가깝게 불려지도록 알릭스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여왕의 손녀인 헤센의 알릭스는 어릴때 어머니 앨리스 대공비를 잃었습니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잃은 헤센 대공가의 아이들에 대해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아이들처럼 보살펴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왕은 영국에 있었기에 실제로 어머니 역할을 한 사람은 알릭스의 큰언니인 빅토리아였죠.
알릭스는 어머니를 잃은후 수줍고 예민한 아이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알릭스의 언니 엘라가 러시아의 세르게이 대공과 결혼하면서 알릭스도 러시아 황실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태자인 니콜라이를 만나게 되죠.
알릭스와 니콜라이의 결혼에 대해서는 러시아황실에서는 반대했다고 합니다. 알릭스가 수줍음이 너무 많고, 엄격한 도덕율을 적용하던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사람이었던 알릭스가 러시아 궁정에 맞지 않는다는것이었죠. 또 알릭스 가계의 혈우병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알릭스 측에서도 황태자와 결혼한다면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해야했기에 거부감이 있었죠. 또 알릭스에게 어머니같던 빅토리아 여왕은 사랑하는 손녀가 러시아로 시집가는데 반대합니다.(대신 큰손자인 에디와 결혼하길 바라죠.)
하지만 결국 알릭스는 사랑하는 니콜라이를 택했고, 그녀는 러시아의 황후가 됩니다.
뭐 뒷이야기는 더욱더 유명한이야기이니.....생략합니다.
1990년대 알릭스와 니콜라이 그리고 그 가족들은 황실 묘지에 안장되었고, 최근에는 못찾았던 알렉세이와 마리야 여대공의 유해까지 발견되어 이제 진정으로 온 황실가족들이 다 모이게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 상중일때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과 함께
헤센대공가의 네 자매들
네번째는 첫번째 앨리스 공주의 조카되시겠습니다. 역시 첫번째 앨리스 공주의 이름에서 이름을 따온 알바니의 앨리스공주입니다.
알바니의 앨리스 공주
애쓰론 백작부인
Princess Alice, Countess of Athlone
(Alice Mary Victoria Augusta Pauline; née Princess Alice of Albany)
( 25 February 1883 – 3 January 1981)
알바니의 앨리스 공주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로 여왕의 혈우병 환자였던 아들 레오폴드의 딸이었습니다. 앨리스의 아버지 레오폴드는 앨리스의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사망했고, 동생이자 후에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되는 칼 에두와르드는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린시절 빅토리아 여왕의 궁정에서 떨어져 어머니와 동생과 외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가쪽 친척들과 친하게 지냈고 특히 이모의 가족인 네덜란드 왕가와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앨리스보다 늘 가까이 살았더 (그리고 더 예뻤던)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를 더 많이 챙겨줬다고 합니다. 조지5세와 메리 왕비의 결혼식때 들러리들이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었는데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만 제외하고 모두들 손녀들이었죠. 처음에 여왕이 앨리스를 언급했을때 역시 손녀인 알바니의 앨리스인줄 알고 급히오라는 전보를 보냈는데, 알고보니 증손녀인 바텐베르크의 앨리스였다고 합니다.--;;(여왕님 아무리 예쁜애들을 사랑하셔도 그렇지...)
알바니의 앨리스는 메리 왕비의 동생인 테크의 알렉산더공과 결혼합니다. 그녀는 확실한 보인자였기에 아이가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높았고, 실제로 두 아들 모두 혈우병환자였습니다. 유일하게 성인으로 사람은 딸인 메이였죠.
