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공주님 이야기를 찾다보면 가장 쉽게 접할수 있는 이야기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빅토리아라는 이름의 공주님을 한번 찾아봤답니다.
그런데 의외로 빅토리아라는 이름이 그다지 쓰이지 않던 이름이었다고 하네요. 빅토리아 여왕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진짜 쓴 사람이 많이 없었고, 여왕님 후손들이 그나마 많이 썼다더군요.
빅토리아 여왕 이전이나 여왕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빅토리아라는 이름의 공주님은 루이14세의 며느리인 도피느 빅투아르나 도피느의 증손녀이자 루이15세의딸인 마담 빅투아르 스웨덴의 빅토리아 왕비정도밖에 없더라구요.
빅토리아 여왕이 태어났을때, 부모인 켄트공작 부부는 딸의 이름을 샬럿이나 엘리자베스같은 왕실과 관계있는 이름으로 하고 싶어했다고 합니다만 당시 섭정공이었던 프린스오브 웨일즈(후에 조지4세)의 훼방으로 그냥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라고 지었다고 합니다.(정확히는 알렉산드리네 빅토리아로 알렉산드리네는 대부중 한명이었던 러시아의 짜르 알렉산드르1세의 이름을 딴것이라고합니다만, 여왕은 평생 저이름은 쓰지 않고 오직 빅토리아라는 이름만 사용했다고 합니다.) 또 빅토리아의 왕위계승이 확고해지자 백부인 윌리엄4세는 빅토리아에게 이름을 엘리자베트나 샤를로트등 여왕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바꾸도록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현재 살아있는 Princess Victoria
1.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공녀(Princess Victoria Marina Cecilie of Prussia) (1952-)
이 빅토리아는 독일의 황태자였던 빌헤름(독일의 빌헤름2세의 아들)의 손녀입니다. 아버지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이며 어머니는 2대 이비 백작의 딸인 레이디 브리짓 캐서린 레이첼 기네스입니다.
2. 스웨덴의 제1왕위계승자 빅토리아 공주 (Victoria, Crown Princess of Sweden) (1977-)
현 스웨덴 국왕인 칼16세 구스타프와 그의 왕비인 실비아 왕비의 큰딸입니다. 동생 칼 필립왕자가 태어났을때 동생이 잠시 제1왕위계승자가 되었지만, 후에 왕위계승법을 바꿔서 첫번째 자녀가 무조건 왕위를 계승하는걸로 바꾸었고, 이에 빅토리아 공주가 제1왕위계승자가 되었죠. 언젠가 빅토리아 여왕님!!이되실분이시죠.^^*
Crown Princess Victoria of Sweden
This photograph was produced by Agência Brasil, a public Brazilian news agency
이 사진은 브라질의 뉴스 회사인 Agencia Brasil에서 제공한것입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ㅠ.ㅠ 빅토리아 공주님 더 예쁜 사진도 많은데 말입니다.
3.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공녀 (Victoria Luise Prinzessin von Preußen) (1982-)
이빅토리아는 호엔촐레른가의 수장인 루드비히 페르디난트의 손녀입니다. 루드비히 페르디난트는 황태자 빌헤름의 둘째아들입니다. 아버지는 프리드리히 빌헤름이고 어머니는 에렌가르트 폰 레덴입니다. 둘은 귀천상혼입니다.
...귀천상혼이라 계승권을 박탈당했다는 이야기를 읽긴했는데, princess칭호는 있나보군요.
이미 고인이 된 princess Victoria
1. 도피느 빅투아르 (Dauphine Victoire of France)(1660-1690) : 바이에른의 마리 안 크리스틴
루이 14세의 장남인 도팽 루이의 부인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바이에른의 마리 안 크리스틴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바이에른의 선제후인 페르디난트 마리아이고 어머니는 사보이의 아델라이데 헨리에테입니다. 프랑스의 루이15세의 할머니이자,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5세의 어머니가 됩니다.
(루이14세는 아들 손자가 죽은후 증손자인 루이15세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0-;;;)
도피느 빅투아르
바이에른의 마리 안 크리스틴 빅토리아
2. 마담 빅투아르 (Princess Victoire of France) (May 11, 1733 - June 7, 1799)
루이15세의 미혼이었던 딸들중 하나입니다. 루이 15세는 딸들을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하죠. 루이 15세의 자녀들은 어머니와 무척이나 가까웠다고 합니다. 때문에 아버지의 정부들은 마담 드 퐁파두르나 마담 뒤 바리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이었다고 합니다. 잘 알려진 마리 앙투와네트와 마담 뒤 바리의 불화를 부채질한 고모들중 한명이었죠. 한때 포르투갈의 왕비가 위독하자, 포르투갈의 다음 왕비로 거론되었으나, 왕비는 회복되었고, 결혼이야기는 없었던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국왕의 딸들이 시집가기에는 마땅한 혼처가 잘 없었고, 공주들도 자신의 특권을 버리길 원치 않아서 미혼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후에 프랑스 혁명후에도 살아남은 마담 빅투아르는 그리스의 코르푸에서 사망했습니다.
마담 빅투아르
루이15세의 딸, 도피느 빅투아르의 증손녀
3. 작센-코부르크- 잘펠트의 빅토리아 (Victoria of Saxe-Coburg-Saalfeld ) (1786-1861) :라이닝겐의 공비였고 후에 켄트 공작부인 빅토리아
빅토리아 여왕의 어머니 되시죠. 원래 빅토리아 공녀는 2대 라이닝겐 공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3대 라이닝겐공이 되는 카를과 후에 호엔로에-랑겐부르크 공비가 되는 페오도라를 낳았죠. 두아이를 낳은후 과부가된 그녀는 영국의 조지3세의 넷째아들인 켄트공작 에드워드와 재혼합니다. 그리고 딸 빅토리아를 낳죠. 하지만 빅토리아가 태어난지 얼마되지않아 켄트공작은 사망했고, 켄트공작부인은 왕위계승자가 될지도 모르는 딸 빅토리아를 위해 말도 통하지 않고, 남편도 없는 영국에 남았다고 합니다. 공작부인은 딸을 과보호해서 키웠고, 공작부인의 비서였던 존 콘로이는 친구 하나없는 켄트공작부인이 의지할수 있는 조언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존 콘로이는 켄트공작부인이 섭정이 되거나, 후에 여왕이될 빅토리아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조언을 했고 자신도 그 일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과보호는 어린 빅토리아에게 도리어 나쁜영향을끼쳤고, 어머니 켄트공작부인과의 사이는 극한으로 치달았다고 합니다. 여왕은 즉위후 어머니와 될수있는대로 멀리 떨어져지내려고 했고(그래봤자 한집에 살았습니다.--;;;) 어머니보다는 백모인 윌리엄4세의 왕비인 아델라이드 왕비를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혼후 알버트공은 고모이자 장모인 켄트공작부인과 여왕을 화해시킬려고 노력했고, 남편 알버트공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결국 어머니와 화해를 했다고 합니다. 알버트공은 아델라이드 왕비와 켄트공작부인 여왕이 서로 잘지내길 바랬고, 모두들 그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왕이 진정으로 어머니 켄트공작부인에 대해 이해한것은 어머니의 죽음뒤 어머니 켄트공작부인이 여왕의 어린시절물건을 소중히 간직한것을 보고난후였다고 하죠. (..........그런데 여왕님 전기를 읽다가보면 진짜 어릴때랑 통치초기 켄트공작부인이 너무 하시더라구요. 특히 통치초기 스캔들이 일어났을때 딸인 여왕님편보다는 반대쪽에서 스캔들을 부채질하는듯한 인상이....ㅠ.ㅠ 켄트공작부인도 여왕님께 섭섭하셨던것은 같아요...)
켄트 공작부인 빅토리아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빈터할터의 그림입니다.