1917년 왕가의 성을 바꿀때, 테크 공작가는 외가쪽 이름인 캠브리지로 성을 바꾸었고, 앨리스의 남편은 애쓰론 백작이 됩니다. 앨리스는 영국 공주로 태어났기에 그냥 princess칭호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애쓰론 백작은 영국육군으로 복무했으며,캐나다 총독을 역임하는등의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앨리스 역시 남편을 따라 세계 여러곳을 다녔고, 전쟁중에는 왕실가족의 일원으로 전쟁지원의무를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2차대전때 동생인 칼 에두와르드가 전범으로 체포되자, 그를 구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올케와 함께 있는 앨리스 공주
왼쪽에 앉아있는 사람이 앨리스이고 안고있는 아이는 딸인 메이,
서있는 여성은 올케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부인 빅토리아 아델하이트 아이는 뉘신지..--;;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어머니인 알바니 공작부인 헬레나
다섯번째는 첫번째 앨리스 공주의 손녀되시겠습니다.^^* 바로 바텐베르크의 앨리스입니다. 빅토리아 여왕께서는 손녀인 네번째 앨리스보다 증손녀인 이 다섯번째 앨리스를 더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비
Princess Alice of Battenberg,
Princess Andrew of Greece and Denmark
(Victoria Alice Elizabeth Julia Marie; 25 February 1885 – 5 December 1969)
이분에 대해서도 앞쪽에 글을 열심히 써놓은것이 있답니다. 그것을 참조해주세요.^^*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인 헤센의 빅토리아와 베텐베르크의 루드비히공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증손녀가 윈저성에서 태어나길바랬고, 손녀인 빅토리아는 할머니의 바램대로 윈저성에서 첫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앨리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사랑받는 증손녀가 되죠. 하지만 그녀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선천적인것이었기에 평생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입술읽는것으로 영어,독일어,프랑스어,그리스어를 했고, 말도 명확하게 했기에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녀가 청각장애자라는것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카중 한명은 숙모가 있을때는 언제나 입조심해야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멀리 복도끝에서도 무슨소리를 하는지 봤다고 하면서요.)
부모가 모두 빅토리아 여왕과 에드워드7세와 가까운 사이였기에, 어린시절의 앨리스는 매우 평온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8살이 되기전 '그리스의 신과 같이'잘생인 안드레아스 왕자를 만나 결혼하죠.
그 이후 그리스에서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에 충실했습니다.(저에게 감동을 줄정도로요..아하하..)
어머니 아버지 동생 루이즈와함께
진짜로 예쁘죠.
어린시절부터 이미 예뻤는데
어머니의 이모인 빅키는 앨리스에게 '이대로 자란다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중 한명이 될것이다.'라고 이야기했고 에드워드7세는 '이애에게는 어느 왕위계승자에게도 모자라지 않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특히나 저 드 라즐로의 그림는 실물 사진이랑 거의 비슷하답니다.
(맨날 사기라고 외쳤었는데...이런 느낌이 있더라구요..미의 평균이라고 할까..작가가 그릴수 있는 미의 한계를 느끼게 해준다죠. ㅎㅎㅎ)
버클루공작의 딸이었던 레이디 앨리스는 후에 조지5세의 셋째아들이자 글로스터 공작인 헨리와 결혼합니다. 그녀는 그냥 글로스터 공작부인이라고 불렸지만, 숙모를 좋아했던 여왕님은 숙모에게 왕자비(Princess)칭호를 쓰는것을 허용하죠.^^*
앨리스 왕자비, 글로스터 공작부인
레이디 앨리스 몬태규-더글라스-스콧, 버클루 공작의 딸
Princess Alice, Duchess of Gloucester
(born The Lady Alice Christabel Montagu-Douglas-Scott; 25 December 1901 – 29 October 2004)
레이디 앨리스는 버클루와 퀸즈베리의 공작인 존과 그의 부인인 레이디 마거릿의 셋째딸로 태어났습니다. 버클루 공작은 찰스2세의 사생아였던 제임스 스콧의 후손의 직계후손이었죠. 버클루 공작가문은 비록 적자는 아니었지만 왕가의 후손인데다가 매우 부유했었고 또 왕실과도 인연이 있었죠. 레이디 앨리스의 할머니인 5대 버클루 공작부인인 레이디 루이즈가 빅토리아 여왕의 옷과 보석담당 시녀장으로 일을 했었습니다.
레이디 앨리스는 어린시절 가문의 시골영지에 머무는것을 좋아했으며, 야외스포츠를 즐겼다고 합니다.자라나서는 아프리카와 인도등 세계 여러곳을 여행했다고 합니다. 특히 케냐를 너무나 사랑해서, 숙부가족의 농장에 자주 갔으며, 심지어 숙부가 자리를 비웠을때는 잠시 농장을 경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935년 조지5세의 셋째아들인 글로스터 공작과 결혼하면서 레이디 앨리스는 글로스터 공작부인이 됩니다. 그녀는 매우 상냥한 사람으로 왕실의 의무에 충실했다고합니다. 글로스터 공작은 군인으로 알려져있었고, 다른일에는 별관심이 없었던 인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형인 조지6세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왕실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에서 제대를 했다고 합니다.