4. 작센-코부르크-코하리의 빅토리아 (Victoria of Saxe-Coburg-Kohary ; February, 1822, - December, 1867) :느무르 공작부인 빅투아르
작센-코부르크-코하리 가문은 빅토리아 여왕의 외삼촌이었던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페르디난트가 매우 부유했던 코하리 가문의 상속녀와 결혼하면서 생긴 분가입니다. 작센-코부르크-코하리라고도 하고 그냥 원래 가문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이라고도 합니다. 이 빅토리아공녀는 페르디난트의 딸로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입니다. 후에 프랑스의 느무르 공작부인이 됩니다. (느무르 공작은 오를레앙계 프랑스 국왕인 루이 필리프와 그의 부인인 양시칠리의 마리 아멜리의 아들입니다.) 빅토리아의 오빠중 페르디난트는 포르투갈의 여왕인 마리아2세의 남편이 되죠. 그리고 아우구스트는 빅토리아의 시누이인 프랑스의 클레망틴 공주와 결혼해서 둘의 아들이 불가리아의 왕으로 선출됩니다. 이 빅토리아의 둘째아들인 알랑송 공작인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트의 동생인 조피와 결혼했죠.(조피는 바이에른의 루드비히2세와 약혼했다가 파혼했습니다.)
함께있는 두 빅토리아
멀리있는쪽이 느무르 공작부인이고 가까이 있는 쪽이 빅토리아 여왕입니다만...
여왕님코는 느무르 공작부인이랑 똑같이 생겼습니다.
....이그림도 제가 늘 주장하는 "사기"그림중 하나죠.--;;;;
5. 헤센의 빅토리아 (Princess Victoria of Hesse and the Rhine ;1863-1950) 바텐베르크 공비
드디어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들이 나오기 시작하는군요. 헤센의 빅토리아는 헤센의 대공 루드비히4세와 그의 부인인 앨리스 대공비의 큰딸입니다. 앨리스 대공비는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딸이죠. 헤센의 빅토리아 대공녀에 대해서는 딸인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포스트에 썼으니 그것을 참조해주세요.(나중에 이 빅토리아 대공녀에 대한 포스트를 하나 쓸 예정입니다만.......ㅠ.ㅠ 참조하고픈 책값이 너무 비싸서...ㅠ.ㅠ 고민이라죠...아아...백수는 슬퍼요..ㅠ.ㅠ)
결혼식날의 헤센의 빅토리아
...여왕님을 많이 닮았던 앨리스 공주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특히 저 튀어나온눈과 매부리코는 여왕님의 유전자죠.
앨리스 공주가 딸이 어머니를 닮았다고 어머니께 편지를 보내죠..--;;;
6.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Princess Viktoria of Prussia ;1866-1929) 샤움부르크-리페의 공비
역시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입니다. 이 빅토리아 공주는 프로이센의 국왕이자 독일의 황제인 프리드리히3세와 그의 황후인 빅토리아 여왕의 딸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의 둘째딸입니다. 큰오빠 빌헤름과 큰언니 샤를로테 독일 친가를 더 따른 반면 빅토리아와 그 동생들은 외가인 영국을 더 좋아했죠. 프로이센 궁정에서 "영국여자"라면서 따돌림 당하던 빅키에게 힘이 되는 딸들이었죠.
가족내 애칭은 빅키 내지 모레타였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니 프린세스 로열의 애칭이 빅키였기에 다른 가족들이 헷갈리는것을 막기 위해 모레타라고 부르는듯하더라구요. 하지만 어머니 빅토리아는 딸을 지칭할때 빅키라고 하더군요.^^*
빅토리아 여왕은 손녀 모레타를 위해 잘생긴 신랑감을 찾았습니다. 바로 불가리아의 통치자였던 바텐베르크의 알렉산더였죠. 하지만 정치적 문제와 그가 귀천상혼한 가문 출신이라는점때문에 프로이센 궁정에서는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 오빠가 반대를 했죠. 알렉산더는 불가리아의 통치자의 지위에서 물러나야했는데, 모레타는 이때도 그와 계속 결혼하길 바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끝까지 반대를 했고 찬성하는 사람은 어머니 빅토리아밖에 없었죠. 결국 알렉산더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자 모레타는 우울증에 빠졌다고 합니다. 후에 샤움부르크-리페의 아돌프공과 결혼했습니다.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애칭 모레타
7. 영국의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Princess Victoria Alexandra of the United Kingdom ;1868-1935),
역시나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군요. 빅토리아라는 이름의 프린세스가 많은 지라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들중 빅토리아라고 불린 손녀는 둘밖에 없습니다. 헤센의 빅토리아와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나머지 손녀들중 영국에 있었던 손녀들은 헷갈리기 때문에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처럼 세례명중 하나를 더 가져다 오죠.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공주는 에드워드7세와 그의 왕비인 알렉산드라의 둘째딸입니다. 알렉산드라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앙9세와 루이세 왕비의 딸이었죠. 빅토리아 알렉산드라는 에드워드7세의 딸들중 가장 예쁜 딸(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었습니다만 불행히도 어머니 알렉산드라의 미모에는 못미치죠..ㅠ.ㅠ
알렉산드라왕비는 자녀에 대한 독점욕이 강했고 딸들이 결혼하는것에 대해서 시큰둥했습니다.(아마 자기가 결혼해보니 남편이 맨날 바람을 피워대서 차라리 결혼안하는것이 속편하다라는 생각을 하신듯...) 결국 둘째딸이었던 빅토리아 알렉산드라는 미혼으로 남았고 평생 어머니의 시중을 들었죠.
빅토리아 알렉산드라에게도 결혼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에드워드7세의 수상중 한명은 국왕에게 공주와 결혼하겠다고 청혼까지했다는군요. 하지만 에드워드7세는 공주와 신하와의 결혼을 반대했고, 또 부인 알렉산드라 왕비의 눈치를 보느라 결혼을 승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평생 어머니의 시중을 들었던 그녀는 어머니가 죽은후에야 자신만의 공간과 일을 할수 있었다고 합니다만...알렉산드라 왕비 꽤나 오래사셔서...--;;;;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공주
...같은 날 어머니랑 찍은 사진도 있는데.....
엄마가 더예쁘다죠..ㅠ.ㅠ
8. 하와이의 빅토리아 카이우라니 (Princess Victoria Kaiulani of the Hawaiian Islands 1875-1899)
하와이 역사는 잘 모르는데...(능력이 안됩니다..유럽도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데..ㅠㅠ) 여왕인 리리우오카라니의 후계자였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미국등을 여행하면서 하와이 독립을 위해서 힘�다는 이야기를 본것같습니다. 하여튼 몸이 약했나 그런데 일찍 돌아가셨다고합니다. 이분에 대한 책도 있는것을 봤습니다.
하와이의 빅토리아 카이우라니 공주
....위키에 새사진이 떴더라구요..
이공주님은 왠지 정이 간다죠.^^*
능력이 되면 다음번에는 이 공주님에 대해서 좀 알아볼까 싶어요....
(크헉..하와이역사에 대해서 파야하나..ㅠ.ㅠ)
9. 하와이의 빅토리아 카마마루 캐후마누 4세 (Princess Victoria Kamamalu Kaahumanu IV of the Hawaiian Islands ;1838-1866),
이분도 하와이의 왕위계승자였다는데...잘 모르겠습니다....아하하하..-0-;;;; (능력이 딸려요..ㅠ.ㅠ)
10.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Princess Victoria of Saxe-Coburg and Gotha ;1876-1936) : 한때 헤센의 빅토리아 대공비였으며 후에 러시아의 빅토리아 표도로브나 대공비
역시나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입니다. 여왕의 둘째아들인 에든버러공작이자 후에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되는 앨프러드와 그의 부인인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의 둘째딸이죠. 마리야 여대공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2세와 그의 부인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의 딸입니다. 역시 앞쪽 포스트를 참조해주세요.(..시리즈인데 아직 덜썼군요..ㅠ.ㅠ)
빅토리아 멜리타
후에 러시아의 빅토리아 표도로브나 대공비
친할머니는 빅토리아 여왕, 외할아버지는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2세셨죠.