2차대전동안 글로스터 공작부인은 왕실 가족으로써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으며, 영국 공군의 명예 장교가 되었고, 적십자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44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총독이 된 남편을 따라 오스트레일리아에 살기도 했죠.
글로스터 공작이 사망한후, 엘리자베스 여왕은 숙모인 글로스터 공작부인에게 HRH Princess Alice, Duchess of Gloucester 라는 칭호를 쓰도록 허용합니다. 앨리스는 Princess로 태어난것이 아니었지만, 여왕은 숙모를 위해 특별히 이 칭호를 허용한것이었습니다.
앨리스 왕자비는 남편이 죽은후 노년을 켄징턴궁에서 지내면서 조용히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앨리스는 2004년 103번째 생일을 두달정도 남겨두고 사망합니다.
글로스터 공작 부부의 얼굴이 들어간 우표
아하하..이분역시 이탈리아쪽이시군요..전 잘 모른답니다..앞쪽 알리시아의 종조카되시겠습니다. (오빠의 손녀)
부르봉-파르마의 알리시아
Princess Alicia Maria Teresa Francesca Luisa Pia Anna Valeria of Bourbon-Parma
(born 13 November 1917 in Vienna, Austria)
남편인 인판테 알폰소와 함께
파르마 공작인 엘라이스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나 여대공의 딸로 태어났습니다.(마리아 안나 여대공은 합스부르크-테센 가문 출신이라는데..하여튼 그쪽도 모릅니다.ㅠ.ㅠ)
그녀는 Duke of Calabria 인 인판테 알폰소와 결혼했습니다. 인판테 알폰소는 부르봉 양 시칠리 가문의 수장으로 부르봉- 양 시칠리의 카를로와 스페인의 인판타 메르세데스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인판타 메르세데스는 스페인의 알폰소 12세의 딸로 알폰소 13세의 누나입니다.(...ㅠ.ㅠ 드디어 아는 이름 나왔습니다..알폰소 13세..ㅠ.ㅠ)
더하기 한명
앨리스 루즈벨트
Alice Lee Roosevelt Longworth (February 12, 1884 – February 20, 1980)
Princess Alice라는 제목의 전기가 있습니다.무척이나 아름답고 영향력이 큰 여성이셨던듯합니다.
이 앨리스는 미국의 대통령인 테오도어 루즈벨트의 딸입니다.(그 2차대전때 대통령이 아니라 테디베어이야기의 그 대통령이십니다. 솔직히 제 생각으로는 테디베어의 유래이야기는 좀 많이 잔인하다고 생각하거든요.--;;아니 곰을 잡지 말던가.... 큰곰은 되고 작은곰은 안된다는 법이 어디있냐구요.....테디베어박물관에가서 저게 뭐야..를 외쳤었다죠..쿨럭..)
미국에서 앨리스라는 이름이 유명한것은 이분때문이라고 합니다.
테도도어 루즈벨트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앨리스의 딸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매우 아름다웠다고 하고 딸인 앨리스 역시 그 아름다움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그녀의아버지는 그녀의 어머니가 죽자 너무나 상심한 나머지 절대 아내의 이름을 입밖으로 내려고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어린시절 앨리스는 Lee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여의었던 앨리스는 새어머니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새어머니는 아름다웠던 남편의 첫번째 아내를 질투했다고 합니다.그리고 그녀를 닮은 앨리스에게도 차갑게 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앨리스가 다쳐서 걸을수 없을지도 모르게 되었을때 헌신적으로 그녀를 간호해서 다시 걸을수 있게 만든것은 새어머니라고 합니다.^^*
아버지와 떨어져지냈고, 새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그녀는 언제나 아버지의 주목을 받고 싶어했고,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자, 여러가지 사회적 금기를 깨면서 아버지의 주목을 받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활발한 활동도 했구요. 그러다가 일본과 중국을 방문하면서 그녀의 여러 행동들은 신문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외교정책에 도움이 되기까지 합니다. 그녀는 백악관에서 주목받는 여성으로 살아갔다고 합니다.^^*
(내용이 긴데 읽기 싫군요...ㅠ.ㅠ)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 영국왕실 공식 홈페이지 (http://www.royal.gov.uk/)
그림출처:위키미디어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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