....그런데 더키 더 예쁜 사진도 많구만...ㅠ.ㅠ 왜 위키에 올라온 사진은 이건지...ㅠ.ㅠ
11.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마르가레테 ( Princess Viktoria Margarethe of Prussia ;1890-1923) 러스의 공비
이분은 계보도가 엄청나게 복잡하군요. 아버지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레오폴트이고 어머니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루이제 조피입니다. 고모가 코넛공작부인인 루이즈 마거릿이군요. 헉..그럼 할아버지가 딸만 낳는다고 부인때렸다는 그분이군요..쿨럭...(결국 아들이 태어나긴했군요.--;;;) 어쨌든 할아버지인 프리드리히 카를은 프로이센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헤름3세와 그의 왕비인 메클렌부르크-스트렐리츠의 루이제의 손자입니다.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마르가레테
(사진출처 : 유럽 왕실 계보 사이트 http://www.royaltyguide.nl/index.htm )
...저기 사진출처 사이트 주인장 존경합니다...
12.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Princess Viktoria Luise of Prussia :1892-1980)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부인
빅토리아 루이제공주는 독일의 빌헤름2세와 그의 부인인 아우구스타 빅토리아 황후의 고명딸입니다. 빌헤름2세는 어머니 빅토리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고명딸이 태어났을때 딸의 이름이 빅토리아인것은 절대 어머니의이름을 딴것이 아니라고 확인할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름이 빅토리아 루이제가 된것은 고모인 빅토리아가 살아있었기때문에 헷갈리는것을 막기위해서였을껍니다.
무척이나 사랑받는 아이였던 빅토리아 루이제는 프로이센의 가장 큰 정적중 하나인 하노버의 후계자와 결혼합니다. 하노버가문은 독일 통일 당시 오스트리아를 지지했기때문에 결국 왕국 지위를 잃었고, 때문에 프로이센가문에 적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루이제가 하노버가문으로 시집가면서 독일 황실과 하노버가문은 화해한것이나 다름없는것이었죠.(빅토리아 루이제는 빌헤름2세가 가장 사랑한 아이였다고합니다.)
빅토리아 루이제의 딸인 하노버의 프레데리카는 그리스의 왕비가 되었고, 그딸이 스페인 왕비가 되었죠.
현 스페인 왕비인 소피아 왕비의 외할머니가 바로 이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시죠.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애칭이 시씨셨다고 합니다.
...어릴땐 더 예쁘셨는데 자라면서 어릴때보다 미모가 좀 죽는 느낌이예요...
13.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마리나 (Princess Victoria Marina of Prussia ;1917-1981)
빅토리아 마리나 공주는 빌헤름2세의 손녀입니다. 빌헤름2세의 아들인 아달베르트와 그의 부인인 작센-마이닝겐의 아델라이트 에르나 카롤리나 마리 엘리자베트(..ㅠ.ㅠ 세례명을 다써놔서..ㅠ.ㅠ 부르는이름 하나로 적어달라고요..ㅠ.ㅠ) 의 딸입니다. 그녀는 미국인 변호사와 결혼했기에 아마도 귀천상혼이었을껍니다.
여왕, 왕비, 황후가 된 princess Victoria
1.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 Victoria of the United Kingdom ;1819-1901),
뭐 유명하신 분이니 생략하겠습니다.
젊은 시절의 빅토리아 여왕
빈터할터의 '사기'그림
여왕님 코는 절대 저렇게 생기지 않으셨습니다.쿨럭...
(드 라즐로 그림에만 저 '사기'그림을 쓸꺼라고 생각했는데..빈터할터도 나름...쿨럭)
2. 독일의 황후이자 프로이센의 왕비인 빅토리아 (Victoria, German Emperess, Queen of Prussia ;1840-1901) 영국의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이분도 유명하신분이시죠. 빅토리아 여왕의 큰딸이자 독일의 빌헤름2세의 어머니. 하지만 정작 아들과는 정치적 노선이 달라서 사이가 별로셨다고 합니다.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역시 빈터할터의 그림
3. 스웨덴의 빅토리아 왕비 (Victoria of Baden ;1862-1930) : 구스타프5세의 왕비,바덴의 빅토리아
빅토리아 왕비는 원래 바덴의 대공녀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바덴의 대공인 프리드리히1세이고 어머니는 루이제 대공비였습니다. 루이제 대공비의 부모는 독일의 황제인 빌헤름1세와 그의 황후인 작센-바이마르의 아우구스타였습니다. 빅토리아 왕비의 시어머니인 소피아 왕비는 영국에 호감을 가져서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인 베아트리스공주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베아트리스 공주보다도 바덴의 빅토리아가 더이상적인 며느리감이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빅토리아의 할머니가 바로 스웨덴의 구스타프4세 아돌프의 딸인 소피아 공주였기때문입니다. 게다가 외할아버지는 독일 황제였죠.
후에 빅토리아의 오빠와 남동생이 모두 사망한후 구스타프4세 아돌프의 직접적 후계자가 됩니다. 이때문에 현 스웨덴 왕가는 베르나도트 장군이 왕으로 선출되면서 단절되었던 홀슈타인-고토로프계의 왕위계승권마저도 얻었고, 더 나아가서는 스웨덴의 초기 위대한 왕가인 바사가를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할수 있게되었습니다.
정략결혼이었기때문에 구스타프5세와 빅토리아 왕비는 매우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왕비의 친 독일 성향을 구스타프5세에게 강하게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게다가 왕비는 매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는데 시어머니인 소피아 왕비는 이것이 매우 못마땅했다고 합니다.
어릴때 잘못된 치료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았던 빅토리아 왕비는 스웨덴에서 머무는 시간보다 따뜻한 남쪽 이탈리아나 그리스 아프리카등지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친독일적 성향이나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한것으로는 잘 알려져있지만, 빅토리아 왕비는 재능이 매우 뛰어난 왕비였다고 합니다. 그림을 매우 잘그렸고 사진찍는것도 수준급이었습니다. 게다가 피아노를 매우 잘쳤는데 악보없이도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연주할정도였다고 합니다.(어릴때 리스트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고합니다.)
스웨덴의 빅토리아 왕비
...왕비님 젊을때는 오동통하니 예쁘신데..나이드시면서 남편인 구스타프5세랑 같이 살이 빠지셔서....ㅠ.ㅠ
쓰고있는 티아라는 브리간사의 다이아몬드 티아라
4. 스페인의 빅토리아 아우헤니아 왕비 (became queen Victoria Eugenia of Spain ; 1887-1969),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 (보통은 세례명중 다른 이름인 에나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역시나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입니다. 에나의 어머니는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인 베아트리스였고, 아버지는 바텐베르크의 하인리히였습니다. 바텐베르크가문은 헤센대공가의 분가로 귀천상혼한 가문이었죠. 때문에 다른 왕실(독일이나 러시아)에서는 이가문과 결혼하는것을 귀천상혼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빅토리아 여왕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가문의 형제들의 잘생긴 인물에는 지대한 관심을 보였죠. 여왕은 이 잘생긴 형제들에게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는데 먼저 장남인 루드비히를 딸 베아트리스의 남편감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스캔들로 물건너가고 (루드비히는 대신 여왕의 손녀인 헤센의 빅토리아와 결혼했습니다.) 차남인 알렉산더를 다음으로 남편감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불가리아의 통치자였기에 딸레미와 떨어지기 싫었던 여왕님은 사윗감으로는 포기하고 대신 손녀사윗감으로 밀죠.(앞에서 말한 프로이센의 빅토리아와의 혼담) 그리고 삼남인 하인리히가 결국 베아트리스공주와 결혼했습니다.
에나는 스페인의 알폰소13세와 결혼했는데 알폰소 13세는 에나를 보고 반해서 적극적으로 대쉬했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신분과 혈우병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에나와 결혼했지만, 정작 아들들이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나자 에나에게 화를 냈고, 혈우병을 물려준 장모인 베아트리스에게는 평생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고 합니다.--;;;(아마 빅토리아 여왕이 살아있었으면 여왕에게도 화를 냈을듯...) 그리고 수많은 연애사건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에나는 그냥 참고 살았죠.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결국 국왕내외는 망명생활을 해야했는데, 알폰소13세와 에나는 이때 별거하기 시작했고 다시는 함께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에나 왕비는 손자이자 현 스페인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와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였다고 합니다.
에나 왕비
코는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보다는 친할머니인 바텐베르크공비를 닮았군요.
하여튼 아름답고 우아하신분이셨다고 합니다.
첫번째 이름이 빅토리아였으나 다른 이름으로 불린 Princess
1. 프로이센의 샤를로테(Princess Viktoria Elisabeth Auguste Charlotte of Prussia ;1860-1919) 작센-마이닝겐의 공작부인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입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3세와 빅토리아 황후의 첫째딸이었습니다. 그녀는 빅토리아 여왕의 첫번째 손녀이자 알버트공이 살아있을때 태어난 두 손주들중 한명이었습니다. (다른 한명은 빌헤름2세) 빅토리아 여왕은 첫손녀가 빅토리아라는 이름으로 안불리는데 아쉬워했다고 하죠.
샤를로테공주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대신 조부모와 오빠 빌헤름과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딸을 양육하는것을 등한시하고 대신 사교생활을 더 중요시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어머니 빅토리아는 딸에대해서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 친척관계였던 루마니아 왕실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사촌인 에든버러의 마리가 시집갔을때 안좋은 소리를 자주 왕에게 전해서 마리와 왕과의 사이를 안좋게 만들었다는....)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2.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헬레나 빅토리아 (Princess Victoria Louise Sophia Augusta Amelia Helena of Schleswig-Holstein ;1870-1948)
역시나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입니다. 헬레나 빅토리아의 어머니는 빅토리아 여왕의 셋째딸인 헬레나 공주이고 아버지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크리스티안이었습니다.
헬레나 빅토리아의 가족들은 웨일즈의 조지 왕자(후에 조지5세)와 헬레나 빅토리아가 결혼하길 바랬지만, 정작 조지의 어머니인 알렉산드라는 헬레나 빅토리아를 안좋아했다고 합니다.(....당연히 안좋아할만하죠. 헬레나 빅토리아의 아버지 크리스티안은 덴마크 왕가가 치를 떠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아우구스텐베르크가문이었거든요.)
헬레나 빅토리아는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헬레나 공주는 미혼인 딸들을 독립적으로 살도록 했고, 헬레나 빅토리아와 동생 마리 루이즈는 여행도 하고 글도 쓰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헬레나 빅토리아
1차대전이후 헬레나 빅토리아와 동생 마리 루이즈는 독일식 성을 떼버리고 그냥 the princess가 됩니다.
3. 헤센의 알릭스 (Princess Viktoria Alix Helena Luise Beatrice of Hesse ;1872-1918) :러시아의 마지막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역시나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자 유명한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황후죠. 세례명을 보면 빅토리아 여왕의 딸레미들 이름이 다 들어가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름이 알릭스인것은 어머니 앨리스 대공비가 독일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체로 부르는것을 싫어해서 앨리스와 비슷하게 발음나도록 이름 붙인것이라고 합니다.(..알리체도 괜찮지 않나요..ㅠ.ㅠ) 후에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2세와 결혼하면서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고, 이름도 정교회식으로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가됩니다. 역시 유명한 분이므로 나머지는 생략합니다. 어머니가 붙인 애칭은 햇살처럼 밝게 웃는다고 해서 써니였다고 합니다. 후에 가족들은 알릭키라고도 불렀다고합니다.(전 처음에 이름이 원래 알렉산드라인줄 알았습니다. 알릭스가 보통 알렉산드라의 애칭으로 많이 쓰이거든요. 나중에 보니 이름이 알릭스더군요..쿨럭..)
헤센의 알릭스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
러시아 궁정의 정식 황후예복을 입은 모습
.....알릭스는 사진을 찍을때 늘 우울한 표정이라 가슴이 아파요.
아기때 어머니 앨리스 대공비와 찍은 사진을 보면 굉장히 밝게 웃거든요.
4.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 Princess Victoria Alice Elisabeth Julie Marie of Battenberg ;1885-1969)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비
빅토리아여왕의 증손녀입니다. 아버지는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 어머니는 헤센의 빅토리아 입니다. 위의 알릭스가 이모되죠. 일찍 죽은 외할머니 앨리스 대공비의 이름을 따서 앨리스였습니다. 에든버러 공작 필립공의 어머니되시죠. 역시 앞의 포스트를 참조해주세요.
앨리스 왕자비 1920년대
드 라즐로가 그린 "사기"아닌 그림
...앨리스는 정말 예뻤답니다......
카피라이트 by HRH 필립공
5. 코넛의 패트리샤 (Princess Victoria Patricia Helena Elizabeth of Connaught ;1886-1974) 레이디 패트리샤 램지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입니다. 아버지는 코넛공작 아서이고 어머니는 프로이센의 마르가레테입니다. 패트리샤와 언니 마거릿은 에드워드7세의 정략결혼정책 일환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궁정에 선을 봤다고 합니다. 포르투갈로 시집보내려던 마거릿은 스웨덴 왕위계승자와 이집트에서 첫눈에 반해서 결혼했죠. 에드워드7세는 스페인 국왕 알폰소13세를 다시 영국으로 불러서 패트리샤를 소개시켜줄려고 햇다고 합니다.(뭐 다른 조카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베아트리스도 소개시켜주려고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하지만 알폰소13세는 다른 조카인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에게 반해버리죠. 조카였기에 상관없었던 에드워드7세는 다시 패트리샤를 러시아의 황위계승자였던 미하일대공(니콜라이2세의 동생)과 결혼시키려 했지만 패트리샤가 거부합니다. 대신 그녀는 평민이었던 해군 장교 알렉산더 램지를 선택하죠. 패트리샤는 영국의 공주지위를 버리고 레이디 패트리샤 램지가 됩니다만 늘 왕실가족으로써 생각되었고,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의무를 수행했다고 합니다.
코넛의 패트리샤
레이디 패트리샤 램지
패트리샤는 엄마인 루이즈 마거릿과 엄청나게 닮았습니다.
언니인 마거릿은 좀 덜닮았다죠. ^^*
6. 영국의 메리 (Princess Victoria Alexandra Alice Mary of the United Kingdom ;1897-1965), 헤어우드 백작부인
메리 공주는 조지5세와 메리왕비의 고명딸입니다. 키가 무척이나 컸던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오빠들보다 커서 남들이 누나인줄 알았죠.--;;; 메리는 매우 재능있고 특출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메리는 헤어우드 백작의 장남인 헨리 라셀스경과 결혼합니다. 메리의 부모인 조지5세와 메리 왕비는 딸에게 그와의 결혼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메리와 가장 친했던 오빠인 에드워드8세는 동생이 사랑하지 않는 이와 결혼하는데 반대했다고 합니다. 둘이 불행했다고 알려져있지만 메리의 아들인 7대 헤어우드 백작 헨리 라셀스는 부모가 "공통된 취미를 즐기면서 매우 오래된 친구와같은 사이였다'고 주장하면서 불행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반박했다고 합니다.
후에 조카이자 왕위계승자인 엘리자베스 공주가 필립 마운트배튼과 결혼할때 오빠인 에드워드8세를 초대하지 않았다고 그녀역시 조카의 결혼식에 불참했다고 합니다.
프린세스 로열 메리
오빠들인 조지6세나 에드워드8세랑도 좀 닮은듯해요.
자료& 그림출처
위키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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